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도 돋보인다, 작은 것만 돋보인다.
지난 리뷰에서 언급했듯, 이야기가 힘을 드러내고 앞으로 이어질 것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모습은 분명 남은 이야기만큼은 더 기대해도 좋다는 포부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그만큼 해당 에피소드를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에피소드의 마무리에 대한 책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목표한 지점을 위해 갈등을 기능적으로 활용한 것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다행히 드라마라는 형식상, 해당 회차의 힘을 보여주고 다음 회차를 기약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늘 이 작품에서 언급했듯 해결 방법이 감정적인 접근으로만 이루어졌기에 ‘언론 이야기’라는 설정에 대한 흥미는 역시 잘 느껴지지 않는다.
서사에서 갈등이란 필연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이 해소되는 순간 역시 필연적인 모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이야기 속 한 사람의 독특한 ‘능력’이나 ‘정의감’ 또는 ‘우연’에 기댄 채 마무리를 도모한다면 이야기는 기억에 오래 남지 못한다. 이것은 물론 다수의 선택을 통해 해결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작품 스스로만 설득된 채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끝낸다면, 이후 남은 이야기가 어떤 완성도를 포함하든 간에 흥미를 떨어뜨려 버린다.
전광판과 그 앞에 선 윤리
문제가 커졌다(커진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에서 그 문제를 만드는 갈등이 설득을 갖고, 단순히 에피소드 형식으로 소모되지 않고 또 다른 문제에 불을 붙이거나 담론을 형성하며 깊이를 더할 것이라 예상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서사적으로 힘을 갖는다. 그러나 그렇게 잘 쌓아놓은 갈등이 한 인물의 ‘의지’ 또는 우연한 ‘감정적 동요’로 인해 하룻밤 만에 눈 녹듯 녹아버린다면 이것은 비슷한 실제 사건에 대한 기만으로 이어질 우려까지 생긴다.
물론 <허쉬>의 이야기는 경찰이 아닌 기자의 이야기이다. 마주하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로 문제를 알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의 기사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해결할 돌파구를 마련하거나 해결까지 해낸다면 이야기의 흥미는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기사의 힘은 물리적으로 눈앞에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해당 기사의 독자로 하여금 심적 변화를 싹틔우고 이어서 여론을 형성하여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에 그 서사적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을 듣고 오롯이 그 사람만을 난간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비슷한 고통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며 ‘예방’하는 것이 좀 더 맞는 역할이리라. 그런 점에서 전광판에 뜬 이지수의 글은 기사가 아니고, 칼럼도 아닌, 형식이 독특한 편지에 가깝다.(이미 감정에 온몸은 담은 듯한 상황에서 글 속 ‘김사장님’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외쳐온 ‘펙트’와 상당히 거리를 만들고, 과잉된 감정을 양산한다. 옥상의 장면을 되돌아보면 마치 비까지 내린 듯한 느낌이다.)
물론 누군가의 죽음까지 막을 수 있다면 좋은 기사라 할 수 있다.(그리고 오수연과 같은 결말로 이어질 때의 상황이 (정리하기 힘든)더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하필 그 인물이 전광판 위 ‘매일한국’의 기사가 정면으로 보이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또한 안일한 연출로 보인다. 게다가 떨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다. 언론의 윤리를 묻고 싶은 순간이다. 소동이 해결되었음을 인지한 뒤 한준혁과 이지수가 잠깐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꼭 보여주어야 한다 해도, 죽음 앞에 선 누군가의 모습을 그런 구도에서 찍는 것은 착취의 모습으로 느껴진다.(언론의 선택과 태도 때문에 난간에 선 누군가의 뒤에서 또다시 언론의 시선을 배치한 것은 고민 없는 연출의 책임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하룻밤 만에 에피소드는 해결되어 버린다.(작품이 언급을 그만둔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11화의 마지막 장면은 에피소드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모습으로 보였다.(괜한 오해였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 갈등 역시 ‘치킨 에피소드’와 같이 다루는 시간만 좀 더 길었을 뿐 똑같이 기능적인 에피소드로 전락해버린다.
