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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Dec 02. 2019

우울을 옅게 하는 법 - 3

감정과 성격의 상관관계

 나는 누군가 나에게 예민하다는 말을 하는 게 싫지만, 스스로가 예민한 성격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예민한 성격은 일종의 '기준'같은 게 되어서, 기준에 따라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투에 반응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예민함'이라는 성격이, 안 좋은 감정을 짙어지게 하는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모든 책임과 잘못은 결국 나로부터 생겨난다고 믿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성격은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감정의 원인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깜짝 놀라 뒤로 흠칫 물러나는 반 발자국 사이의 거리 정도에. 주변에 보이는 원근감을 가진 모든 풍경들이 실제로는 한 점에 맺혀 보이는 것처럼, 나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 감정들도 실은 다른 감정들과 섞여 바로 그 반경 내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어떤 것이 뚜렷이 보이고, 어떤 것이 흐리게 보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똑같은 시점에 똑같은 장소에 서 있을 때, 모든 사람이 거의 동일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감정들은 늘 주변의 풍경처럼 각기 다른 색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성격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단지 어떤 대상을, 어떤 감정을 조금 더 뚜렷이 보느냐의 문제다.


 이까지 말을 하고 나면, 간혹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다른 색을 뚜렷이 보면 된다는 말인데, 그게 곧 행복한 생각을 떠올려라는 말과 똑같은 거 아니야? 아니다. 성격과 가치관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쉽사리 긍정적인 감정으로의 환기를 일으킬 수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밝은 곳을 쳐다보세요'가 아니라 눈에 힘을 풀고, 몸에 긴장을 풀고 초점을 흐릿하게 만들어 내 감정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앞에서 누군가 얘기할 때 다른 생각을 할 때처럼,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릴 때처럼, 몸에 들어간 힘을 쭉 빼낸다고 생각하고 한걸음 뒤로 떨어져 흐릿하게 바라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감정이 섞이지 않는 시간은 없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질까? 그렇진 않다. 흐릿하게 보아도 색은 그대로 보인다. 단지 다른 것들과의 경계선이 흐릿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흐릿해진 경계를 통해 다른 감정의 색들이 끄트머리에 물들듯 스며들어 오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특정한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해 오고 피로감이 몰려오듯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도 지나치게 집중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 감정이 섞이지 않는 시간은 없다. 그중 부정적인 감정, 특히나 우울에 집중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우울한 감정에 집중하다 보면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무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은 나를 갉아먹는 두통과도 같은 질문들이다. 내가 왜 이럴까, 이건 다 OO 때문이야. 어쩌면 내가 뭔가를 잘못해 온건 아닐까? 내게 왜 이렇게 하는 거지? 내 성격이 문제일까? 내 생각이 잘못된 걸까? 내가 헛된 꿈을 꾸는 걸까? 왜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상처를 주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들이 결국엔 스스로를 무너뜨리게 되고, 무너지다 못해 무너진 자리가 곪아 터져 버린 사람들이 결국은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매우 슬픈 일이다). 그래서 집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억지로 성격을 바꾸려 하거나, 가치관을 바꾸려 하거나, 타인의 생각에 맞춰 내 생각을 바꾸려 하는 것은 아주 초단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나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지금은 오히려 아주 어릴 적의 내 성격과 꽤 많이 비슷해져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은, 욕심이 나고 질투가 나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경계하고 열등감을 느끼던 내가,  남들보다 잘나지 못해 나 자신이 초라해지고 우울해지던 내가, 그러한 순간마다 느끼는 감정들을 조금 더 옅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그것이 나와 내 부정적인 감정들 사이의 불필요한 소모전을 일찍 종결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억지로 내 성격을 바꾸지 않고, 그저 그러한 감정들을 옅게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덜 불행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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