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트 서평
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던가...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밤늦게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월드비전이던가... 정확히 단체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전으로 국경 지대에 천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을 위해 유명 연예인 한 명이 봉사를 하러 갔는데, 시간이 꽤 지나 그 연예인도... 누구인지 기억이 가물거리고... 나라 이름도 국제단체 이름도, 봉사하러 간 연예인 이름도 다 기억에 없지만 그 다큐가 나에게 주었던 엄청난 깨달음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내 마음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계속되는 내전으로 원래 살던 삶의 터전은 너무 위험해서, 사람들이 대부분 국경지대 근처에서 천막을 치고 살았다. 수도도, 전기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국제단체들이 가져다주는 구호물품으로만 근근이 살아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한 천막 안. 아빠는 없고... 힘이 없어 보이는 엄마와 젖먹이 아기, 그리고 6-7세 정도의 여자아이와 그보다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 네 식구가 살고 있었다. 엄마는, 이 난리 통에 젖먹이 아기까지 챙겨야 해서 기운이 없는 건지 지병이 있는 건지... 다큐를 통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보호자로서 아이들을 건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아빠도 없는 집에서, 가족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건 온전히 6-7세 여자아이의 몫이다. 유명 연예인이 그 아이의 하루를 동행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양동이를 들고 가족들이 하루 먹을 물을 뜨러 간다.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가족들의 하루살이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큰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뒤뚱거리면서 간신히 텐트까지 걸음을 옮긴다. 연예인이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오히려 밝은 미소로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매우 익숙하게 물 양동이를 지고 가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벌써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임시 숙소인 텐트로 오더니, 아이가 불을 지피고 POT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유엔에서 준 구호식품(콩 통조림)을 열어서, 물에 넣고 끓인다. 통조림 구호식품도 넉넉지 않아, 콩건더기 보다는 물이 더 많은 콩스프를 끓이더니, 이내 그릇에 담아 엄마에게 먼저 가져다준다. 엄마는 아기 젖까지 먹여야 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담았다. 그리고 POT에 남은, 수프를 동생과 나눠먹어야 하는데 동생이 더 어리다 보니, 누나가 수프를 떠서 어린 동생을 먹여준다. 멀건... 그 콩 수프가... 무슨 맛이라도 날까 싶지만 어린 오누이는 밝은 모습으로 수프를 입에 넣는다. 네 번 중, 한 세 번은 동생의 입에 수프를 넣어주고, 누나 입으로는 거의 숟가락이 들어가지 않는다. 양이 적은데, 동생 배가 곯을까 봐 염려가 되는 모양이다.
6-7세... 엄마에게 한참 응석 부릴 나이이다. 간식이 있으면, 동생과 물불 안 가리고 싸우면서 더 먹겠다고 고집을 피울 나이다. 그런데, 내전과 가난은... 아이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성품을 길러주었나 보다. 기력이 없는 엄마를 먼저 챙기고, 동생의 입에 연신 수프를 떠 넣어주며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자는 아이들을 옆에 두고 숨죽여 울었다. 때로... 차고도 넘치는 것이 축복이 아니구나, 내 아이들을 위해 뭔가 더 해줄 것이 없는지 고민하고,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경험하게 해주려고 애써왔던 그간의 내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무조건 넘치도록 채워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치는 것이 일상이 되고, 풍성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인내할 힘을 잃고 오히려 불평하게 되는 듯하다. 내전으로 생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아이들을 TV에서 만나면서, 넘치도록 풍족한 내 아이들의 삶이 부끄러워졌다.
