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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job 조은 Apr 03. 2024

2024년 1분기 회고

"빛나는 것들은 많아. 그 안에 진짜를 봐봐"


2024년 1월에는 퇴사를 했다.


 회사가 있던 명동과 을지로 일대의 연말은 정말이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크리스마스에 가까워질수록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일대의 화려함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구에 가게마다 이것 저것 꾸민 것들에 가는 곳마다 발걸음이 멈추고 눈을 뺏겼다. 어느 날은 dingo에 올라온 엑소의 킬링보이스를 들으며 그 빛나는 거리를 지나 퇴근하는데 <Call me baby>의 가사 한 소절이 귀에 들어왔다.


"빛나는 것들은 많아. 그 안에 진짜를 봐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연말이 지나고 2024년이 되면
이 곳은 어떤 모습일까?




2024년까지 갈 것도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자마자 불이 들어오지 않은 전구들에 앉은 먼지들부터 보였다. 빛이 닿은 곳과 조형물이 있던 곳은 모두 빈 공간이 되었다.


일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빛나는 게 보일 때마다 눈을 같이 반짝이면서 눈을 뺏겼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연차가 쌓일수록,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수록 자신감이 붙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두려움과 공허감도 함께 들기 시작했다. 그 두려움과 공허감은 정말로 잘하고 싶고 책임지고 싶은 분야가 생기면서 진짜로 커지기 시작했다. 난 이걸 공부해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도 될까, 큰 기회를 얻어도 될까, 내가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이유도 모르고 일단은 성공시켰다는 감각을 가져가도 될까? 분명 이유가 있긴 하겠지 근데 실패해도 내가 제대로 알고 실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제대로 이유도 모르고 성공하는 건 정말 두려웠다.

언젠가 나를 밀도 있게 압축해서 봤을 때 내가 아무 것도 아닐까봐 그러면 정말 무너질까봐 그게 내가 진짜가 맞는지 한 번도 안해본 의심을 들게 했다.


회사에 있을 땐 혼자 하는 게 사실은 하나도 없다. 다 조직의 지원과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보다 내가 더 크게 보이는 것 같은데 그 지점을 내가 짚어낼 수가 없어서. 내가 나를 감각할 수가 없어서. 나는 여기 있는데 나를 담는 게 그만큼 커지는 것 같으면 커진 크기만큼 공허하다고만 느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너무 커서, 나를 보고 있는 게 나보다 커서 두려웠다.


조망능력이라는 게 생긴걸까. 이제는 빛나면 이게 꺼질 시간이 있을 거라는 걸 인지하게 됐고, 무언가가 커지게 되면 무너질 공간을 인지하게 됐다.

안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된 나는 예전처럼 마냥 설레하기만 할 수 없었다. 이게 부실하게 지어진 거라면, 한 철 지나고 끝나버릴 이벤트라면 근데 그게 나라면?







무엇보다 몸과 마음 건강이 무너지고 나서는 인생에서 내가 보고 쥐고 함께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세상에 좋은 것들이 진짜 많은데 나에게 좋은 것이 다른 거구나.


그때 당시에 작사 수업과 관련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책에 "좋은 가사는 뭔가요?"라는 질문에 이런 답이 쓰여있었다.



좋은 가사는 없어요. 내가 좋아하는 가사가 있지요.
그 가사의 특징을 찾다보면 좋은 가사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회고 같은 걸 왜 하냐고 하면 그냥 내 기분이 좋아지려고 하는 일이다. 그래서 쓸데 없이 오래 정성스럽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함께하길 바라는 것을 잘 쥐고 봐주면서 인생을 보내야 겠구나. 화려하진 않아도 그냥 그렇게 마음 편하게 있는 게 진정성이니 진짜니 하는 거였구나 그걸 깨달았다.



나는 내가 좋은 것의 편을 들어준 적이 있었나? 봐준 적이 얼마나 있었나?



제작년의 일기는 내가 나에게서 뛰쳐나간 기록, 작년의 일기는 내가 나에게 머물러주려고 노력한 기록이면 아마 2024년 1분기는 내가 앞서서 나를 이끌어주고 머물러준 일기가 가득하다.


1월 내내는 몸 건강 회복에 신경을 쓰고, 그 다음은 마음 건강 회복, 그 다음이 일인 것 같다.

사실 이 모든 게 하나씩 된 건 아니고 다층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됐다.



