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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Dec 02. 2019

혼자 앉은 방, 바닥

어스름한 어둠의 그늘에는 비 오기 전의 눅눅한 바람과 같은 내가 있다

1. 새벽은 시시때때로 내게 썰물처럼 밀려와 한가득 담긴다. 감정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다시 감정이 됨을 반복하다 결국 새벽이 몰려가고 아침이 된다. 그 사이에 스쳐가는 많은 잔물결들이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쌓이고 쌓여 응어리가 되고, 결국 내보이기 싫은 그 응어리는 안으로 더 깊이 곪고 곪아 마음 한 구석 시커멓게 그림자만 남은 내가 된다. 언젠가 이 그림자에 먹히지 않을까, 언젠가는 내가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가 내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 그리고 내 안의 그림자는 그 두려움 마저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한 뼘 더 자란다.


2.  어중된 밤 하늘은 검고도 희며, 푸르고도 붉다. 지긋이 오래 보아야 보이는 밤의 하얗고 빛나는 가시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 뜨거워진 공기가 식으며 땅으로 내려올 때 같이 내려와 드문 드문 마음에 박힌다. 아침해가 뜨면 녹아 사라지는 주제에 이 가시는 유난히도 쓸쓸하고 외롭다. 고독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외로움과 애틋함이 피처럼 붉게 흐르는 가시는 기생충보다 더 독하게 감정을 빨아먹는다. 감정이 빨린 그 빈 공간에는 가시안에 흐르는 붉은 피가 채워지고, 나는 당장 눈물을 쏟아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3.  무기력. 무기력의 끝엔 우울함이 있다. 우울함의 깊은 속안에는 어둠이 있고, 어둠은 다시 무기력으로 돌아온다. 끝없는 반복. 한바퀴,한바퀴 계속될수록 나는 저 바다의 시커먼 아래에서 바닥을 기는 심해어처럼 변해간다. 눈도, 귀도 필요없고 오로지 그냥 어둠만이 나의 오감인듯 나는 변한다. 저항할 생각도 없이, 마치 태어날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처럼 화석이되어간다. 시간이 움직이며 나는 움직이지 않는데도 나는 그새 지쳐있다.


4.  창 밖을 보았다. 이번 여름은 유난스럽게도 장마가 길다. 벌써 삼일째 내리는 비는 도통 그칠 생각을 않는다. 이러다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장마가 끝나 비가 그치고 난 후에는 지구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지운다. 불 꺼진 집안은 바깥의 흐린 햇빛이 가득 차 있다. 비와 함께 내리는 회색 빛 하늘이 나의 눈 앞에서 습기를 눅눅하게 머금은 채 무겁게 내려앉았다. 회색의 무게는 나를 소파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 했다. 햇빛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깊은 바다속에서 부유하고 있는 바다 먼지처럼 나는 이 공간에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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