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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윤정 Dec 05. 2021

서른 살 브랜드 디자이너의 회고록

되돌아보고, 나아가기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만드는 나의 일


Q. 언제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직업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한 적인 언제였지, 아주 어렸을 땐 사람이 마냥 좋고 까불이 었던 나는 개그맨이나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어. 그런데 고1 여름, 패디과 교생실습 선생님을 만나고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지. 패션쇼에 올릴 옷을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 그리고 마침내 런웨이에 작품을 올리는 그 순간의 그 희열에 대해 선생님이 신나게 이야기해주셨는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는지 그 희열이 나에게도 전달되더라고! 수업이 끝나고 펑펑 울면서 친구를 붙잡고 갑자기(?)  "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고 고백했어... 디자이너라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를 돌아보니, 찰나의 순간이었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그들이 좋아하는 나"가 되고 싶었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


Q. 그럼 올해 기억에 남은 프로젝트 하나를 꼽아보자면? 

나의 뇌피셜 약 1700명(?)의 사람들을 위한, 작업이 기억에 많이 남아. 연초에 작업했던 오피스 인테리어 작업이야. 처음 접해본 분야였기에 신났어. 물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어. 팀 매니저님께서 정말 많이 조언을 해주셨고, 다른 프로젝트보다도 더 많은 전문가, 타 팀분들과 협업했어. 주로 컬러, 부자재 재질, 사이니지 가이드, 포토존 등을 맡아서 작업했어.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나는 '그동안 안 해봤던 새로운 작업을 해봤다.'라는 지점에서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 그런데 진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땐 '잘했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더라고. 이 프로젝트가 그랬어! 사실 나 스스로 '잘했다.'라는 기분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워낙 처음부터 걱정을 많이 했던 터라 마지막엔 '그래도, 잘 끝냈다.'라는 기분이 들면서 좀 뿌듯했어.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좀 큰 깨달음이 있었어.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할 수 있는 것만 시도하는 게 아니라',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것'인 거야. 그동안은 내가 해볼 만 해 보이는 것 안에서 프로젝트 스콥을 짜고 그 안에서 빙빙 돌았던 것 같아. 그래서 많이 혼나기도 했지. 그런데 그게 아닌 거지! 정말 최선의 목표를 세우고, 목표가 100이고 시작이 1이라면 최대한 100에 수렴할 수 있도록 끝까지 만들어가는 것을 해야겠더라고. 아!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이 프로젝트 관련해서 회사에서 아티클이 발행되었어! 링크를 남겨둘게. :-)

쿠팡의 새 오피스, 로켓연구소 인테리어 디자인 비하인드


Q. 회사에서의 2021년 돌아보며 Lesson & Learn에 대해서 말해주겠니?

매일 업무일지까지는 아니고, 이따금 큰 러닝이 생기면 메모를 해두곤 해.

그것들 참고해서 메모체(?)로 적어보겠어.


맥락에 맞는 최선의 리서치, 최선의 방향성 찾기

국내/해외 구분할 것 없이 좋은 것들은 미리미리 봐 두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는 게 아니다.

그 안에서 프로젝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성'을 잡아내자.

시안은 눈에 보기에 다른 A, B, C 가 아니라. 문제 해결의 방향성의 A, B, C로 나아가야 좋다.

그렇게 진행했을 때 문제에 대해서 더 딥 다이브 할 수 있고, 의사결정이 쉬워진다.  


잊지 말자, 디자인 기본기

정말 좋은 사진에, 맥락에 딱 맞는 타이포만 잘 얹어주어도 엄청난 힘을 가진다.

그때 화면의 구도와 레이아웃, 색감, 텍스트의 비율과 굵기 등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가끔 너어무 딥 다이브 하게 되면 비주얼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본인 이야기)

잊지 말자. 디자이너다. 문제 해결도 기본이지만, 비주얼 Goal도 기본으로 달성하고 가야 한다.  