1분기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들은 노래로 시작











몸 건강



1. 목소리와 발음, 숨 쉬는 방법


회사를 다니면서 나중에 되어서야 많이 한 생각은 '숨 쉬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 내가 원래 어떻게 말하는 사람이었지' 였다. 누가 숨을 못 쉬게 해서도 아니고 말을 못하게 해서도 아니다. 이성적인 척 하는 말하는 화법만 배웠다. 남이 원하는 말만 해주다 보니 내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이제는 원하는 정도의 말들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마음에는 잘 정리되는데도 말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은 잊어버리거나 글이 되거나 했던 것 같다.


특히 1월에는 약을 너무 많이 먹으니까 목소리가 완전히 맛이 갔다. 프로젝트 매니저 하면서 전화를 한참 많이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간 목소리가 더 가버렸다. 나는 목소리가 장점인 것 같은데 인어공주 마냥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 그리고 고치려고 했던 몇 가지 발음이나 화법들을 이번 기회에 정말 고칠만한 점인지, 고칠 수 있는 것인지 돌아보고 필요하다면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 것으로 잘 만들어보자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살펴본 자료는 신입사원 때 녹음한 오디아였다.

이 때는 MC 일도 해본 적 없었고, 퍼실리테이터 일도 해본 적 없었고 어떤 기술적인 것도 배운 적이 없었는데 그냥 내 목소리와 내 발음과 내 숨으로 있는 그대로 원고를 읽어내는 게 이상하게 서툴지만 괜찮게 느껴졌다.

그 때는 부족한 점만 보였는데 다시 들어보니 괜찮은 점만 보였다.





그러고 돌아본 건 지나 매니저님께 보이스 코칭을 받은 날의 메모였다.


그 때는 '친근하다'는 내 특성을 처음으로 장점으로 느끼게 해준 것과 대조되게 매력으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리고 이제는 매력이라는 걸 안다. 사람이 함께할 때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건지 내가 느꼈기 때문이다. 저 때의 나는 열정이니 관능이니 하는 것만 매력인 줄 알았지만 편안함에서 진짜 모습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편안해야 더 많은 것을 함께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후에는 매일 매일 이 세가지를 했다.


1. 거울을 보면서 ㅡ, ㅗ, ㅜ 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발음 내기

2.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구절은 하루에 한 번 소리내기

3. 여유가 되면 유튜브에 찍어 올리기, 계절이나 주제, 공간과도 나를 주고받는 느낌을 계속 만들기



이후에는 보이스 코칭을 받은 날에 썼던 글을 가지고 라디오를 녹음한 걸 들었다.

좋아하는 문장을 읽을 때, 내가 쓴 글을 읽을 때 내 목소리가 참 편안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니 이 라디오를 어떤 분이 밤에 잠이 안 올 때 들었는데 너무 편안히 잠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 내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 목소리를 내가 잃지 않는다면 또 잊지 않는다면 오래 내 목소리로 이야기와 에너지를 전할 수 있을까?

먼 훗날 내 목소리는 이 라디오를 녹음했던 시기에 지나 매니저님이 이야기해주셨던 6시와 같을까 아니면 어떤 분의 자기 전 시간과 같을까? 아니 나는 내 목소리의 어떤 시간대를 사랑할까. 그 모든 시간대를 깨우고 사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집밥과 식단일기



회사에 다닐 때는 도시락이었다면 백수는 집밥이다. 백수라는 말 되게 자유롭고 좋다.

그리고 백수가 되면서는 식단일기를 더 잘 쓰기로 했다. 일종의 업무일지 같은 개념이다. 내가 할 일은 나를 잘 먹이고, 잘 보살피는 일이니까 그거를 잘 해야 한다.


전자레인지용 식기를 산 게 가장 잘한 일이고,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카페나 식당에서 가볍거나 뭐랄까 식감이 좋아서 마음에 드는 식기를 발견하면 브랜드를 물어봐서 사왔다. 이건 조금 멋진 일이다.



1월 - 2월 - 3월 점점 발전하는 중



가면 갈수록 조리법도 디테일 해지고 어떤 걸 어디까지 먹어야 내 상태가 어떤지, 어떤 재료는 어떤 걸로 어떻게 하면 최적의 상태인지도 알게 되는 게 재밌다.



내가 가장 많이 먹는 매뉴를 릴스로 찍어봤다.

생각보다 릴스 조회수가 잘 찍혔다. 하지만 나에게 떨어지는 건 없습니다.





나이 들수록 내가 먹는 게 나라는 것을 더더욱 느낀다.

