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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May 29. 2024

  어떤 멍은 투명하다. 그래서 나조차 내가 멍들어 있었는지를 알아채지 못한다. 그 멍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내 것과 비슷한 멍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잘 발견된다. 내 멍을 알아챈 상대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괜찮냐고. 보이지 않기에 그 멍은 내 것이 아닌 게 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괜찮아야 하는지 아니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나는 되려 상대의 멍을 보며 말한다. 괜찮냐고. 상대도 나와 다르지 않게 괜찮지 않을 리 없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이의 눈에는 보이는 그 멍에 상처라는 이름을 덧붙여 본다. 하얀 피부 아래에서 퍼렇게 번지는 이 상처에는 천천히 곪아가는 속성이 있다. 그 때문에 은근한 통증은 남긴다. 이 상처는 안으로 안으로만 곪아가기에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상처를 보기 위해서는 나에게서 일정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와의 거리 두기는 어쩐지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렵다. 그러하기에 살을 파고들어 뼈를 상하게 할 지경이 되어 말로 표현하기 힘든 통증을 느끼고서야 내 속에 상처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애석하게도 그때는 상처를 도려내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다. 새살과 새 뼈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회복력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슷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촉수가 발달되어 있다. 자신의 상처는 보지 못하나 타인의 상처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멍든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에게만은 속을 터놓을 수 있게 된다. 속에 있던 말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면 그제야 알게 된다. 자기 속에 그러한 상처가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멍투성이의 사람들이 뱉어내는 재 같은 말을 꽤 많이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세 가지 있다. 바라봐 주고 귀를 열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멍은 옅어질 수 있다는 것, 멍이 옅어지면 표정이 밝아진다는 것, 내 속에도 그와 같은 멍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 깨우치게 되었다. 멍은 들기도 하는 것이지만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인생은 멍투성이기는 하지만 그게 영구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멍을 사라지게 할지 멍이 들게 할지는 결국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 또한 멍이 남긴 교훈이었다. 


 

Icarus_Henri Mati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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