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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Sep 17. 2023

보통의 언어로 명확하게 말하기

새로운 광고주를 상대해야 할 때마다 나에겐 무엇보다 광고주 성향 파악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빠르게 알아내야 트러블을 최소화하고 신뢰 관계를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이직 후 처음 담당하게 된 광고주는 꽤나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잘된 일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면 일을 여러 번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신은 담당자의 성향일 수도 있고 브랜드의 정체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상에서 요청이나 피드백은 애매모호하다고 한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예측된 답이 나왔다. '결과물의 일관성은 있으나 상황마다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역시나 몇 번 이메일이나 전화로 대화를 해보니 원하는 것은 분명한데 설명을 잘하는 사람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수정할지 콕 집어서 이야기하면 쉽게 끝나는 일을 굳이 애매한 단어 선택으로 되묻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제가 요즘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해서요." 이런 식이다.


미니멀 라이프? 당신이 미니멀 라이프를 살든 말든 나와는 관계없다. 미니멀 라이프와 해당 작업물이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한발 양보해서 생각해 보자. 미니멀 라이프 = 미니멀리즘을 선호하는구나. 미니멀리즘은 가치관이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되는 것으로 안다. 지금은 꼭 그렇게 만들고만 말아야겠다는 마음의 맥시멈리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백의 미를 두면 미니멀리즘인가? 무엇을 덜어내야 하지? 인지 부조화가 발동한다. 다시 생각해 본다. 미니멀리즘 = 꾸밈을 빼고 심플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군! 그런데 심플함도 무엇이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혹은 선호하는 정도의 규정에 따라 범위가 천차만별이다. 후~ 서서히 무엇을 원하는지 보이기 시작하나 아직 또렷하진 않다. 좀 더 파고들어 보자. 심플함 = 간단명료? 텍스트 중심으로 만들라는 말이구나!... 결국 그 광고주가 원하는 결과물은 꾸밈을 최소한으로 하고 고딕체를 활용한 텍스트 중심의 배경과 콘트라스트가 명확한 작업물이었다.


... 텍스트 중심이라고 말하면 될 것을 미니멀 라이프까지 가서 하지 않아도 될 수정과 커뮤니케이션을 수차례 반복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최근 경험담을 꺼내봤으나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매일매일 발생하는 트러블이다. 잘못된 단어 선택이 나비효과가 되어 야근을 하게 만들고 불화를 만들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올바른 단어 선택을 통해 확실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1. 뭔가 있어 보이려는 허세와 느낌적 느낌의 말은 하지 말자 제발.

영어는 최대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한국인이니까 당연히 한국어는 입력에서 출력까지 금방이지만 영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 출력까지 오작동이 여러 차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심플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디자인 요소인지 텍스트의 간결함인지 전체적인 톤앤매너인지 명확하지 않다. 말하는 사람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뱉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를 한국어로 적게, 짧게, 간결 등으로 변환하면 구체적으로 설명됨과 동시에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워진다.


또한 느낌적 느낌으로 설명하는 것은 말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 디자이너라면 특히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더 잘 보였으면 좋겠다." "뭔가 쨍한 거 같다." "정돈된 느낌이면 좋겠다." "모던했으면 좋겠다." 등이 해당한다. 감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라 사람마다 느끼는 오차범위가 상당히 크다. 이런 것들은 애초에 말을 하지 말거나 최소한 예시라도 보여주면서 오차범위를 줄이고 서로의 평균값을 맞춰 나가야 한다.


2. 스무고개 멈춰!

몇몇 광고주 중엔 스무고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원하는 바를 말해주지 않고 그것을 맞추기 전까지 계속 뺑뺑이 돌리는 사람들이다. 경험상 두 가지 부류로 해석된다. 자신이 설명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이를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과 그건 너의 일로 치부하는 사람이다. 전자는 짠하지만 후자인 경우는 갑질 유망주로서 훗날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결국 그 일의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한테 가는 것을 모르는 아주 단순한 사람들이다. 그래놓고 자기 얼굴에 침 뱉듯 남탓을 시전한다.



일은 내부든 내외부든 결국 함께 하는 것이다. 실질적인 업무는 나뉘어 있지만 누구 하나가 마무리를 제때 못한다면 그 피해는 나를 포함한 전체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나를 포함해 나와 엮여있는 모두가 제때 퇴근하는 것을 매일 목표로 둔다. 그래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이며 적절한 단어 선택을 위해 매 순간 고민한다. 단어가 적절하지 못하면 이해의 오류가 생기고 이는 야근이란 한숨을 넘어 불화의 씨앗으로 변화한다. 그래서 가장 경계하며 신경 쓴다. 일잘러가 되고 싶다면 핵심은 전달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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