자주 먹는 것은 이렇게 레시피화 해두고 요리 해먹으면 할 때마다 평균 이상으로 좋은 기분이 든다.

요리하는 거 참 좋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게 곧 내일의 내가 된다면 내가 되는 것 하나 하나 내가 안다는 점이 재밌다


좋은 재료를 고르고, 안 상할 수 있게 냉장고를 잘 운영하고, 내가 그 재료들을 잘 다뤄서 하나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거, 요리하면서 인생을 배웁니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세상에 있다는 게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지 모른다. 근데 이것마저 내 뜻대로 안되니까 조금씩 맞춰가는 거, 그래도 내일은 달라지는 성장의 기울기가 바로 보이니까 그게 재밌다.





그리고 실제로 심리 에세이 보는데 기분과 감정은 장에서 나온다고 한다.

무슨 뜻이냐면 잘 챙겨먹어야 만사가 좋다.











마음 건강



“아니 왜 가장 원하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 해요? 손때 묻은 원하는 것.
계속 들었다가 말았다가 매대에서 집었다가 만졌다가 한 그거, 손때 묻은 원하는 걸 가지세요“


라디오를 듣다가 갑자기 혼났다.

근데 꼭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완벽한 목록을 짜고 그것들을 직접 보고 비교까지 하고 둘러보고 아무 것도 안 사고 나오는 그런 사람. 그거 나다. 원래 그렇진 않았고 언제부턴가 그렇게 됐다. 아는 것도 많아지고 예산도 늘어났는데 정작 가질 수 있는 건 없어진 모순이라.. 근데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싶어서 그런 목록을 짜고, 거기 가 있었나 나?

그런 모순을 겪어내는 동안 나의 마음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봤다. 회복은 거기서 시작됐다.




1. 카카오톡 삭제하기


퇴사를 앞두고 카카오톡 계정을 탈퇴했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카카오톡이 생긴 중학교 때부터 연락하는 걸 귀찮아했다. 하지만 과 단체 카카오톡방에 있으면 뭔가 족보든 뭐든 도움이 될지 몰라, 이 직무 커뮤니티에 있으면 뭐라도 연결될지 몰라 뭐라도 알게 되고 뭐라도 연결되긴 했는데 결국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로 필요한 건 내가 카카오톡으로 이렇게 있지 않아도 오더라.


카카오톡을 삭제하고 얻게 된 가장 큰 것은 진짜 관계가 무엇인지였다.

나를 필요하다고 여겨주는 것은 느슨하게 연결되어서 오는 게 아니라 나를 꽉 잡고 어떻게든 오는구나.





그럼에도 파일과 사진 전송하는 데에 카카오톡 만한 게 없어서 다시 다운로드 받았다.







2. 3-6년 간의 일기 읽기


나에게 고맙게도 퇴사하고 하루도 안 심심했다. 3년 길게는 6년까지 매일 하루도 빠짐 없이 과거의 오늘 내가 써둔 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봤다.


일기를 읽으면서 내가 두렵다고 느낀 것, 공허하다고 느낀 것, 그럼에도 자신 있었던 것들 그것들을 하나씩 다 확인해봤다. 그게 진짜인지. 오해한 건 없는지, 그렇게 오해와 이해가 뭔지 한 번 더 발라내고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고서야 나는 나의 감정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직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국어 시간에 배운 평면적인 인물이니 입체적인 인물이니 하는 개념이 이런 의미와 쓸모가 있었구나. 소설 속 인물 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도 그렇게 이해하고 만들어야만 입체적인 인물이 되는 것 같다.


입체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너무 많은 혼란을 겪었다. '진짜 나'는 하나라고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그것만 쫓아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많은 일기를 보고 나서 나는 단 하나만 정리했다. 단 하나의 계획만 짰다.


'나를 어떻게 봐줄 것인지'

이제는 바람을 내가 다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그 앞에서 내가 돛을 어떻게 펼 것인지 내 태도만 정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야 1월 중순에 2024년 첫 일기를 썼다.



내가 2024년에 원하는 건 ‘알아보기’다

어떤 순간 어떤 맥락에서 만난 누구는 나에게 개성이 강하다고 하고, 누구는 차분하단다.
누구는 말을 잘한다고 하고, 누구는 지나치게 말이 없단다. 누구는 솔직하다고 누구는 속을 전혀 모르겠단다.  근데 그 모든 게 다 나다.

