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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정 Oct 24. 2023

남자친구의 동업자가 도망갔다. (1)

동업은 절대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진리다!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회사원이었다. 요즘 많은 2030 세대들이 그러하듯 그에게는 하는 일과는 완전히 무관한 꿈이 있었다. 반면에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항상 관련 업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꿈을 응원하는 걸 넘어서 그가 안쓰럽기 시작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다 하고 사느냐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가 꿈을 좇으며 살았으면 했다. 철없는 소리인 것을 알지만 나는 꿈이 없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를 만나기 전에도 항상 꿈을 위해 퇴사를 ‘생각’만 했던 그였다. 돌아보니 나는 그런 그에게 자꾸 부채질을 했었다. 결국, 그는 회사를 그만뒀다.


남자친구가 회사를 그만둔 후 우리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에게 시간이 많아서였다. 드라마 일을 하는 나는 바쁠 때는 미친 듯이 바빴고, 한가 할 때는 백수처럼 한가 했다. 내가 한가한 날에는 남자친구와 하루종일 데이트를 했다. 현장에서 감독님께 코로나를 옮아온 나를 주저 없이 안아주기도 했다. 나란히 코로나에 걸린 우리 둘은 삼시 세끼를 배달 음식을 먹으며 사이좋게 살이 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취향이 참 잘 맞았다. 음식은 물론이며 영화 취향 심지어는 취미까지 완전히 들어맞았다. 운명의 상대를 만난 듯했다. 이런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 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연애를 해봤지만 이제야 짝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의 꿈과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주제였다. 친구였던 기간에는 서로 하지 못했던 아주 깊숙하고 예민한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원하는 꿈을 이루려면 시간이 있어야 했다. 바로 ‘오디션’을 보러 갈 시간이.


맞다. 그는 연극영화과를 졸업했고, 여전히 그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간절하게 연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항상 방해하는 요소가 있었고, 늘 그 방해요소가 그를 이겼다. 한창 중국 영화판이 커졌을 때 그는 중국의 큰 영화에 캐스팅이 됐었고 꽤나 큰 비중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곧 사드가 터졌고 모든 촬영을 마친 영화마저 개봉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크든 작든 무언가가 그를 방해했다고 했다. 내가 볼 때는 솔직히 크게 와닿진 않았다. 나는 눈앞에서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불신이 있다. 남자친구가 이루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어떠한 원망이나 질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큰 사건이 하나 생기고야 말았다.


다시 배우 일을 해보려는 그에게 회사원 신분으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는 쉽지 않았다. 연출팀이 정해준 오디션 날짜와 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연차나 월차, 반차를 매번 쓰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많은 배우들과 배우 지망생들은 알바나 개인 사업을 많이 한다. 남자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준비했다. 돈 벌이는 해야 하기 때문에, 에스프레소가 있는 카페를 열 계획이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혼자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나 보다. 어느 날 갑자기 20년 지기 친구와 함께 하기로 했다고 했다. 몇 번이나 함께 하려고 했지만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건 이번에 처음이라고 했다.


20년 지기 친구는 중학교 친구라고 전해 들었었다.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나 이름은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누군지는 인지하고 있었다. 한데 그 친구는 커피보다는 술장사를 하고 싶어 했다. 그분의 친척분이 아주 크게 프랜차이즈 사업에 성공하여 이름만 들어도 아는 곳의 대표라고 전해 들었었다.  남자친구의 친구는 그 친척분이 어묵 공장을 짓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열려고 했던 가게는 카페에서 어묵이 있는 이자카야로 종목이 바뀌었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결정이었다. 남자친구는 그만큼 친구를 믿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이 모든 이유를 대변하는 듯했다. 차근차근 준비하며 친구와 모든 비용을 반씩 내고 작은 가게를 오픈했다. 그런 그의 친구가, 가게를 연 지 한 달 만에 잠수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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