채워지지 않아서, 부족해서, 그래서... 얻게 되는 은혜와 감사, 축복도 있다. 어린아이는 그 척박한 땅에서도 그런 아름다움과 성숙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왔던 모양이다. 아이의 하루를 동행한, 연예인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난민촌을 벗어나 시내 가게에 가서 그 아이와 가족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초코바를 잔뜩 샀다. (멀건 콩스프를 먹고 무슨 힘이 있을라고... ㅜㅜ) 검은 비닐 봉다리에 대강 싸서 난민촌으로 오다가, UN 평화 유지군의 눈에 띄게 되었다. 검은 봉다리 안에 확인하더니... 이내 모든 초코바를 다 압수했다. 이유인즉, 이 모든 난민촌에 먹을 게 없는데 만약 이 초코바가 그 아이의 텐트에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난민촌에 폭동이 일어나고, 그 아이의 생명이 위험하게 될 거라고... 이런 경솔한 행동은 삼가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에나... 초코바를 통째로 빼앗기다니... 내 마음이 다 쓰렸다. ㅠㅠ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이를 만나기 위해 텐트로 들어간 연예인이... 상황을 설명하더니... 바지 뒷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한 개의 초코바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혹시라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촉이 있었는지, 초코바 한 개를 숨겨왔는데 이렇게라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건네주었다. 아이는 너무 기뻐하며, 그 초코바 한 개를 일단 잘라서 엄마에게 먼저 주고, 또 잘라서 남동생에게 주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몫인 초코바 조각을 또 잘라서, 그 연예인에게 같이 먹자고 건네준다. 괜찮다고, 아이에게 남은 거라도 다 먹으라고 하지만 기어코 연예인에게 나눠주며(같이 먹는 게 소원이라며... ㅜㅜ) 맛있게 초코바를 먹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소리만 내지 않았지... 꺼이 꺼이 통곡을 했다.
여러 가지로 복잡다단한 마음에,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잠들어 있는 큰아이와 작은 아이의 뺨을 어루만지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일상을, 우리만 감사하며 살며 안되겠구나... 때로는 부족함도 경험하며, 감내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겠구나... 지금 내 배가 부르다고, 지구촌에 굶주리는 수많은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런 마음으로 그 밤을 보냈다.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왜 그 다큐의 난민촌 아이들이 생각났을까? delete!!! 내 삶에 넘쳐나는 것들 중에, 정말 필요한 건 얼마나 될까? 정말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limit 없이 채워지는 우리네 삶이,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그럴싸해 보이고, 잘 사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제한 없는 풍족함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삶의 기초와 균형을 흔들고,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조금은 두려운 마음에서 책을 펼쳐 들었다.
21세기는 현상, 채움, 욕망, 유위의 세기다. 그러나 시민의 열광 속에서
나는 다른 불꽃을 발견했다. 반노자적 시대에 노자 기획이 먹혔다는 것은,
사람들이 말초만 추구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연, 순수, 비움을 갈망했다.
저자 김유열은 현 EBS 부사장이다. EBS 평 PD에서 편성기획 국장을 지나, 부사장의 위치에 올랐다. 죽어가는 EBS에 다큐로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냈다. 우리가 기억하는 좋은 다큐 대부분이 저자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EBS를 떠올리면 고퀄의 다큐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다큐들은 일회성 시청에 머무르지 않고,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재탕, 삼탕, 혹은 수십 탕 방송이 되는 고품격 작품들이다. 큰돈을 들여 제작한 다큐가 한번 방송되고, 그 가치가 소멸된다면 제작비 고갈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는 EBS의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을 들여 잘 만들어서, 여러 번 방영이 되어도 질리지 않은 다큐를 만들 수 있다면 꺼져가는 시청률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EBS의 본질에 맞지 않은 프로그램을 모두 delete 하고,
어린이와 다큐로 단순화시킨 것이 주효했다.
나머지 대상, 나머지 장르는 과감히 딜리트하고,
프라임 타임에 EBS를 틀면 다큐가 나오게 했다.
교양과 다큐를 사랑하는 한국인이라면 언제든지 EBS에서
다큐를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비우고 버리고 본질에 집중하니, 시청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딜리트'의 뜻은 삭제하다로 제한하지 않았다. 제한하다, 삭제하다, 배제하다, 버리다, 줄이다, 빼다, 단축하다, 박탈하다, 단순화하다, 파괴하다, 전복하다, 해방시키다, 자르다, 나누다, 타파하다, 끊어내다, 간절하다, 개방하다, 반항하다, 안티 하다 등의 모든 의미를 포괄시켰다. 딜리트는 동사며 무와 허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행동의 언어이기 때문에 완료보다 과정에 집중한다고 했다.
이 책에 딜리트를 실행한 수없이 많은 인물들과 분야들이 소개되었다.
Part1에서는 새로운 창조는, 기존에 있는 구습을 딜리트한 이후에 시작되기 때문에, 누구나 딜리터가 될 수 있다는 동기부여로 시작되었다.