내 안에 하나의 답이 있는 것 같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 답 역시 어떤 순간 어떤 맥락에서는 안개와 같이 뿌옇게 변하기도 했다. 내 마음은 아직도 뿌연 안개와 같은데 그걸 선명하게 설명해야 하거나 변명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이런 말을 원하겠지 싶은 말을 늘어놓다 스스로 내내 불만족스러워 졌다.

생각해보면 인생의 고통은 내가 애매한 사람이라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애매하기 싫어서, 뭐라도 썰어보려고, 뾰족한 게 되어보려고 자아가 한 발 서기처럼 어려운 자세를 하고 그걸 유지하려고 할 때 고통스러웠다. 근데 생각해보면 내 자아는 그냥 드러누워 있어도 되는 거고 조금 넓게 공간을 쓰면서 애매한 상태로 존재해도 되는거다. 그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내가 나를 혼내고, 해내면 다음엔 더 어려운 자세를 요구했다.

내가 더 특별한 존재가 되길 원해서 인생이 괴로웠고, 그 때문에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는 특별하지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인생의 주인이 아닌 광대로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는 광대도 아니고, 관객도 아니고, 주인이 될거다.
대신 남의 인생에서는 또 기꺼이 관객이 되어주자.



그리고 블로그에 52개의 일기, 다이어리와 메모장까지  드러누워서 아주 많은 일기를 썼다.






일기를 보면서 느낀 건데 선택할 거면 좋아하는 걸 선택하면 된다.

선택하는 게 나는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시작이더라. 이제부터 진짜 일기장에 그 이야기가 적힐 일이 많아진다.


"뻔뻔하게 사랑 받고, 당당하게 사랑하고, 보고싶으면 보고, 재밌으면 웃고, 좋아서 한 말에 반응 없다고 되려 먼저 헛웃음 짓지 않으면서 앞으로 잘 부탁해"




개인적으로는 일기장으로 내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게 가장 좋은 점이다.







3. 한 달에 한 번 나와의 데이트


내가 나랑 제일 좋은 곳을 가주기로 했다. 집에만 있다보면 또 가던 곳만 가다보면 하던 생각하고 경험만 하게 되고 결국 맴돈다. 나는 나의 양육자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는 그리고 내가 나를 가장 잘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나와 데이트를 해주기로 했다.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3-1 경주


연말이지만 첫 데이트고 2024년의 가장 중요한 감정선이 이어지니 넣는다.


경주에서는 좋은 고립의 경험을 했다.

혼자 들어가서 기타도 치고, 불멍도 하고, 2023년에 읽었던 책 중 가장 좋았던 책들을 다시 읽었다.

시간과 타이밍, 예술, 사랑과 동경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예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잠깐 봐도 눈에 들어오는 카피 한 줄 의 공식, 000 잘 찍는 법 같은 것들이 난무하지만 결국 탁월함은 그런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탐구하는 예술에서 오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된 후에야 ‘눈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잡기 위해 더 나은 방안을 없을까?’

‘아 이 정도 표현은 부족해! 지금은 혼자 여기 서서 좋다고 푯말 정도나 들고 있는 느낌이야 저 사람들이 있는 저기까지 내가 찾아가서 이거 참 좋다고 말해주고 싶은데’라는 고민 끝에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변해갈 필요를 느낀다. 내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원하는 지 제대로 봐야만 성과를 낼 수 있는 일.

그러니까 알고보면 예술에 속하는 것 같아서 정말 정말 좋다. 오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진득한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지만 날마다 답이 다른 이 일이 좋다. 답이 없다는 게 답이라니..  매력 있어.


사랑과 동경

사랑과 동경의 구분법을 알게 됐다.
사랑은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은 것
동경은 그 사람처럼 되고 싶은 것

구분해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 동경은 동경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생각해봤다.
동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것, 사랑은 그것이 보여주는 것을 함께 가는 것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서 대부분의 것들을 동경해왔다.
예를 들면 나.

근데 또 생각해보니 나에게 동경은 사랑의 진입로인 것 같다.
나는 내가 보지 않은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또 보고 있다고 내가 그 앞에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습니다’의 페이크일지도. 둘 중 하나다. 보고 있는 거에게 가거나 아니면 여기 있는 것들을 보거나.

나는 보고 있는 것도 갖고 싶고 여기 있는 것도 보고 싶으니 이제는 쫓지 않고 둘다 눈 마주치면서 차분히 간다. 가서 내가 가진 것들과 그걸 만난다.

아무튼 이제는 사랑하니까 함께 간다. 머물러준다.




