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집안마다 나름의 방식대로 뜻깊은 시간을 보내겠지만 올해에는 이왕이면 가족들과 그날의 의미를 더해 줄 와인과 함께한다면 더욱 기억에 남는 날이 되지 않을까.
어린이날, 부부의 날 등 특별한 기념일들이 몰려있는 5월이지만 이 중 가장 1순위는 '어버이날'일 것이다. 독립한 성인인 경우 자식이나 배우자, 친구 혹은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기회는 많지만 따로 떨어져 지내는 부모님과 좋은 자리를 마련하여 식사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횟수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이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카네이션'이 떠오를 만큼 둘은 영혼의 단짝인데 여기에 슬쩍 와인을 더해보려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한 와인을 각각 하나씩 소개하려 하는데, 양손에 각각 카네이션과 와인을 들고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면 부모님께서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버이날이 아니라 특별한 날로 느끼시며 '오, 이 아이에게 이런 센스가!'하고 속으로 감탄하실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센스 만점인 자식이 되어보자.
그런 의미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와인은 미국을 대표하는 월드 클래스 소믈리에인 조셉 칼이 설립한 '조쉬 셀러'에서 생산한 '조쉬(Josh)'이다.
'조쉬'는 아버지의 애칭으로, 와인의 이름에서부터 아버지를 향한 조셉 칼의 애정과 존경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아버지 조쉬는 군인이자 자원 봉사 소방관으로 활약했는데 이런 아버지를 기리고자 조셉 칼은 거액을 소방 재단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오랫동안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21년 기준 기부액이 40만 달러가 넘었다고 한다).
조쉬 셀러는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는데 대부분의 와인들이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짱짱한 가성비 덕분에 3년 연속 미국 판매 1위를 기록할만큼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국 와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다양한 조쉬의 와인들 중 어버이날 어울리는 와인으로는 조쉬의 고급 라인에 속하는 '노스코스트 리저브 까베르네 소비뇽'을 소개하려 한다.
금빛 이름이 더욱 돋보이는 블랙 레이블.
와인의 이름에 들어있는 '노스코스트'는 지역명으로,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와인 명산지인 소노마 카운티, 나파 카운티, 레이크 카운티 등을 모두 품고 있어 그 이름만으로도 와인 매니아들의 가슴은 콩닥콩닥 뛴다. 이 곳의 와인들은 다양한 고도와 토양, 차가운 바닷바람 등 고품질의 포도를 생산하기에 적합한 지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우아하고, 향이 풍부하며, 질감이 부드럽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조쉬의 노스코스트 리저브 와인도 이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와인에 '리저브(reseve)'라는 말이 붙으면 오크통에서 숙성한 고급 와인이라는 의미이다. 이 와인 역시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블랙 커런트, 블랙 체리 같은 풍부한 과일향 외에도 견과류, 헤이즐넛, 바닐라 등 더욱 다채로운 향을 느낄 수 있다. 알코올 도수는 13-14%로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다른 와인들에 비해 낮은 편(보통 14-14.5%가 가장 흔하다)이므로 연로하신 부모님께서도 한 잔 정도는 부담없이 식사와 함께 즐기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와인은 리저브 답게 부드러운 질감을 자랑하는데 강하게 훅 들어오는 와인 특유의 떫은 맛 대신 은은한 잔당감을 남기며 부담없이 마실 수 있어 어버이날을 빛내 줄 와인으로 더욱 어울린다.
다음으로 소개할 와인도 미국 와인이다.
나파 밸리의 프리미엄 와이너리인 'FEL'에서 생산된 것으로 'FEL'은 설립자 클리프 리드가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을 담기 위해 어머니인 플로렌스 엘시 리드(Florence Elsie Lede)의 이름 첫자를 합쳐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펠을 대표하는 와인은 피노 누아 100%로 만들어진 '펠, 앤더슨 밸리 피노 누아'이다.
아름다운 루비빛을 보이는 이 와인을 잔에 따르면 라즈베리, 체리 같은 레드 베리향과 꽃향기, 민트, 향신료 등 다양한 향이 풍부하게 피어오른다. 숙성력이 더해져 더욱 부드러운 목넘김을 즐길 수 있는데, 다만 여타의 피노 누아 와인보다는 높은 알코올 도수와 묵직한 느낌으로 까베르네 소비뇽에 가깝다는 평이 많으므로 부모님의 컨디션에 맞추어 천천히 소량만 드실것을 권하면 더욱 좋을 듯 싶다.
레이블의 빨간 튤립은 이 와인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데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와이너리를 설립한 클리프 리드의 고향인 캐나다에서는 튤립이 겨울의 끝자락에 피기에 곧 다가올 봄을 부르는 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와인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 따뜻하고 좋은 날만 이어질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튤립을 레이블에 넣었다고 한다(참고로 이 와인 뿐 아니라 펠의 다른 와인들에도 다양한 크기의 튤립이 그려져 있다.)
또한 펠은 자신들의 소중한 포도를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땅과 물의 소중함을 지키고 그 가치를 키워가는 브랜드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적인 재배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도록 보살펴 주신 분들로 우리의 땅과 물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듬뿍 마시며 자라났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금까지도 소방 재단에 기부를 이어가는 조셉 칼과, 어머니의 이름을 담은 와인을 마시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클리프 리드의 마음. 어버이를 생각하는 모든 자식들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부모님께 드리는 그 사랑과 존경을 고운 루비빛에 담아 5월의 이 날을 더욱 찬란하게 빛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