남이 볼 때 이상하지 않게 만드는 게 제일 어렵다

올해 매니저님한테 들은 명언 중 베스트. 멋있고 화려하게 만드는 게 더 쉽지. 남녀노소 대중을 향한 브랜드를 만들 때, 누구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디자인을 하는 게 제일 어렵다. 그동안은, 그 꼭대기를 찍기 어려울 때면 겁먹고 스스로 천정을 만들어 뒀던 것 같다. 애초에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천정을 미리 만들지 말자. 내가 봐도 이상하면, 남이 보면 진짜 이상하다. 프로젝트 우선순위에 맞춰서 알뜰살뜰하게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서, 이 정도면 되겠지. 싶은 생각을 종-종 했었다. 뚜들겨 맞아야 한다. 이번에 와장창 깨졌다. 우선순위에 맞춰서 할애하는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지, 퀄리티에는 우선순위가 없다. 어떤 브랜드에서도 바쁘다고 박스 밑면에 붙이는 스티커를 불량으로 만들어내진 않는다. 내가 봤을 때, 아 Excellence 하다 싶은 느낌이 오면, 남이 보면 Good 할 수 있다. 남이 볼 때 이상하지 않게 만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새로운 기준, 유연함

유연함은 필수다. 그동안 내가 스스로 뚝딱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 이유가 다! 있었다. 실제로 기름칠이 안된 뻣뻣한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기준을 세우고 그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기 위해서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사람에 맞게 때때로 나의 기준을 부수기도 하고 약간 누르기도 하면서 "현재 상황과 파트너에 맞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동안은 그러면 '안될 것 같아.'라는 마음이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어떤 나의 기준을 부수면서 말을 할 때면, 스스로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계속 들면서 주저하게 되고, 나의 판단력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잦았다.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면. 약간의 융통성 정도는 오케이다!  

올해 회사에서 배운 게 정말 셀 수 없이 많아. 내가 배운 것들의 출처는 거의 다 매니저님과, 동료들로 부터 온 것인데. 이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마음이 더 편하달까. 나를 더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야!  모르는 것이 뭔지 잘 알게 되었어. 이제야 제대로 시작한 느낌이야.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다 


Q. 건강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했다는 거야?

한 3년 전부터 다이어트를 위해서 운동/식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 물론 작심삼십일 정도로 유지했었지. 그런데 올해 초부터는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껴지더라고! 안 되겠다 싶어서,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기 시작했고 한 7개월은 매주 2번씩 1시간씩은 운동을 꾸준히 했어. 초반 3개월은 체형 변화나, 체력 상승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6개월쯤 하니까 힘이 붙더라!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 계속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난생처음 했어. 체력이 붙는걸 체감했고 또 그 무거운 덤벨 바벨을 이고 지다 보니… 왠만한 고통을 견디는 힘도 길러진 것 같아. 스트레스도 덜 받고 멘탈도 단단해지는 기분이야. 연말을 핑계삼아 지금은 헤이해졌는데 다시 좀 움직여 봐야겠어.



취미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다


Q. 취미를 가지는데 부담이 있었어? 이제는 싹-사라진 거야?

싹은 아니고 좀 사라졌어. 취미가 뭐예요? 참 어려운 질문이지 않니. 누가 이렇게 물어보면 한 두 번 찔러본 취미 말고,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 재밌는 일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좀 부담스럽더라. 그런데 실제로도, 취미를 가지는 것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하고 싶은 일'은 굉장히 잘 골라야 할 것 같았고, 뭔가 특별한 취미를 가져야 할 것 같았지. 이제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지. 어디서 읽었는데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이 강했던 것 같아.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일'말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 같아. 이제 와 보니, 일정이 급하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올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 회사일도, 내 생활도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 곧, 중요한 일인 거지. 예를 들어, 혼자 나는 와인 마시면서 혼자 글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즐거운데, 이 일은 누가 푸시하는 일정이 아니야. 내가 정하면 되니까 일정이 급하지 않아. 그러다 보니 뒷전이 되더라도. 상대적으로 내일까지 하려고 했던 회사 자투리일, 빨래, 청소와 같은 집안일은 눈에 뻔히 보이고, 시급해 보이니까 하게 되고. 한동안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덜 중요하지만 급한 일에 치여서 취미생활은 매일 뒷전이었어. 그런데 올해 내 삶에 대해서 되돌아볼 기회가 운 좋게도 많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좀 더 어떻게든 하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걱정이 사라진 것도 이 변화에 한 몫했어, 얕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우선순위 높은 것들만 생각하게 되더라고. 항상 어딘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예전과 똑같이 바빠도 시간이 더 많아진 느낌이야. 이제 약간에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부터 시작해! 자투리 일은 언젠가 하게 되더라!   