3-2 담양



담양은 언젠가 가게 될 줄 알았던 곳이다. 그것도 꼭 눈이 오는 날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2022년에도, 2023년에도 눈이 올 때 '죽녹원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회사에 당일 연차를 낸다는 건, 사실 정작 그 소중한 연차를 내고도 전라도의 저 남쪽에 있는 담양 씩이나 향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 날 출발하면서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더라.




전라도에서 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직무 교육 강사를 할 때 그래도 여행 코디네이터 직무 교육이기도 했고 내가 알아봤자 얼마나 안다고 혼자 떠들지 말고 이야기를 나눠보자 하고, “우리의 여행 경험을 나눠보자”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분이 눈 오는 날의 담양 죽녹원 이야기를 하며 덧붙였다.


“저는 휠체어를 타서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눈 오는 날 죽녹원을 가고 내가 내 힘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곳 한 가운데에 있다는 게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나는 언젠가 눈 오는 날 내 발로 죽녹원을 오게 될 거라고, 그 때 분명 그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꽃을 모르거나 마음 속에 꽃이 없는 사람은 꽃밭에 가도 그걸 알아보지 못한다는데 나는 한 학생 분 덕에 나도 몰랐던 아름다움을 배웠다.

언젠가 만날 그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작년엔 오디아 원고도 적었다. 이걸 들으며 담양으로 가는 길이 괜시리 폭닥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계속해서 “눈이 오는데 꼭 가야할까?” 라고 걱정스럽게 묻는다.

“엄마 눈이 와서 가는거야“라고 답하고는 간다.












선물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을 선물 같이 대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참 재밌고 좋다고. 인생의 진짜 재미는 덤도 아니고 게임도 아니고 선물이라는 데에서 오는 거였구나

나도 세상에 선물을 받았으면 선물을 줘야지
문득 어릴 때 나의 꿈을 생각했다. 돈 진짜 많이 벌어야지, 대기업 들어가서 최고의 회사원이 되어야지, 유네스코 전문관이 되어야지 이런 게 내 꿈이었을까? 그런 크고 별거 아닌 게 내 꿈이었을리가 없다.

나는 매 순간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런 작고 거창한 거나 빌었다. “회사 같은 건 너 힘들게 하면 언제든 그만 둬도 돼”라던 엄마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제야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다. 완전한 내 편이 늘 있었는데 알면서도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인생은 결국 혼자라며 고집스럽게 굴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 인연

영화 <윤희에게>의 쥰과 윤희의 편지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인생의 마지막 인연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눈물이 난단다. 그 사람 아프면 눈물이 나고 어쩔 줄 모르겠단다. 안 아팠으면 좋겠단다
그게 뭐야. 사랑은 설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안 아팠으면 좋겠는건가?

그럼 나도 빌어본다.
지금 어딘가에 내 마지막 인연이 있다면 아프지 말라고. 오늘 같이 추운 날 어디서 넘어져서 다치지 말고, 추운 데에서 자다가 입 돌아가지 않기를.

그리고 만나면 말해줘야지
”오 입이 제대로 붙어 계시네. 그거 제가 어제 입 돌아가지 말라고 빌어서 그래요“
뻥이다. 이상한 사람 취급 받을까봐 말 안한다.
하지만 마지막 인연이라는 확신이 들면 이상한 사람 취급 같은 게 두려울까? 원래 조금 이상해야 죽을 때까지 기억할 만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다리든 입이든 하나는 오늘 마음으로 챙겨줬으니 앞으로 마지막 인연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데에는 내 지분이 충분히 있다





3-3 도쿄


이상하게 나에게 ‘도쿄’라고 하면 꿈 같은 도시였다. 누구는 LA Dream 이라는데 나에게는 이상하게 파리, 도쿄 이 두 도시는 꿈처럼 마음에 자리잡혀 있었다. 일본을 간다고 하면 겨울이 제철이라는 삿포로도, 빵야의 도시 오사카도 아닌 도쿄! 도쿄를 원했다.


내 꿈의 특징이 뭐였는지 짚어보니, 나는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낸 걸 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이나 문화유산 같은 곳이 좋았던 것도 기술도 뭣도 없던 시절 정교하게 깎여진 건축물과 하나하나 의미와 쓰임을 다하며 쌓인 자연재료과 그 위의 그림이니 장식품이니 하는 게 시대와 사람의 마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뭐든 빠르게 만들지만 하나의 건축물을 짓기 위해 인생은 바쳐야 하던 시대에, 하다 못해 자본주의 시대도 아니라 그거 한다고 내게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 때에 무언가를 인생을 걸고 아름답게 만들기로 택하는 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이 들어있는지 그냥 짐작할 뿐이다.

