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different way Aug 02. 2023

"20년 만에 지킨 약속"을 읽고

20년만에 지킨 약속 책 표지

존경하는 전형일 선생님의 Faith Academy 교사 선교사의 경험이 소중한 책으로 출판되었다. 먼저 책을 읽은 동료들이 술술 잘 읽히는 책(학술적인 책이 아니라 선교지 경험이라는 의미로…)이라고 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 들었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이 책이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혀 다른 나라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도 이방인으로 살았던 타문화권의 경험(남편 유학시절… 미국 유학이라 다들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디든 타향살이는 고된 법…)이 있었고, 전형일 선생님의 가족과는 특별한 인연(아내 조숙진 선생님은 내가 다시 학교에 복직할 때 내 사수처럼 나를 도와주셨던 고마운 분이시고, 선생님 부부의 막둥이 아들은 복직한 이후의 첫 제자였다. 무려 2년간…)으로 선생님의 타향살이가 마냥 남의 이야기처럼 읽히지가 않았다.


낯선 땅을 방문했을 때의 그 느낌(나도 남편과 달랑 둘이 미국 학교 기숙사에서의 보냈던 첫날밤을 잊을 수가 없다), 한국에 대한 향수(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한국이 너무 그리워 드라마 보기를 중단했다), 뭐든지 효율적인 한국의 시스템(한국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만 먹으면 한 10가지 이상 볼일을 볼 수 있었다), 특히나 한국의 먹거리(길거리 음식_떡볶이, 오뎅, 붕어빵, 김말이, 순대 등)가 생각이 나면 나는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 멀리 태평양 건너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는데 전형일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장소는 다르지만 타향살이로 겪었던 그 마음들이 느껴지면서 책장이 쉬이~ 넘겨지지가 않았다. 단어나, 문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기도 했고,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오르기도 하고, 선생님 가족은 그때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을 버텨냈을까 하는 생각에 울컥거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이 책이 여름 방학 교직원 필독서로 선정된 것에 대해서 겸연쩍어하셨지만. 여러 가지로 나는 이 책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다.


하나. 겸손함이 주는 유익과 성장

선생님은 한국에서 베테랑 교사였다. 그렇지만 선생님 책 곳곳에 선생님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국제 학교의 초입 교사로 살아내려는 애씀의 흔적들이 있었다. 미국에서 살 때, 기숙사에 사는 엄마들과 함께 playschool이라는 놀이 학교를 만들어서 스텝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아주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미국 엄마들의 삶은 나에게 큰 도전(사실 미국 엄마라기보다는 풀러 신학교에 있는 엄마들이라고 봐야 더 명확하겠다)이 되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내가 어설픈 영어로 소통하며 참여하는 것을 늘 격려하고, 감사해했다. 더 애쓸 수 있지만, playschool을 운영할 때 에너지의 80-90% 정도만 사용한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롱런하기 위해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다. (같이 참여하는 한국 엄마들은 이것을 못마땅해했다. 스텝으로 섬기지도 않으면서… ㅜㅜ 뒷말을 ㅠ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던가? 내 것을 내려놓고,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하면 분명히 내가 익숙했던 경험과는 다른 그들만의 lifestyle이 있고, 배울만한 것들이 있다. 전제는 겸손함으로 그들의 문화를 배울 만한 마음의 자세가 있느냐이지만…


전형일 선생님은 국제 학교의 특성상, 교사가 부족하여 학교와 인터뷰했을 때 제안받은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업무를 제안받았지만(과학을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 상황) 부족한 자신의 영어가 수업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학생들 실험과 활동으로 구성된 수업을 만들고(그렇게 하기에는 참 실험실의 상황이나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이 없었지만 ㅜㅜ) 학생들이 즐겁게 과학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수업을 준비했다. 지면에 단순히 몇 줄로 쓰여 있었지만 그 몇 줄 안에 있는 수많은 시간들과 고생과 고달픔이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마도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던 그 시간이 어쩌면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원하고를 시작할 때,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 국제 학교가 가지는 장점(어떤 부분은 Faith Academy만의 특징일지도….)

한국학교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국제 학교의 장점을 잘 정리해서, 한국 교육과의 접촉점을 찾고자 했다. (1) 교장은 권위를 가지고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 교사의 안내자라는 점 (2) 끊임없이 교사들을 훈련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3) 풍성한 예체능 수업 (4) Survival outdoor education 등 한국 고등학교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면서, 선생님의 지난 한국 교육 경험 속에서는 없었던 부분들을 상세히 기록하면서, 이 학교의 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의 배움과 더 길게는 학생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선생님의 통찰력을 기록했다. 후에 MK 선교사로 국제 학교에서 섬길 마음이 있는 교사들에게 현지의 삶과 국제 학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는 guide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셋. 출판의 과정, 제자들과의 협업

책을 다 읽고 출판 관련 정보를 보려고 마지막 페이지를 열어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했다. 은서, 승미… 원하고 학생들이다. 선생님의 책이 출판되도록, 제자들이 자신의 은사를 사용했다. 고딩 제자가 있으니,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ㅋㅋㅋ 초딩 제자들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ㅋㅋㅋ 두고두고 제자들은 이 책을 자랑스러워하겠고, 전형일 선생님도 이 책을 떠올릴 때마다 이 아이들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제자를 기른다는 건, 이런 일이 아닐까… 삶의 경계를 허물고,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 서로의 일을 돕고 협업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선생님은 고딩 제자들을 가르치느라고 애를 쓰시겠지만 훌쩍 자란 고딩들의 이름이 책에 나온 한 페이지를 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해보았다 ㅋㅋㅋㅋ) 20대에 가르친 제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모습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같이 늙어가는구나…(내가 늙어서 조금은 슬픈)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 제자들과 함께 장차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함께 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형일 선생님의 책 마지막 페이지가 나에게 주는 느낌이 이와 비슷하다.


넷. MK 교사로 살면서 MK 부모로 살아야 하는 삶

선생님네 막둥이를 2년간 가르쳤다. 개구지지만 사랑스러운 도순이(내가 부르는 애칭). 책에는 도순이가 필리핀 mk로 살면서 힘들었던 시간들도 기록되어 있었다. 너무 사랑했던 제자가 필리핀 현지에서 겪었을 글을 통해 생생하게 읽으려니(선생님으로부터 들을 때는 간략히, 대략… 적당히 미화해서… 그랬는데 잘 지냈어요로 훈훈한 마무리) 마음이 저렸다. 아이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교사인 내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읽어도 가슴이 저린 일인데, 현지에서 부모 된 입장에서 아이의 눈물을 봤을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 싶어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Mk들을 섬기려 필리핀까지 왔는데,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는 세 자녀들의 mk로서의 고군분투를 지켜봐야 했을 그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서 더 학교를 잘 섬길 수는 있었겠지만, 학교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집에 있는 세 자녀들의 어려움과 상황들을 살펴야 하는 선생님 부부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그래도, 시간이 훌쩍 지나 필리핀에서 초반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들이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말로는 다 들을 수 없었던 선생님의 mk 선교사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그 시간을 잘 지내, 원하고의 설립에 올인해 주신 것도 참 감사하다. 세 자녀들이 필리핀에서의 시간들을 지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뚜벅뚜벅 잘 걸어가고 있는 것도 감사하다. 이 책이 부디 선생님 가족의 성장뿐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없어져야,채워지는 신비_Delet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