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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Dec 11. 2019

그토록 기다리던 것

Photo by. 김수현



1. 마지막에 다다르는 어느 끝 지점에선가, 아주 찰나의 시간에서 정지했다. 그 시간은 이를테면 엑스레이로도 나오지 않는, 언젠가 났던 작고 사소한 교통사고에서 생긴 내 갈비뼈의 실금과도 같았다. 아주 작은 그 틈사이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비집고 들어와 느리게 한바탕 나를 휘젓고 다시 빠져나갔다. 그리고 길고 긴 탈출. 마지막 한 줌의 못 다 버린 미련까지 후-, 하는 소리를 내며 꺼져가는 나에게서 도망쳐버렸다. 나의 종말이었다.



2. 실패다. 하지만 완전한 실패는 아닌 것 같다. 기다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온 몸에 잔뜩 달린 귀찮은 것들이 나를 억지로 붙잡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다.


3. 해가 떠오르는 듯 붉은 구름이 저 끝서부터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가득, 그 붉은 구름을 들이마셨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면 거짓이지만, 몰려오는 하루와 그 하루의 시간들이 훨씬 더, 나는 두려워 아직 어스름하게 남은 새벽의 그늘 속으로 나를 던져 넣었다. 성공인가? 까무룩 잠이 든다.


4. 보통은 이 때쯤 바람이 불어주며 본의 아니게라도 헛디디게끔 해 주는데, 이 놈의 팔자는 얼마나 전지전능한지 바람 한 점 없다. 새벽녘의 공기는 차고 눅눅했고, 내가 엉덩이를 붙여 앉은 이 자리도 습기를 머금어 축축했다. 해가 뜨는 순간을 내 몸안에 담고 가려 기다리는 동안, 축축한 콘크리트 사이에 솟아나온 초록색의 잡초를 보았다. 가녀린 이파리 밑 얼마나 많은 잔뿌리가 있을까, 슬쩍 뽑아보려다 만다.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나를 고작 그 작은 풀이 비웃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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