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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정 Feb 21. 2021

나는 분기별로 죽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살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까딱하면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 얽매여 지나간 것들에 대해 생각하느라 심히 분주했다. 그러다 수치를 온몸으로 끼게 되면, 도 나를 잃 말았다.

밤이면 절벽에 매달리는 꿈을 꿨어 두 다리를 버둥거리던 몸이 늘어질 때쯤 소녀는 웃으며 말했지 죽고 싶은데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몰라 종일 골목을 돌아다녔어 누군가 날 죽여주겠지 죽여주겠지 흥얼거리면서 말야

박은정 / 아스파라거스로 만든 인형


딱 이런 마음이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몰라 겁이 나서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지금은 절대 아님.) 당시엔 우울이라는 것이 나를 마구 집어삼켰다. 우울함의 이유는 아주 다양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스스로를 증오하는데 나는 나여서 평생 나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때 내 얼굴은 어둡다 못해 마치 산 송장 같았을 거다. 급기야 날 잘 모르는 사람들도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울에 잠식된 사람은 구제하기가 어렵다.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물론 주변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경우도 친구와 부모님의 도움을 계기로 비로소 나을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엄마 차를 타고 등교하던 중 빙판길에 미끄러져 차가 낮은 다리 밑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가드레일을 받더니 차가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더니 제멋대로 어딘가를 향해 직진했고, 그게 다리 밑이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 앞에 일어나니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아 두개골이 금 갈 정도로 작지 않은 사고였다. 다행스럽게도 몇 달간 입원 신세는 졌지만 목숨이 위중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고 직후 엠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여 이것저것 검사를 받던 와중, 엄마와 나에게 부리나케 달려온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입원 수속을 밟고 나서도 아빠의 표정이 떠오르자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아빠, 그때 내가 목숨을 잃었으면 어떻게 했을 거야?" 밝게 이야기를 나누던 아빠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지며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그럼 삶의 이유가 없어지는 건데 아빠가 살아서 뭐하겠어."


평소에 무뚝뚝하셨던 아빠의 마음을 처음으로 느꼈던 날이었다. 아빠에게 내가 삶의 이유였다는 것을 16살 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죽고 싶을 때마다 아빠의 이 말이 떠오르곤 했다. 그냥 죽어버려야지 하는 순간에 꼭 저 말이 귓가에 맴돌았, 삶의 이유를 잃은 아빠의 슬픈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특히 2019년도 말쯤에 개인적인 일로 인해 심적으로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장 좋아했던 '설리'까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내가 워낙 좋아했던 걸 가족들과 친한 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기에 주변인들은 슬슬 나를 걱정했다. 그녀의 죽음이 나의 우울함에 더욱더 힘을 실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일면식도 없던 그녀는 내게 그만큼 큰 존재였다. 때문에 내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일을 할 욕구도, 사람들을 만날 욕구도 없었고 잠도 오질 않았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내내 울기만 했다. 죽고 싶은데 죽지 못해 미칠 것 같았다. 죽을 용기는 없었으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혼자 사는 터라 상태는 날이 갈수록 위태해져 갔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았지만 혼자라 위험했다. 그나마 나를 버티게 해 줬던 아빠의 말도 점점 효력을 잃어갈 참이었다.


마침내 미국에 사는 친구가 내 상황을 알게 되자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 나를 보살폈다.  아끼던 친구에게 12시간이 넘는 시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게 시도 때도 없이 꾸준히 연락을 며 나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계속 공기를 깨야 돼. 알겠지. 고여있으면 안 돼.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그래야 돼. 너는 너무 아름다운 사람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 나도 그래.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알아.

우울함이 극에 달하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까지 가게 되는데,  사랑하는 친구가 나를 잃지 않으려 보낸 메시지와 진심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친구의 보살핌에도 배은망덕한 나는 나아지다가도 다시 악화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이다 싶었다. 상태가 악화되다 못해 오늘이 내가 진짜 세상을 떠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하루가 있었다. 그날도 역시 새벽 2시까지 눈물 콧물을 쏙 빼고 있었다. 너무 울어서 머리가 아프고 코가 맹맹했다. 이제 정말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시간이 새벽 2시가 넘는 시각이라 전화가 올 곳은 없었다. 분명 그랬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전화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할리는 더더욱 없었다.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끊기게 뒀다. 그러자 알 수 없는 발신자는 질세라 계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결국 휴대폰을 끄기로 마음먹고 딱 드는 순간, 보고야 말았다. 발신자는 '엄마'였다.


엄마가 새벽에 전화를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 그렇듯이 주무실 시간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죽을지 고민하던 중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첫마디는 더 가관이었다.


"딸, 무슨 일 있어?"


받자마자 며칠간 아무렇지 않은 척 문자를 주고받았음에도 내 상태가 들통났나 싶었다. 나는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니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숨을 헐떡거리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꿈에서 네가 올 시간이 아닌데 집에 찾아왔길래. 너무 생생해서 깨자마자 전화했어."


내가 혼자 사는 지역과 부모님이 사는 지역은 차로 약 3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자가용이 없는 내가 새벽 2~3시경 그곳에 갈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엄마는 아무 일 없다는 내 말에 안도하며 꿈속의 내가 표정이 어두워서 무서웠다고 메어가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탁! 하고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왜 죽으려고 했지? 내가 왜 죽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말 갑자기 그랬다. (왜 그런 꿈을 꾸셨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무척 힘들었고 종종 죽음을 생각했기에 말 한마디와 전화 한 통으로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어쩌면  순간도 빠짐없이 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발 나를 말려달라는 신호가 엄마에게 통했는지도 모른다.


그 날 이후로 꽁꽁 숨어있던 동굴 속에서 나와 처음 세상에 발을 내딛듯이 조심스레 생활 반경을 넓혔다. 집에만 있다가 밖을 나서니 못 본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몇 달 만에 집을 나왔을 때,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자국 하나 없이 새하얀 눈이 쌓여있는 길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곧이어 용기를 내 직접 눈을 밟아봤다.  뽀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 나는 많은 일들을 해고, 이제는 정신적으로도 매우 건강하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친구들을 만난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살고 싶어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도 생겼다. 자신도 모르는 동안 삶의 끝자락을 넘나 들고 있을 내 소중한 사람들을 알아채려고 눈에 불을 켜며 살고 있다. 한데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다. 그래서 삶을 잃고 싶은 순간이 오면 내게 어떠한 신호라도 줬으면 한다. 좀 늦더라도 알아챌 테니 그때까지만 힘을 내줬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란다. 말 한마디와 전화 한 통으로 사람을 살릴 수는 없겠지만, 결국엔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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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명의 은인과도 다름없는 미국에 사는 친구, 젬마의 브런치 주소 첨부해 드립니다.

https://brunch.co.kr/@mysticcandy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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