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했던 사람의 결말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오듯, 시작한 모든 것들이 끝나는 순간이다. 나는 지금 그 순간에 서 있다. 찰나의 순간처럼 나를 날카롭게 지나쳐간 그 동안의 기억들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나도 예전에는 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섞여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었는데, 그랬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스스로 혼자가 되어 외로워 하는 걸까? 답을 구할 수 없는 많은 질문들이 결국은 돌고 돌아 내 안의 검은 심연으로 빠져버리고, 게걸스럽게 고독을 먹어 치운 지독한 자괴감이 괴물처럼 커져만 간다. 분명 계절이 변하며 낮은 길어져만 가는데, 나의 해는 왜 그렇게 빨리도 져버리는지. 밤은 길어지고, 새벽은 깊어진다.
미안해.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걸 다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헤어짐의 말이란 꼭 솜사탕과 같아서, 눈물 한 방울에 사르르 녹아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그리곤 기분 나쁜 찐득거림만 녹은 자리에 가득 남으니까. 고개를 들고 억지로 눈물을 참던 너의 얼굴을 기억해. 그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환하게 마치 바보처럼 웃던 너의 얼굴이 떠올라 그 때의 너처럼 밀려오는 눈물을 고개를 들어 억지로 다시 내려 보내곤 한다. 몇 개의, 몇 십 개의 밤이 지나도 나는 아마 쉬이 너를 놓지 못할 것이다. 너의 기억에 꽤 오랜 시간을 마음 아파하겠지.
내가 해 주지 못하는 것, 해 주지 못할 것들. 그것들을 핑계로 너에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는 홀로 이별을 준비했다. 여태까지 그렇게 못되게 한 걸로도 모자라서, 마지막까지 너에게 상처를 떠넘기고 말았어. 앞으로 당신 같은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 할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함께 하는 순간 순간, 어느새 익숙해진 네게 나는 비수 같은 말과 행동들로 수많은 상처를 입혔었다. 정말 누군가의 노래가사처럼 어느 때에는 네가 나보다 더 나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 바뀌려고, 네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바뀌어보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는데. 언제나 잠깐의 다짐으로만 그치고 말았고 너에게 미안함이 생길 때마다 되려 짜증을 내고 화를 냈었다.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런 나를 받아주던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한번, 가슴 끝이 꾹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를 잊기 위해 억지로 누군가를 만나 웃어보려고 하기도 하고, 가벼운 연애를 해 보려 하기도 했다. 내가 끝낸 사랑에 대한 미안함을, 아직 남아있는 불완전한 마음을 외면하려 했는데, 작은 조각으로 시작된, 그리움과 너와 함께 있던 때로 다신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어느새 저 우주보다 더 큰 무게로 나를 짓눌러온다. 그럴 때면 나는 한없이 너의 기억 속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 결국 그 자리에 주저 앉아 고개를 떨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