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_아버지의 마음
한창 바빴던 학기 말에 이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를 받았다. 가려고 마음먹었다가, 결국 학기말 업무에 항복하고 호시탐탐 기회가 되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교회에서 특정 영화관을 대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가족의 티켓을 예매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대략적인 스토리와 영화의 방향성을 가늠했는데, 생각보다 더 감동적이었고, 그래서 중간중간 눈물을 많이 훔쳤다. (갱년기 증상인가...)
큰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컴패션에서 결연을 한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 큰 아이가 고2가 되었으니 거의 14-5년 정도인 것 같다. 처음 후원할 때 내 아이의 나이와 비슷한(4-5세) 남자아이를 희망했고, 혹시나 큰 아이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생길 수도 있으려나... 하는 막연한 생각에 남미 지역의 아이였으면 했다. 후원을 시작하고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으니, 아가 아가 한 모습의 후원 아동도 최근 사진을 보니 청년이 되어 있었다.
컴패션에서 아이의 생일이나 성탄절에 선물 비용이나 혹은 자필 편지를 써서 보내줄 것을 권했지만 일상의 분주함에 쫓겨 마음만 가득할 뿐, 실천하기는 어려웠다. 매달 후원하는 것으로 그 아이에 대한 최선이라 생각하고, 후원금이 나갔다는 문자가 오면, 이번 달도 잘 나갔구나... 하는 정도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후원하는 아이 생각이 어찌나 간절하던지... 올해 아이 생일과 성탄절에는 꼭 사랑이 담긴 편지를 써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상철 감독은 GV에서 이 영화가 컴패션 홍보 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했다. 관객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는지, 우리에게도 그런 한 사람이 되기를 도전해 주고 싶다고 했다. 컴패션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그래서 영화 속 출연자들이나 자막에 가능한 컴패션을 쓰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다가 실패했다고...) 결국 컴패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이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혹시라도 관객들의 눈에 컴패션이 각인되는 위험이 있더라도 이 단어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영어 단어 compassion은 com(함께)와 passion(고통)의 합성어이다. 함께 고통을 나누다, 지다는 뜻에서 긍휼을 의미한다. 영화 초반에는 컴패션을 만든 에버렛 스완슨이 가진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 이후에는 하준 파파 황태환이 둘째 아이를 천국에 보낸 이후 비슷한 고통을 가진 필리핀 소녀 나탈리와의 만남, 그리고 오랫동안 미국 부부로부터 컴패션 결연을 통해 후원받은 르완다 메소드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에버렛 스완슨은 한국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며 혹은 음식을 훔쳐서 생계를 연명하는 전쟁고아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 추운 겨울에 노숙하는 아이들이 이른 아침 죽어가는 것을 보고(군인 차량이 아침 일찍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시체를 거둬가는 장면) 전쟁과 무관한 아이들의 고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가슴 저리게 고민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what are you going to do?라는 마음속의 소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에 있는 교회들을 동원해서 한국의 보육원(전쟁고아를 돌볼 수 있는)을 만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에버렛 스완슨의 에피소드는 재연배우들이 만든 장면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는데, 영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한국 전쟁 후의 한국의 상황, 보육원의 모습, 에버렛 스완슨의 살아생전 모습은 재연이 아닌 실제라서 신기하다 생각했는데 영화 감상 후 김상철 감독의 말에 의하면 에버렛 스완슨이 실제로 그 당시에 찍은 영상이라고 했다. 영화를 통해 최초 공개된 자료들(미국에 보관된 자료들)이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 후였고, 그런 카메라가 있을 리 만무했고, 있다 해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당장 생존의 문제 급급했던...), 누가 그런 영상을 찍어 남겼을까... 싶었는데 에버렛 스완슨이 직접 촬영하고 남긴 영상이었다니... 서양 선교사의 시선으로 찍힌 한국 전쟁 이후의 한국은 저런 모습이었구나...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생존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에버렛 스완슨이 시작한 보육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1:1 결연과 후원으로 바뀌어갔다. 한국에 있는 한 명의 고아에게 미국의 후원자를 연결해서, 그 아이가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 속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꾸었다. 이것이 지금의 컴패션 1:1 결연 후원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결연을 통해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결연 아동에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있다는 정서적 지원과 안정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에버렛 스완슨의 헌신으로 컴패션은 전 세계적으로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NGO 단체가 되었고 한국은 오랫동안 컴패션의 후원을 받는 수혜국에서, 다른 나라의 아이들을 돕는 후원국으로 바뀌었다. 100만 유튜버이면서 유명 인플루언서인 황태환은 120여 명의 결연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둘째 아이를 천국으로 보내기 전까지, 120여 명의 결연 아동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매우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다가 둘째 아이가 갑자기 천국에 가게 되었고(영화 속에 아이가 천국 가기 전 큰 아이 하준이와 인사하는 장면,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영상을 보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하루 전날, 저렇게 아이가 예쁘게 눈을 맞추며 살아있었는데... ㅜㅜ) 필리핀에서 엄마를 먼저 보낸 나탈리를 만나게 되면서 황태환의 삶에도 변화가 생겨났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준이가 떠났던 사실을 서로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상황과 돌아가신 엄마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나탈리를 보면서, 황태환은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내적으로 서로 교감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체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위로를 얻을 수 없었던 나탈리가 황태환으로부터 위로를 얻었다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가슴에 사무치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의 언어가 있었다는 것은 아닐까?
