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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Z Jun 01. 2024

햇살과 바람 그리고 바다라는 반창고

빛에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고독이 깊어진 탓인지 아니면 전쟁통 같던 마음이 끝내 다 타 버린 탓인지 요즘은 햇살 속에서 속삭임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 속으로 속삭이게 된다. 밝은 날이 이어져서 다행이라고. 사무실이 해가 잘 드는 곳에 있어서 감사하다고. 이른 아침 출근해서 햇살을 보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창 너머로 비쳐 드는 햇빛이 만들어낸 빛 조각을 보고 있자면 아이의 포동포동한 손이 떠오른다. 그러면 어떠한 편견도 날도 없는 부드럽고 따뜻한 손이 상처에 닿을 때의 따끔거림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상처투성이의 가슴에 닿은 햇살이 남기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고서야 나의 상처가 깊었고 내가 그동안 많이 아팠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돈다. 죽을힘을 다해 뭔가를 견뎌내고 있는 것 같은데 누구 하나 힘든 시기를 마주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하소연을 늘어놓으려 할 때마다 혀를 깨물고 있었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앞에 두고 투명한 햇살이 만들어내는 빛의 조각 위에서 양팔을 감싸 안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어깨를 토닥이며 괜찮아, 괜찮아, 한다. 그러다 보면 명치에 걸려 있던 뭔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그 속에서 천천히 숨을 내쉰다. 그러면 왜인지 깃털만큼의 가벼움을 느끼게 된다. 그게 숨통을 틔워준다. 가슴에 묵혀 있던 말이 한숨에 실려 나가는 것 같은 것이다. 

깃털 무게만큼의 뭔가를 덜어내고 창틀과 햇살이 만들어주는 빛의 동굴에 두 다리를 내려 둔 채 웅크려 앉아 있다. 바람이 바닥에 쌓여가던 한숨을 창밖으로 밀어낸다. 바람의 매만짐에 안겨 있다 보면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부는 한, 이렇게 문자로 호흡을 할 수 있는 한 괜찮지 않을 것 같은 일도 더는 무리다 싶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 순간이 죽을 만큼 힘든 것뿐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울며불며 못하겠다고 소리쳤지만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결국에는 내 손에 이른 것들을 하나하나 다 해 냈다. 그리하여 그 과정을 극복하고 난 후면 어김없이 성장해 있었다. 물론 그만큼 상처도 늘어나 있지만 그 상처 위에는 항상 햇살과 바람 그리고 바다라는 반창고가 덧대져 있었다. 그러고 보면 상처가 곪아 썩어가지 않게 해 주는 바람과 햇살 그리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버텨내 볼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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