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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Nov 29. 2019

우울을 옅게 하는 법 - 1

감정의 본질

 나의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근 10년간 나를 괴롭히던 가장 큰 덩어리는 바로 '우울'이었다. 언젠가부터 사회의 큰 그림자와도 같은 '감정'. 그리고 그 감정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5년이 넘게 허우적대던 내가 도저히 혼자선 헤어 나올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내 체중을 이기지 못한 옷걸이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바로 그 새벽의 다음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 보기로 결심했다.


 병원을 갈까,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 앞으로 내게 꼬리표처럼 달라붙을 것만 같은 이 결정과 기록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결심을 하고 나서도 내가 직접 보건소를 찾아가기까지는 약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무섭고 두려운 곳이었다. 내 머릿속에서야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 조금 아픈 것 같아. 아냐, 예민한 게 잠깐 심해졌던 걸 거야. 어릴 적부터 예민 하단 말을 많이 들어왔잖아.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릴 듣지 않는데. 내가 뭔가 잘못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꽤 행복하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정말로 있었던가? 갔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땐 어떡하지? 그러면 누구다 다 겪는 힘듦도 못 버틸 정도로 나는 약하고 끈기 없는 사람인 걸까?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방향을 잃고 머릿속에 맴돌았다.


 무턱대고 보건소 입구에 섰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3개월 동안 머릿속에 떠다니던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일순간에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2층에 있는 정신건강센터의 문을 여는 순간, 도망치고 싶어 졌다. 여기까지 와 있는 나 자신이 무척이나 싫고 비참해졌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는 나의 상태에 대해 인정할 자신이 없었다. 여기서 내게 해줄 말들은 내뱉어지는 그대로 기정사실화 되는 것이었고, 그것이 좋든 나쁘든 나의 지난 우울한 나날들에 대한 판결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려움을 티 나지 않도록 꾹꾹 눌러 담고, 테이블에 앉았다. 원형 테이블에 비스듬하게 마주 앉아 차를 건네는 손길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한 장이었나, 두 장이었나. 몇 장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설문지를 슥슥 아무 생각 없이 체크하고 나서 건네주는 동안에도 마음이 불안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체크를 했는지, 내가 안 좋다는 걸 알아달라는 냥 과장해서 대답을 했는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으로 체크를 했는지. 뒤죽박죽이었다. 내 설문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까?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미쳤다고 생각할까? '관심종자'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손목 안쪽이 부르르, 떨려오는 것만 같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내가 체크한 것에 대해 점수를 매겼었나, 개수를 세었었나. 심각한 표정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우울증이 심하니 병원 가서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한다, 라는 등의 말이 귓등을 퍽, 하고 때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짧은 생각 하나가 단말마의 비명처럼 귀를 찌잉 하고 울렸다.


 "이상한 게 아니에요. 아픈 거예요, 감기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하시고 치료받으시면 돼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가 가득한 말이었다. 그냥 단지 아픈 거다. 알레르기 같은 거다. 그러니 나아질 수 있어. 그런 말들을 듣다 보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감정이 아프고, 나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걸 다 터놓고 이야기하고 나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다. 그저 나는 그 말에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고, 병원은 가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릇에 잔뜩 담겨있던 물이 찰랑여 그릇 밖으로 조금씩 흘러내리는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엉엉 울 수는 없었다.


 "꼭 이야기하셔야 돼요. 가족도 괜찮고, 친구도 괜찮아요. 한 명이라도 상관없어요."


 한참을 설득당한 끝에, 가족에게 이야기하겠다 끄덕이곤 보건소를 나왔다. 마음이 개운한 듯 허무했다. 쏟아낸 눈물의 양만큼이나 가슴이 휑 하고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이때가 늦가을쯤이었나, 가을바람이 살 사이를 비집고 몸속으로 휑하니 불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만 빼고 다 잘 돌아가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일상과 세상이 부러웠고, 외로웠다. 어딘가 중요한 나사를 하나 빠뜨리고, 덜걱거리며 겨우겨우 돌아가는 고물 세발자전거 같은 내가 초라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들과의 저녁식사를 예약하고, 시간이 남아 시끌벅적한 백화점 카페에 앉아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며 언젠가 들었던 좋은 말들을 떠올렸다. 어떻게 말을 할지, 정리를 해야만 했다. 나의 기분, 나의 감정. 나. 여태껏 나를 졸졸 쫓아다녔던 우울은 나였고, 행복할 때도 나였는데. 나는 하나였지만 그때의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정말 예민해서 일까,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덜컥 다시 두려워졌다.


 대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게 뭐길래, 대체 뭐길래 나를 이렇게 무섭고 두렵게만 하는 걸까. 정말 감기에 걸려 콧물이 나고 기침이 나는 것과 같은 질병일 뿐인 건지.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시감과 우울감, 미묘한 허탈감과 해방감, 두려움들은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쯤에서 끝나는 걸까. 궁금했다. 감기는 면역력이 약해져서 걸리고, 무리해서 몸살이 걸리고, 음식을 급하게 먹거나 해서 체하는 건 아는데. 이게 질병이라고 해도 대체 감정은 어디서 그 '병균'과도 같은 우울감이 들어와 아프게 만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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