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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으로 Feb 13. 2023

와인에 대한 단상1

변신의 귀재

Sanguis Jovis. 제우스의 피.

무엄(?)하게도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의 이름을 갖고 있는 포도 품종. 바로 이탈리아의 산지오베제(Sangiovese)이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변신의 귀재였던 제우스의 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산지오베제는 때로는 묵직하고, 때로는 가볍게, 참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으로 만들어지는데 이같은 와인의 변화무쌍함은 비단 이 품종에 그치치 않는다.


와인을 조금이라도 마셔본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까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등의 국제적인 품종들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으며 누가, 어느 정도의 품질을 목표로 어떠한 방법으로 만들었는지에 따라 그 스타일과 풍미, 느낌은 와인의 수만큼 다채롭다.


그런데 이런 특성 때문에 와인은 불편하고 불친절한 술이다. 꽤 많은 지인들이 와인은 어렵다고 말한다. 직관적인 맛이 아니다보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와인맛은 도통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와인은 맥주처럼 시원하게 한 입 들이키고 바로 '맛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술은 아니다.   


나에게도 와인의 다채로움이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졌다. 알쏭달쏭하고 알듯 말듯하면서 맛있는지 어떤지 판단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마시면 마실수록 그 어려움은 점점 흥미로운 매력 포인트로 바뀌어 갔다.

 

A소주는 소비자가 기대하는 한결같은 A소주 맛이고, B맥주는 예상되는 B맥주 맛인데 레드 와인은 똑같은 레드 와인 맛이 아니다. 와인은 같은 품종이어도, 심지어 같은 와이너리에서 만든 것이어도 매번 새롭다. 쉽게 말해서 지루하지 않다.


뻔하다 못해 거의 똑같은 일상을 고수하고, 돌발상황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와인은 가끔 하는 작은 '일탈'이다. 대략 어떤 맛일지 예측되나 그 기대를 보기 좋게 벗어나면 "어라?"하는 생각과 함께 슬슬 즐거워진다. 와인과 밀당하는 느낌이랄까? 설령 여러 번 마셔서 아는 맛인 와인일지라도 그날의 메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조화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니 나에게 와인은 언제나 흥미로운 수수께끼이다.


그래서 와인을 마실 때마다 여전히 설레인다. 어떤 맛일까. 오픈하는 순간부터 그 맛이 마구마구 궁금해진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오직 열린 마음 뿐. 이 루비빛의 액체는 이번에는 어떤 맛과 향, 독창성을 보여줄까. 그런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와인잔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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