그 마음 중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보고 감탄할 게 있으먄 좋겠다, 나는 이게 참 좋은데 내 밖에도 오래 오래 남아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도 있겠지


도쿄에서는 무엇보다 산책일기를 영상으로 남긴 것, 커리어 정리를 한 게 좋았다.

처음에는 6일간 산책 일기를 영상으로 남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도쿄에 들어서자마자 오늘부터 6일간은 영상으로 남기리라라고 생각했다. 그냥 뭐 하나가 감탄스러웠던 것도 아직 기억할 만한 게 생긴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여기서 내가 감탄할 것들이 많이 생길거야, 여기서 내가 기억할 만한 게 많이 생길거야’

그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분명 생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세

그냥 이제는 바른 자세만 중간 중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내 자세대로 사는 게 맞구나 싶다. 멋진 자세보다는 내 몸의 상태는 어떤지, 내 앞의 것들을 내가 잘 집고 잘 보고 제대로 쓸 수 있는지에 신경쓰기로 했다

일본에 와서 춤을 배우는 한 분이 장인정신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은 춤도 정답이 있는 느낌인데 일본은 더 내 것에 집중하는 느낌이에요.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기본기가 묵직하다고 해야할까?“

그 말을 듣고 또 [내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을 템플릿처럼 쓰면 빠르게 있어보이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무너지고 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 능력으로 시작해서 만들려면 참 형편 없어보이는데, 사람이든 뭐든 그 초라하고 형편 없어보이는 그 시기를 견디고 지나야 내 것이 좋아보이는 것 같다.

원래 내 것이란 그런가.
하지만 그러고나면 그거 하나로 세상을 어마어마하게 커스터 마이징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내 표정과 시선

원래 여행의 묘미는 돌아오는 길과 돌아와서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같은 것이 더 소중해진다. 꿈에서 깼을 때 현실이 분명 더 좋다.

이제는 현실의 나를 볼 사람이 내가 보고 가는대로 나를 찾아오게 지도를 그려야지.
그나저나 마지막 날에 한국 책을 읽는 나를 보고 알아본 한국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게 참 좋았다. 서로 마주보며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좋은 친구인 것 같다.

작년에 깨달은 가장 큰 건 이젠 내가 나한테 머물러준다는 거였는데, 무엇보다 내가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나는 사실 이 곳에서 마주한 내 얼굴이 어떤지가 가장 보고 싶었어.

나 그리고 이번이 첫 혼자 해외여행이다?
이 나이 먹도록 안해본 게 아직도 이렇게 많다니! 설레!







3-4 군산



1월에 한 번 공개로 몸이 회복되면 군산에 있는 쓰담이라는 공간에서 워크숍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말을 블로그에 썼다. 근데 3월에는 정말로 가게 됐다.


내가 이걸 보고 있다는 건 이거 외에 다른 걸 보고 있지 않는 거라는 것도 인지하라는 김기봉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결국 인생은 내가 선택한 걸 보는 일이라는 뜻으로 이 이야기를 해주셨을까, 보지 않는 것을 보라는 뜻으로 이 이야기를 해주셨을까.

이제 와서 ‘둘 다’라는 걸 깨닫는다. 교수님의 의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건지 선택하면 됐다. 나는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좋아하지 않는 걸 선택하지 말기. 왜냐면 평생 봐야 햐는 거니까.


누구는 후회가 적은 선택을 하고, 누구는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하고, 누구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을 한단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한다. 대상을 좋아한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내가 그걸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저자세일 필요도 기대와 다르다고 나쁜 거라고 치부할 필요도 없는거다. 좋으면 좋은대로 아니면 아닌대로 풀어내면서 앞으로 함께하기를 선택하는 걸로 충분하다.





참고로 30살 4년 남은 거 아니다. 네이버 나이 계산기가 잘못 계산했다. 좋다 말았다.