르완다의 메소드는 투치족과 후투족의 오랜 갈등(역사적으로 두 민족 간의 갈등은 복잡다단하다)으로 인해 1994년에 일어난 르완다 대학살로 부모를 잃었다. 부모를 잃은 메소드의 후원자는 미국의 백인 부부. 이들은 단순히 후원자와 결연 아동의 관계를 넘어서서, 또한 미국과 르완다라는 물리적 거리와 인종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부모를 잃은 르완다의 어린 아이 메소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지속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느낀 메소드는, 자신의 부모를 죽인 후투족의 아이들도 품을 수 있는 건강한 성인으로 자랐다.
알쓸범잡의 영상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jsMV3voCao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빠가 된 메소드는, 부모가 없어서 어렵고 힘든 성장과정에 자신의 양부모가 되어준 미국인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 미국 비자를 신청하지만 무려 3번이나 reject을 당한다. (미국 비자는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번 거절당하면 그 다음부터는 비자 나오기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ㅠㅠ) 그런데 기적같이 4번째 신청에서 승인을 받고, 28시간의 비행 끝에 미국인 양부모님을 만나게 된다.
긴시간 동안 이들은 전혀 만남이 없었는데, 만나자마자 마치 오랫동안 떨어졌다가 만난 부모 자식처럼 진한 포옹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영화 속 메소드와 미국인 양부모가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오랜 시간 동안 메소드를 사랑으로 지원해 준 미국인 부부는 정작 본인들은 한 일이 없다고 했다. 컴패션 후원을 위해 애쓰고 있는 현지 스텝들과 교사들이 수고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미국인 부부 집 구석구석에는 메소드의 사진이 있었고, 그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관객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에버렛 스완슨이 한국 전쟁고아를 보고 품었던 고통과 긍휼의 마음이, 황태환을 통해 나탈리에게로, 제니퍼 러스티 부부를 통해 메소드에게로, 그리고 컴패션을 통해 후원 결연이 된 수없이 많은 아이들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에버렛 스완슨이 가졌던 그 선한 마음 what are you going to do? 가 전쟁으로, 대학살로, 가난과 무지로, 천재 지변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무너진 가슴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심폐소생을 하고 있다. 절망과 낙심으로 죽지 말고, 다시금 깨어나기를 소망하고 있다.
에버렛 스완슨의 한국 에피소드 재연을 연출한 배우 권오중이 GV 시간에 함께 했는데, GV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보니 권오중이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유튜브에 여러 번 소개된 자쳬성 장애를 가진 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자연스럽게 아들과 동행하는 배우 권오중을 보니 이 사람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함께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삶으로 말을 해주는 것 같았다. 상영관 확보가 쉽지 않아서 김상철 감독이 영화관을 대관한 것 같았다. (영화티켓에 김상철 감독 이름으로 외상이라고 표시... ㅜㅜ) 권오중 역시 영화 제작에 참여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경제적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권오중이 이 영화에 참여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과 그로 인한 선한 행동이 때로 보잘 것 없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누군가에게 흘러간 그 영향력은 내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 과거의 에버렛 스완슨의 질문은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 본다. what are you going to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