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화분을 받았다. 받을 때는 좋았는데 사무실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꽃을 기를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했었다. 일신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내가 흙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것들을 온전히 길러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우려와 달리 화분 속 생명들은 여름까지 부지런히 꽃을 피워냈다. 그 부지런함이 책으로 둘러싸인 어둠의 굴 같던 사무실에 생기가 돌게 했다.
창을 열어두면 꽃잎이 하늘거렸다. 부드러운 움직임이 살아있음의 인사가 되어 상처투성이인 가슴을 매만져주었다. 만개한 꽃의 아름다움이 영원하면 좋으련만 꽃은 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지고 나면 다음 해 다시 몽우리를 틔우는 것이 꽃의 숙명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까지 뼈가 아릴 정도로 시린 겨울에 안겨 있었기 때문일까. 꽃이 지는 게 서글퍼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그 때문인지 바닥을 채운 마른 꽃잎을 보면 차마 버리지 못하고 화분 위에 올려두고는 했다.
느린 주말을 보내고 출근한 어느 월요일, 마르지도 않은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이 남긴 그림인 듯 바닥을 수놓고 있는 꽃잎을 보는데 우두둑 우두둑하는 빗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슴에서 이별의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르지도 않은 꽃잎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바닥으로 수렴한 것이 마음 아파 눈물이 아른거렸다. 눈물을 머금은 채 멍하니 꽃잎을 바라보고 섰는데 아물지 않은 가슴속 상처가 간질거렸다. 생을 다해가던 꽃잎이 남긴 무언의 위로가 덜 아문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게 하고 있었다.
꽃잎을 주워 책장에 얹어두고 두 손을 모았다. 찬란한 죽음이다, 아름다운 이별이다, 고마운 매만짐이다,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눈물이 몸으로 번지며 꽃향기를 피워냈다. 온몸에 스미는 눈물을 삼키며 차가웠던 내 봄에 닿은 따뜻한 꽃의 도래를 마주했다. 어차피 지게 될 것이라 해도 가지 끝에서 아슬아슬하게나마 생을 조금 더 이어가 주었으면 했는데 온 힘을 다해 꽃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가지를 보며 그 또한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소리 없는 낙화가 가슴에 닿았다. 아직 채 다 녹지 않은 호수 위에 닿은 꽃잎에서 파문이 일었다. 살아있었음의 생기가 언 가슴에 온기를 남기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