Part2에서는 딜리트의 가치를 정립한 여러 철학자(노자, 니체)들을 소개했다. 저자는 니체 노자와 생각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니체는 오히려 새로운 창조를 위해 모든 것의 무화, 즉 파괴하자고 주창했다. 니체는 "선과 악의 창조자이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파괴자여야만 하며, 가치를 파괴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과거 최고의 가치를 무가치하게 하는 것이 그의 니힐리즘이다. (p28)
-致虛極 守靜篤_ "비우기(虛)에 도달하기(致)를 극단(極)으로 하고, 고요함(靜)을 지키기(守)를 두텁게(篤) 하라. 그러면 만물이 동시에 만들어진다. 창조의 원리로 허(비움)와 정(고요)의 개념을 제시했다. <<노자>>에서 허와 정은 자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성취 과정의 결과이다. 지난한 딜리트의 과정이다. (p32)
Part3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딜리트를 통해 자신의 영역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일군 여러 사람들의 예를 다루었다. 와인 판매에서 오크 통을 딜리트한 필립 바롱 드 로트칠드, 청소기에서 먼지봉투를 선풍기에서 날개를 딜리트한 다이슨, 서커스에서 동물을 딜리트한 기 라리베르테, 빵의 모든 첨가물을 딜리트하여 순수한 빵 맛을 유지한 리오넬 푸알란, 최소의 비용으로 가구를 살 수 있도록 부대비용을 딜리트한 이케아 설립자 잉바르 캄프라드, 단순하게 경영해서 이익을 소비자가에 돌려준 알디 설립자 칼 알브레히트, 테오 알브레히트 형제, 거추장 한 페티코트와 드레스를 딜리트하여 패ㅣ션 혁명을 일으킨 샤넬 등... 우리가 익숙하게 잘 아는 인물들이 어떻게 기존의 방식과 체제를 딜리트해서 현재의 성장을 이루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예들이 소개되어 있다. 얼핏... 신문이나 인터넷 기사에서 짤막하게 접했던 유명 일화들이 "delete'라는 개념을 등에 업고, 새롭게 재조명되었고, 비움을 통해 새 창조가 가능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새로운 것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유일한 방법은 낡은 것을 폐기하는 것뿐"
이라고 했다. 폐기해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포기 당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유한하다. 시간 또한 제한적이다. 누구는 하루를 24시간으로 살고, 누구는 48시간으로 사는 게 아니다. 그런데 추진하고 완성해야 할 목표의 가짓수가 많다면 당연히 각각의 퀄러티는 1/n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폐기하고 가지치기해서 정말 중요한 것만 남겨두어야, 포기하지 않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어찌 보면 참 당연한 말인데, 포기하지 않으면 포기당하게 되어 있다는... (처음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목표에 달려들지만,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목표들에 압도당해 포기당하고야 마는...) 이 평범한 진리가 왜 이리도 지키기가 어려운가? 저자는 우리가 '지금, 여기'의 노예가 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여기라는 벗어날 수 없는 다층적인 유형무형의 감옥이 인간의 행동과 마음을 가두는데, 이때 진정한 나는 사라지고 주어진 내가, 강요된 내가 나를 대신한다고 했다. 남들이 기대하는 나로 생각하다 보니, '지금 여기'의 노예가 되어 진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지켜낼 수가 없는 것이다.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주는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동경심이 역사를 바꾼다.
이 책은 EBS 현 부사장의 EBS 성공기가 아니다. EBS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자와 동료들이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모든 체제들을 delete 하면서 EBS를 현재의 모습을 끌어오기까지, delete를 통한 선택과 집중이 결국은 원하는 목표에 이르도록 이끌어주었다는 delete의 힘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한시대를 풍미하며 (혹은 여러 시대를 걸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한 사람들이 delete를 통해 어떻게 성장해왔고,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와 조직을 어떻게 든든하게 만들어왔는지 그로 인해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이 천재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넘사벽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들은 천재라기보다는 딜리터이고 우리 같은 범인들도 딜리트라는 연습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난민촌의 소녀는... 내 큰아이만큼이나 자랐을 것이다. 전쟁 통에 있었으니... 그 아이가 잘 살아있을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내 큰 아이만큼이나 자랐다면, 본인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delete된 삶 속에서 단단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너무 풍족해서, 마음이 병들어가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자랐을 것이다. 이미 풍족한데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공동체 지향적인 사람으로 자랐을 것이다. 단순히 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만 delete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delete에는 why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유와 목적이 없는 delete는 저자가 말하는 delete가 아니다. 덜어낸다면, 그래서 so what? 혹은 why에 스스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흘러넘치는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나를 분산시키는 것들은 무엇인가? 나에게 분에 넘치게 풍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delete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게 된 구습과 고정관념은 무엇인가? 현재 주어진 삶이 녹슬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비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