우리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보려 하지 말고, 눈앞에 분명히 놓여있는 것을 행해야 한다.
-토머스 칼라일 -
데일카네기 자기관리론 p24  


행복은

"Self" 다


언제나 365일 마음이 바다같이 고요하면 좋겠지. 하지만 사람인지라 가끔씩 불안한 마음이 불쑥 들 때가 있어. 난 걱정이 많은 편인데, 요즘은 그 시간이 엄청 짧아졌어. 스스로 더 여유로운 멘탈을 가지게 된 게 느껴져. 어떤 고민이 생겼을 때, 예전 같으면 일주일 내내 불안했다면 요즘엔 하루 정도면 요동치던 머리가 고요해진달까. 어떻게 그게 가능해졌냐면.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고민하지 않아. 고민을 미루는 거야. 고민/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공감할 것 같은데,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 Case 1,2,3... 끝까지 열거해서 고민을 하거든. 이 행위를 멈췄어. 무한대로 증식하는 걱정을 멈추도록 도움을 준 게, 바로 '글쓰기'야. 머릿속이 복잡할 땐 화산 폭발처럼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생각이 팡팡 터지거든. 그래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워져.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리 머릿속이 복잡해도 한 글자씩 써야 진행이 되지. 그러면서 지금 정확히 어떤 게 걱정이 되는지 써보는 거야. 그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물어봐, 정말 그게 왜 걱정인지. 약간 마인드맵을 그리는 것과 비슷해.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불안함의 원인을 직면하게 되는 거지. 요런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깨닫게 된 건 "진짜 불안함의 원인"은 별거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 뭔지 정리가 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되고, 알게 되니깐 나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더 잘 케어할 수 있게 되었어. 예를 들면 나는 괜히 우울해질 땐, 그 순간을 잊어버리고자 밖으로 나가는 건 나에게 별로 도움이 안돼. 혼자 앉아서 시간 글 쓰거나 메모를 하는 게 효과적이야. 이렇게 내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멘탈 케어가 돼서 나 자신이  좀 더 단단해지더라. 그래서 요즘은 행복한 마음이 마음속 밑에 포근하게 깔린 기분이야. 같은 맥락으로, 올 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던 덕분에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몇 가지를 아래 적어보려고 해.



Retrospect, 되돌아보고 나아가기



올해 일상에서 깨우친

자잘 자잘이


#1. 내가 힐링되는 순간포착   
 
1. 혼자 조용히 일기를 쓰거나, 글을 쓰는 시간

글을 끄적끄적 쓰고 나면, 명상한 것처럼 마음이 편해진다.

2. 혼자 운전하면서 노래 크게 틀어놓기

질주 본능이 약간 있는  같은데, 속도를 진짜 내진 않고 가만히 달려도 혼자 운전을 하면 차의 속도가 온전히 느껴진다.


3. 시원하게 씻고 나서, 술 마시기

샤워/양치를 하고 술을 한잔  마시면 술맛과 기분이 더욱 좋다.


4. 주말에 일찍! 나가서 해지기 전에 귀가하기

주말을 꺾어 보내는 기분 아시려나. 주말이 길어져서 좋다. 오히려 요즘엔 주말에 더 조금만 잔다.



#2. 내년엔 이러지 말아야지


1.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면, 무조건 내가 먹어본 곳으로 가기.

 높은 가격에 허영심이 현혹되고, 그럴싸한 인스타그램 사진에 속는().
대접하고도 미안한 순간이 생긴다.    


2. 술을 좋아한다. 그런데 컨트롤해야  마시는 것이다.
분위기가 좋아서 습관처럼 잔을 채우다가 민폐 끼친다. 기분 좋게,  마시자.

3. 동네 산책을 하게 되면 에코백 하나쯤은 들고 가기.
동네에 방앗간들이 많아서   일이 자주 생기는데, 담아  봉투가 없으면 매번 아쉽다. 그리고 매번 까먹는다. 내년엔 까먹지 말아야지


결론적으로 21년 시원하다! 얇은 허물 한 꺼풀 벗겨진 기분이다.
모두, 오늘도 개운한 하루보냈기를 바라며...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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