출발점이 달라졌다

군산 오기 전에 터미널에 데려다 준 엄마에게 작년 원천징수 영수증을 보여주면서 내가 어떻게 일했고, 인생 전반에서 어떤 감정과 기분을 만났고, 어떤 관계가 있었으며, 어떤 순간에는 소중한 사람들과 어떤 소통을 원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했다
내 인생이 이제껏 뭘 알고 싶어도 현실에 쫓기고 내 마음에 쫓겨 뭐가 뭔지도 몰라서 현실도 알고 내 마음도 이 정도면 충분히 안다고 넘어가는 순간이 있었다고. 그렇게 넘기고 그렇게 넘어가서 빠르게 여러 도착점에 도착하는 기분은 참 좋았지만 이상하게 그게 오래 가지 않았던 게 두고 두고 마음에 남아 있다고. 근데 그런 마음으로 도착점마다 기뻐하던 나를, 내게 손을 흔들어줬던 사람을, 메달을 걸어줬던 사람을, 몇 등이던 잘했다고 최고라고 격려해주던 사람을 그만 바보로 만들고 싶다고. 나는 그 순간들도, 그 사람들도 다 좋아했거든.

그래서 나에게 그냥 알 시간을 주고 싶다고.
언제까지 몰랐던 거 같고 또 모를거야.

내가 뭐가 되고, 메달을 걸고, 몇 등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나랑 있어주려고 존재해보는 그 시간이 내겐 필요하다. 군산이 그런 터닝포인트는 당연히 아니다. 계속 봐오던 것들로 하나씩 가보고 있는 중이다. 엄마에게도 언젠가 이런 말들을 하게 될 줄 알았다. 이상하게 울컥 눈물이 나왔는데 엄마는 그저 안아주고 응원해준단다. 예전엔 이런 상황 뒤에 ’그러니 엄마를 봐서라도 잘해야지‘라는 말을 갖다붙였는데 이제는 그냥 나를 안아주는 엄마가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 그게 다다.

내가 아는데, 여기는 도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도착점에서의 그 성취감과 그 때 박수쳐주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래도 어떡해요.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왔다. 그게 다다.


노을이 좋아졌다

노을이 좋은 이유는 유일하게 해를 편안히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해가 가장 뜨거울 때 쳐다보지도 못할 해를 노려보는 시간을 지내왔더라.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걸 보고 싶은 때에 본 게 맞을까, 그 속에서 무얼 느껴온걸까. 그게 아픔을 주는지 몰라서 계속 보고 있었던가.

해가 지는 것은 슬퍼야 할 것 같았고, 그렇게 다가온 밤은 늘 우울하고 무서운 시간일 것 같았다. 근데 그거 내 생각이나 감정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다. 사실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해가 뜨거울 땐 피해 있어도 되고, 노을이 지면 감탄만 해도 되고, 밤에도 편안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내내 노려보고 있느라 아파서 눈물이 나온건데 슬프거나 아쉬워서 그렇다고 퉁친 적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밤엔 내내 더 힘든 적도 있지 않을까.

해가 지고 있어. 지금은 낮이고 지금부터는 밤이야. 그렇게 정의내리고 나아가려고만 했지 그 속에서 무얼 느껴왔는지 그거에 생각보다 큰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게 시기구분은 많았지만 시절은 많지 않았다.

마음을 직면하는 거, 그거 매순간 안 해도 되는 일이다.
볼 수 있을 때 보고 느낄 수 있을 때 느끼면 된다.
마음이 해라면 중천에 떠 있을 때 말고 노을과 같을 때 더 보고싶다.

이제 낮은 끝이야, 밤이 시작이야 이런 거 말고 지금은 노을 한 가운데야 어때?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
이걸 있는 그대로 놓치지 않고 보는거다.

내 생각과 감정을 너무 늦게 배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 아직 노을 한 가운데야. 그 뜨거운 시간들을 잘 지내와줘서 이 변화들을 더 편안히 보고 있어.










4. 안전한 나의 공간


본가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는 내 취향으로 가구를 모두 바꾸었다.

책장도 침대 머리도 다 샀다. 나에게는 퇴직금이 있으니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쓴다고 생각하고 샀다.

특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생각한 건 헤매기로 결심한 사람일 수록 돌아올 곳이 더 단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딜 가더라도 나는 나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커리어



앞서서 내가 나의 양육자가 되어주기로 했다면 마찬가지다. 자 몸이랑 마음 챙겼으면 내가 나의 HR 매니저가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일을 좋아하거든.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시켜줘야지 누가 시켜줘. 이런 마음이었다. 하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앞으로 오래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뭔지,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경험한 걸로 잘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이걸 하고 싶어했고, 이걸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구나'




1. 3년 간의 커리어 정리하기


2분기가 시작되어서 1분기 메일 중 놓친 것이 있나 다시 살펴보다가 하나의 메일을 발견했다.

1분기 시작할 때 닳도록 읽었는데 2분기 시작할 때 다시 읽으니 다르게 들어온다. 나는 1분기에 이 메일을 받고 나서 회복과 정리에만 집중했다.


