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different way Aug 10. 2020

내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의 이야기

"82년 김지영", "그녀 이름은" 서평



영화로 세간에 화재가 되고 있는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원래 원작을 먼저 보는 스타일이라... 보고 싶은 마음(영화)을 꾸욱~ 누르고 책을 먼저 읽었다. e-book으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디지털 도서관을 찾아보았으나... 대출 불가... ㅠㅠ 화제성이 있는 책이라 그런가 보다. 남편이 자주 가는 지역 도서관에 알아보았으나 역시 대출 불가... 책을 사야 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학교 선생님이 가지고 있다는 최신 정보를 입수하여~ 빌려온 당일 홀라당~ 다 읽었다. 82년생 김지영을 e-book으로 찾다가, 조남주 씨의 다른 소설 "그녀 이름은"책도 함께 읽어보았다. 82년생 김지영과는 내용적인 맥락은 비슷한데, 60여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로 옴니버스 구성의 책이었다. 두 책 다 뭐랄까...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여자이며, 엄마이며, 아내라 그랬을까... 가슴이 찡... 마음이 울컥거리는 순간이 많았다.


"그녀 이름은"책에서는... 용역으로 고용되어, 국회에서 청소하시던 아주머니들이 10년 넘게 계약직으로 있다가, 정식으로 국회에서 직접 고용한 정직원이 되는 순간을 누렸던 감격의 순간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직원 이름이 적혀있는 명찰을 달고, 청소하는 순간이 그렇게 기뻤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장례가 나서 가족 장례를 치르는데,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이며 젓가락에 무궁화 로고가 그려진 일회용품을 보며, 문상객 중 한 명이 가족 중에 누가 국회에 근무하시나 보다고... 하는 말을 듣고, 국회에 직접 고용된 직원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뿌듯할 수 없었다는 말에... 다시 눈물이 주르르... "82년생 김지영"과 "그녀 이름"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은... 나이며, 내 어머니이며, 내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책장들이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목울대가 울렁거리고, 흐르는 눈물을 다시금 닦아내고 책장을 넘겨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82년생 김지영"은 책 제일 처음에는 김지영의 현재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가 그 이후로는 김지영이 태어났던 시기로 거슬로 올라가 유년시기, 청소년 시기, 대학 시기,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까지 다시 현재로 오는 순서대로 써져 있다. 위로 언니 하나와 아래로 남동생 하나... 김지영과 남동생 사이에 아이가 한 명 더 있었으나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신 중절... 그리고 아들바라기인 할머니의 압박으로 오미숙(김지영의 모)은 네 번째 임신을 했고 김지영과 다섯 살 터울의 아들을 낳게 되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남동생과의 차별이 두드러졌지만 같이 살지 않았어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대를 거쳐 흘러 내려오는 가치관이나 신념은 윗세대가 없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다름 세대에게 전이되고, 이식되고, 뿌리를 내려서 쉽게 거둘 수 없는 것이다. 할머니와 김지영의 중간 세대인 오미숙은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양가감정에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내가 여자라 당했던 수모를 내 딸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여자애가 어쩌자고 그렇게 사느냐는 말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남학생부터 번호를 매기는지,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김지영은 점점 자라면서 여자로서 받는 차별이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체제 순응적으로 살아왔다. 초등학교 때 번호 순서대로 급식을 받는데, 늦게 먹는다고 여학생들을 야단치는(남학생들은 앞번호, 여학생들은 뒷번호) 선생님이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하고 꾸역꾸역 밥을 욱여넣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밤길에 자신을 뒤쫓는 낯선 남자가 너무 두려워서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껏 나온 아버지는 김지영이 멀리 학원을 다닌 것이, 아무 하고나 말을 섞은 것이, 치마가 짧은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이야기했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팀원들 취향에 따라 커피를 타고, 식당에 가면 알아서 수저 세팅을 하고, 배달 음식 주문을 하고 빈그릇을 정리하는 등 사회 관습에 의해 의례히 여자가 하는 일들을 알아서 했다. 외부 업체 미팅에서 강된장을 좋아한다고 된장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능력이 있어도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되어도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내는 구조에 익숙해졌다.


