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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od job 조은 May 05. 2024

어릴 때의 나는 왜 어린이날이 기대되지 않았을까?

어린이날이 정말 어린이를 위한 날이 맞는가



어린이날에 비가 오면 실망할 어린이가 많을까
편안한 어린이가 많을까


작년 어린이날에도 비가 오더니 올해 어린이날에도 비가 온다.


작년에는 어린이날인데 비가 오는 걸 보면서 오늘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실망 중일까 생각했다.

나야 뭐 빗소리 들으면서 누워있는 날이겠지만 어린이들에겐 무려 ‘어린이’ 날 아닌가?



작년 어린이날 발견한 강아지



그러다가 내가 어릴 때 나는 어린이날을 기대하지 않던 어린이 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모님이 워커홀릭이기도 했고, 나도 가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고 싶을 때 평소에 혼자 해도 되지 않나? 왜 굳이 어린이날이라고 놀이동산을 가야 하지 하는 되바라진 어린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어린이날은 용돈 많이 받아서 하고 싶은 거 하러 가는 날이었다. 그냥 부모님과 나의 니즈가 생각보다 잘 맞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크지 않아서일지 나는 어린이날의 그런 우리 집 문화가 괜찮았다.


근데 그럼에도 가끔 느끼곤 했던 어린이날의 진짜 헛헛함은 그렇게 많은 용돈을 받아 뭐를 해보려 해도 어딜 가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어린이들이 손 잡고 있는 것, 예약해 주고 돌봐줄 어른이 없다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유독 혼자 있는 어린이는 즐길거리를 하나도 못 즐기는 것, 평소엔 같이 놀던 친구들이 ‘나 부모님이랑 ~ 하러 갈 거야’라며 다 떠난 것이었다.

그래도 씩씩한 어린이는 모처럼 쉬는 날이니 용돈을 들고 그 모든 것을 뚫고 혼자서도 맛있는 것도 먹고 즐거운 것을 하러 다니는데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혼자  있으니 마음이 안 좋겠다“ 혹은 “본인 마음이 안 좋다”와 같은 말이 따라왔다. 그럼 나는 신경도 안 쓰던 부모님의 부재가 보이고, 마음속에 없던 안 좋은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부모님도 이런 아이들이나 말들을 마주한다면 괜스레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이중삼중으로 속상했다. 빈자리가 분명 없었는데 자꾸 말들이 나를 밀어내니까 괜스레 없었던 빈자리를 만들어내고 그 자리를 뭘로라도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 적도 분명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어린이날 가정에서만 축하해 주고 돌봐주면 되는 걸까?

부모님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더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 줬다면? 부모님이 없어 마음이 안 좋다는 말 대신 같이 놀자와 같은 말을 건넸다면?

어린이날은 사회의 모든 어른이 어린이에게 조금 다 친절한 하루였으면 좋겠다.

모든 어린이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책에서는 어린이날의 인사말 이야기를 하며 이런 제안을 한다.


어린이날에 “어린이 여러분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보다는  ‘어린이 여러분! 어린이날을 축하합니다”

“어린이 여러분, 불편한 일은 000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하루 어린이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뉴스든 가정통신물이든 인사말을 건네보자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좋은 뜻과 마음으로 하는 말도 다 양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비가 와서 실망할 어린이도 있지만 마음 편한 어린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마주치는 모든 어린이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어린이가 꼭 가족이 아니라 혼자서 어딜 가도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되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어른이 된 지금은 어린이날에 ’뭐 나야 그냥 행복한 어른으로만 지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다는 뜻이다.


내 생각인데 행복한 어른이 많아야 행복한 어린이가 많아지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어린이가 아무리 어려도 어린이날에 함께해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모가 슬퍼하기보다는 행복하길 바란다.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도 세상에 존재하는 가정의 모습과 어린이의 수만큼 다양한 것 같다.


돌아보면 내가 기대하지 않은 건

‘어린이날’ 그 자체가 아니고, 어린이날이 내게 주는 어린이로서 받을 수 있는 사랑과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아니고,

‘어린이날에 부모와 놀러 가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아직도 어린이날마다 어린이로 받는 엄마의 메시지와 용돈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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