나는 이제 조직문화, HRD 쪽으로 갈거다라고 확실하게 진로를 정했는데 막상 그리 생각하니 내 전공이나 내가 쌓은 경험이 과연 맞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는데 왠지 어딘가 같은 맥이 흐르는 것 같다. 일단 말도 안되게 도전해봤다. 운이 좋게 최종 면접까지 갔다. 그래서 여쭤봤다. 왜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나는 내가 가진 것이 분명 있다는 걸 아는데 시장에서도 그렇게 인식될 수 있는지 어떤 점에서 그럴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1분기에 한 번 다 읽어보고 든 생각은 '해석 나름' 이구나.

그리고 1분기가 점점 지나가면서 내가 알게 된 건 3년 간의 커리어를 잘 해석해야 내가 원하는 것을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이걸 잘 내려놓고 정리해야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구나. 그래서 2분기에 다르게 느꼈다는 건 '내가 가진 걸 잘 정리했다' 이다.


‘사람마다 그릇이 있다’ 고 한다.

근데 그릇이라는 게 타고나는 걸까? 아닌 것 같다.

그릇을 만드는 것도 나, 쓰는 것도 나라면 만드는 시기가 있고 그걸 만들어서 쓰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

그걸 위해 뜨거움을 견뎌야 할 때도 있고 이리 저리 쓰다보면 어쩔 수 없으니 깨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릇이라는 게 꼭 하나가 아니어도 된다. 편하게 먹을 때는 이거, 대접할 때는 이거,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쓸 수 있으면 멋쟁이가 된다. 그런 그릇을 다양하게 가지고 잘 쓰는 걸 배워간다. 물론 모으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이런 게 있다는 걸 잘 알고 언제 꺼내도 잘 쓸 수 있게 깨끗하게 관리하기까지 해야 한다.


그럼 지금의 나는 나라는 그릇이 뭘 담을 수 있는지 알고, 그걸 위한 그릇을 만드는 시기가 아닐까?

한 때는 그릇이 한 개라 이것저것 요령 없이 하나에 담아 넘치게 보여주기도 했다. 근데 그러면 다 볼 것 같지만 대부분은 그런 복잡함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내 의도대로 내가 가진 것들을 가장 좋은 상태로 세상에 보여주려면 아직 그릇이 부족하다.

내가 혼자 볼 요리여도 이제 개밥은 내가 용서를 못하게 됐다.

정돈해서 잘 보여주고 싶다.




2. 밀도를 채울 공부하기


1분기에는 HRD 조직개발, 조직심리, 변화관리 쪽에서 대학원 컨택도 하고, 대학원 교수님들과 이야기 나누며 학부 전공을 하지 않았으니 어떤 책을 읽어보거나 선행학습을 하면 좋을지도 여쭤봤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거나 관심 주제에 대해 쓴 것, 스스로의 회사생활에 대해 회고하거나 고찰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걸 학문의 언어로 정제하지 못했을 뿐 직감적으로 알고 있거나 이미 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이번 1분기에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도 하고, 눈여겨 보고 있던 사람과도 만나보고 좋아하는 공간에도 다녀봤다. 하나 느낀 게 있다. 그건 나중에 풀거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과 공부하고 싶은 것과 공부해야 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행동유형에서 나는 내가 주도형인 줄 알았는데 신중형이다.


나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가장 큰 장점을 묻는다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좋은 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는다는 것" 이라고 말하지만 3년 간 일하면서 나의 가장 큰 장점을 묻는다면 이제는 "정리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참..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정리를 잘하는 것 같다.


"별을 늘 빛나고 있었고 언제든 발견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라는 윤하의 말로 1분기의 회고를 마무리한다.

사실 깜깜한 것 같지만 어두운 곳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를 바라보며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남깁니다.

원래 1분기에 진짜 많이 했던 생각은 사랑과 사람, 연결, 시절 인연인데 그 생각을 못 남겨서 아쉽다.






이제는 나와 누가 함께 해줘서, 나를 누가 봐줘서 내가 존재하는 걸 안다. 그래서 내 글이 좋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올 주소가 되니까, 이렇게 연결되는 게 참 좋다.

2024년 1분기라는 시절에 함께 이야기 나눠준, 나를 진짜 존재하게 해주는 모든 존재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결론


2분기도 그러려니 잘 지냅시다.

오래된 빛일수록 멀리서 왔다는데 이 빛은 어디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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