이런 부당하고 억울한 순간에, 김지영에게 힘을 주었던 건... 함께 부당함을 겪었던 이름 없는 또 다른 김지영이었다. 초등학교 친구 유나가 급식 순서의 부당함을 말했고, 이것이 개선되었을 때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낯선 남자로부터 해코지당할까 봐 두려웠던 순간에 도움을 주었던 여자는 그 일이 김지영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김지영은 그 당시 느꼈던 공포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반응과는 전혀 다른...) 회사에 있는 대부분의 팀원들이 김지영이 커피를 타고 음식을 주문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여겼을 때 같은 회사 여자 팀장은 그 일은 김지영의 일이 아니며, 김지영이 회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주었다. 끊어질 듯 말 듯 끊어지지 않았지만 위태롭게 이어져 오던 김지영의 자아가 어쩌면 이 일을 함께 겪었던, 혹은 먼저 겪어왔던 또 다른 김지영의 응원과 격려로 버텨왔을지도 모르겠다.


"정서바앙!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에는 엉덩이 한번 붙였다 그냥 가고, 이번에는 좀 일찍 와."

"82년 생 김지영" 중에서...


책 초반에 해리성 인격장애처럼 친정엄마로 남편 정대현의 친구 차승연으로 빙의(?)하는 김지영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까지 내면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왜 힘들다고 어렵다고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너무 안타까웠다.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성향 때문에 무언가 나름대로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 신호를 알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자기 스스로로 그렇게 무너져 내릴 때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책 말미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김지영의 정신과 상담을 맡았던 의사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40대 남자인 의사는 김지영과 상담하면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이 있었다며 김지영의 삶을 이해하는 듯했다. 자신의 동기이며 학업도 월등히 잘했던 아내가 출산과 육아로 인해 모든 일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면서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고백에서... 아... 김지영을 공감해주는 의사를 만났나 보다 싶었는데... 정서불안에 시달리는 아이 때문에 일까지 내려놓고, 그나마 마음대로 되는 건 수학 문제집 밖에 없다며 초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끊임없이 풀어대는 아내를 보며 지금 현재 엄마로 살면서도(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내려놓고) 그거밖에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수학 문제집)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자신의 아내도 김지영도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정말 공감 200프로 정신과 의사 구나 했는데... 조남주 씨는 마지막 두 페이지에 이 소설에 반전을 주었다. ㅠㅠ


정신과 의사가 근무하는 병원에 똑똑하고 일 잘하는 이수연 선생이 6년 만에 어렵게 가진 아이가 안정적이지 않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일 잘하는 직원이 그만두게 되었으니 병원에서는 고객을 잃는 손해가 있는 건 당연한 일... 제일 마지막 문장에서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82년생 김지영" 책 중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ㅜㅜ 정신과 의사로서 김지영이 당한 어려움을 공감해주는 일, 내 아이를 키우는 아내를 안타깝게 여기고 진심으로 아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지지해주는 일은 내 바운더리 안에 일이라 가능했는데... 다시 내 울타리를 벗어나 있는 제삼자의 일에는, 칼날같이 손익을 계산하다. 조선시대 이후 600년 이상 우리를 지배했던 남녀 차별의 쓴 뿌리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임을 조남주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보다.


결혼 예비 학교 수업을 들으며 결혼 이후 아내가 더 많이 헌신하고 수고하게 될 것이라고...(이미 사회 구조가...) 그래서 남편들은 더 섬세하게 아내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던 결혼 예비 학교 강사 나희수 목사님의 말씀이... 그 당시에는 참 막연하게 들렸는데...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살다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조금 현실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다는... 무수히 많은 여자들의 외침과 고백이...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같이 들리는 이 현실이 참담하게 느껴진다. 7학년 중학생 아들에게는 버스 타고 귀가해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도 버스 타고 집에 오고 싶다는 딸의 부탁은 야멸차게 거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다.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도 김지영 같은 삶을 살았지만, 내 딸은 이보다 좀 더 존중받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제...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무례함과 당당함의 사이... 나도 작가다 공모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