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 세 번째
제안서를 쓸 때 가끔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누굴 위한 제안서인가?"
소비자를, 고객을 향하는 광고를 만드는데 제안서엔 너무 어려운 말들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리들이 가득합니다. 마치 전문가임을 과시하는 듯한 싸함을 받곤 하죠. 소비자에겐 닿을 내용들이 아니며 그들에게 닿을 메시지는 결국 수백 장 중 한 장에 불과한데 광고주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화려한 말들로 장표를 채웁니다. 물론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접근방식이 잘못되었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광고주에게 제안하는 일과 소비자에게 선보이는 일은 큰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광고주는 설득과 이해가 필요한 대상이지만 소비자는 절대로 설득한다고 물건을 사주지 않고 아무리 좋은 브랜드임을 이해해도 지갑을 열진 않는다는 거죠. 설득과 이해보단 공감과 동감의 대상입니다. 이렇다 보니 제안서는 수많은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 간극을 메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되거나 오그라드는 2% 부족한 광고들이 과반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해 현업에 계신 모든 분들이 죄송하지만 전문가 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범한 것을 단순히 평범하단 이유로 거부하죠. 뭔가 희뜩한 것을 남기고 싶다는 뽕에 취해 말도 안 되는 무리수를 두고 거기에 더 말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예산까지 투여합니다. 가령 쉬운 예로 코스메틱 업들이 그러합니다. 펫네임 하나 남기고 싶어서 발광을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펫네임보다 그냥 일반적인 브랜드+쿠션, 브랜드+폼클렌징을 더 많이 검색합니다. 평범하게 검색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닌 오가닉 하게 바이럴 되는 것이죠. 그걸 알면서도 전문스러워 보이기 위해 평범한 것을 거부하고 소비자들의 평범한 행동 패턴도 무시하는 무리수를 둡니다.
평범하게 생각하되 비주얼을 다르게
어떻게 하면 설득과 이해가 아닌 공감과 동감으로 광고주와 소비자 사이 간극을 없애고 일치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게 우리가 흔히 잘 만들었다, 성공적이다, 판매가 올랐다 하는 열쇠입니다.
제가 가진 열쇠는 '평범'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령 패션업이면 가장 중요한 게 저마다가 가진 개성일 겁니다. 주변에서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 터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내 선택이 철저히 무시당했음을 느낄 테니까요. 그래서 나온 게 지그재그 "내가 알아서 살게요" 캠페인인 것 같습니다.
너무 뻔한 말 아니에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뻔하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평범한 것이며 소비자의 언어인 겁니다. 전문가스럽게 보이고 싶다면 비주얼에서 디테일을 살리면 됩니다. 이젠 이미지와 동영상이란 비주얼이 가장 중요한 시대이며 카피는 비주얼을 통해 떠오르는 관계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카피라도 기억에 남을 카피가 되려면 비주얼로써 사로잡아야 합니다.
광고업에서 아이디어를 낼 때 광고인이라는 전문가 뽕 없이 일반적인 것을 제시하면 모두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나 다 생각해 올 것 같아"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게 가장 평범한 것이고 소비자에게 닿아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이냐, 비주얼과 디테일에서 전문가의 기질을 발휘해야지 평범하단 이유로 버려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평범을 평범하지 않게 보여주는 역할입니다. 애초부터 평범하지 않는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쉽게 생각하고 평범하게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