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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Nov 29. 2019

일상이 지루할 때, 나는 '남'이 된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따분할 때,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을 때.

 나이, 성별, 국가, 종교 등등. 수많은 차이점들을 갖고 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일상'에서 느끼는 '일과'의 '지루함'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할 일을 태산같이 쌓아놓은 어느 평범한 하루의 평범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찰나에. 늘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 비슷한 스타일의 옷과, 비슷한 아침식사(아침식사를 간단하게 하거나, 아니면 하지 않거나)를 끝내고 어제 들고 나갔던 가방을 놔 둔 그래도 다시 든 채, 핸드폰만 챙기고 출근하러 나섰던 그런 평범한 하루에 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여행관련 글들과 영상, SNS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여행사진들. 괜히 하루하루를 비슷하게 챗바퀴 돌듯 살아가는 내가 안쓰러워지고 초라해지는 느낌. 당장이라도 어디사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과감하게 회사나 학교를 그만두고 배낭 하나 둘러맨 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이해가 발목을 붙잡는다.


 다들 어쩌면 그렇게 여행을 잘 다니는지, 내 삶은 왜 이렇게 팍팍하고 어렵기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군가는 이렇게 하라고 이야기한다. 내 삶의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수많은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고, 누군가에겐 이런 내 삶도 행복한 삶일 수 있으니 감사하라고.


 나는 욕심이 많고 속이 시커먼 욕망 덩어리, 비겁하고 치사한 인간이라 내 삶의 소소한 행복을 스스로 찾아 작은 기쁨에 만족하고 살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다. 가끔 월급날이나 보너스를 받는 날이나 되어서야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나가는 가로수 그늘에서도 기쁨을 찾는다지만, 그것도 내가 꼭 가고 싶었던 여행지에서 한가롭게 찍은 남들의 사진을 보면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월급만큼이나 빠르게 너그러움도 기쁨도 사라지고 마는것이다. 그럴때면 이렇게 일해서 뭐하나, 이 생활은 언제쯤 변하려나, 앞으로 내가 몇십 년을 더 이렇게 지내야하나, 라는 어마무시하게 커다란 무기력과 허탈함에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쿵! 하고 부딪히는 느낌이 든다.


 그런 기분을 꽤 자주 느끼던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지루함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사소한 일요일의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 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늦잠을 잔 하루. 얕은 잠으로 어떻게든 더 게을러져 보러 뒹굴다 배고픔에 일어나 부엌에서 아침을 차려 먹은 하루. 식사 후 냉동실에 한 여름에 사다 넣어두었던 아이스크림을 하나 베어불며 지난 주 주말에 겨우 몇 장 읽다 만 책을 읽던 그 순간 이었다.


 특별한 문장이 있었느냐, 그건 아니었다. 다만 책을 읽다 문득 나는 오늘 지나온 나의 하루가 꼭 지금 이 책의 글처럼 느껴졌던 것이었다. 특별한 단어가 씌어져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리 재밌다고 느낄 만한 책도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뜬금없는 소나기처럼 내 일상이 어느 소설 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깔리고, 나의 지루한 일상을 읽는 다는 느낌으로 머릿속에 떠올렸다. 서른살의 여자. 이름은 OOO.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끝은 현재였고, 바로 그 끝이 나자마자 나는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 후로 나는 종종 일상의 한 귀퉁이에서 슬그머니 지루한 무기력이 고개를 내밀때면, 내 인생에서 슬쩍 비켜나 본다. 소설을 읽듯 내 일상을 읽는다. 어느 날은 로맨스가 되었다가, 또 어느 날은 코미디가 되었다가, 또 어느날은 꼭 '미생'처럼 회사생활을 쓴 소설 같다가. 한번 쯤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을거라 생각한다. 생각보다 사람의 인생은, 독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더 재밌으니까. '나'라는 책의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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