그녀의 능력
지난 리뷰에서 언급했듯, 이지수의 글을 보는 주변의 긍정적인 시선은 전혀 설득 없는 ‘설정’으로만 존재한다. 초능력이 등장하거나 비범한 능력을 지닌 두 인물의 충돌을 보여주는 이야기의 설정이 아닌 이상, 인물의 능력은 이야기를 통해 설득되어야 한다. 이 작품에서 취재 중 그녀의 질문들과 이후 글들은 팩트보다는 감정이 앞서 있다. 사실 기사 역시 ‘글’의 종류 중 하나이기에 감정이 담기는 것이 절대적인 문제라고 치부하는 것은 그리 좋은 시선은 아닐 것이다.(감정에 의지하는 기사들을 실제로도 심심찮게 마주하지 않는가.)그러나 단순히 ‘글’이 아니다. 신념을 가진 기자로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언급하며 그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이 작품은 ‘글’이 아닌 ‘기사’를 그 중심 요소로 선택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사는 이야기의 초반 고수도 의원에 대한 최경우의 단독보도 하나뿐이고, 주연인 한준혁과 이지수가 팩트를 점검하는 과정은 나름 정의롭게 보여주지만,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그 기사의 내용은 우리가 기대하는 이성적인 기사와는 거리가 멀다.(그렇다면 차라리 ‘기사’라는 좁은 요소가 아닌 ‘글’이라는 좀 더 범위가 넓은 쪽을 선택하는 게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좋은 기사라 한다면 같은 내용이라도 형식에 있어서 기사다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고수도에 관한 기사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제대로 포함해 그 내용 자체만으로 많은 것을 함의해야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위와 같은 조건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의 시선들을 통해 대사로만, 즉 작품 스스로만 인정할 뿐이다. 또한 이번 회차에서와 같이 우연히 피해자가 매일한국 전광판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우연’에 의지한다. 생각보다 많은 갈등이 우연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갈등의 해결 역시 그런 식으로 확률싸움을 하는 건 안일한 방법이다. 특히 <허쉬>와 같은 배경의 드라마에서는 ‘우연’을 ‘필연’의 순간으로 인식할 만한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김정민 작가의 전작인 <슈츠>에서 제대로 된 법정의 모습이 없었던 것처럼, <허쉬> 역시 제대로 된 기사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우려가 점점 확신으로 변하고 있을 것도 부정하기 힘들다.)
공들인 상징들
지난 리뷰의 후반부의 내용처럼 이야기부터가 흥미로워야 다른 부차적인 것들, ‘상징’이나 ‘연출의 기술’ 등이 좀 더 효과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 12화에서 역시 그런 상징들이 여전히 존재감을 표출하고 있었고, 흥미로운 몇 가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매일한국 사장이 가진 ‘그림’들이 그렇다. 이전 회차들에서 그의 그림은 누군가를 해고했고, 퍼즐과 같은 그림의 대체 요소는 사장의 무지(無知)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회차 속 한준혁과의 대화에서 역시 그림이 언급되었다. 가끔 흥미를 주는 그림과 같은 매일 한국, 이는 다시 말해 언론과 그 안의 기사를 바라보는 우리를 얘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기사가 가진 힘은 지금 기사의 그것과 다르며 단순히 흥미로운 내용만 담은 기사만 찾아보는 태도를 일정 꼬집는 것이다. 게다가 한준혁과 안지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사장의 목표는 정치권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기사는 창작물이 아닌, 누군가의 위신이나 권력을 시각적으로 대변하거나 보조하는 소모품일 뿐, 정치가 바로 진짜 창작행위라는 것이다. 덕분에 <허쉬>의 마지막에서 파국을 맞는 사장의 눈에 들어오는 그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10화의 제목은 ‘고기’였다. 소고기를 먹자는 한준혁의 말에 그녀는 돼지고기를 먹자고 말한다. 그리고 이번 회차에서 두 사람은 드디어 소고기를 먹는다. 장소 역시 고기의 연기가 그대로 보이는 고깃집이 아닌, 고급 식당으로 바뀌었다. 즉 한준혁에 대한 안지윤의 의심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사실을 이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언급했었듯, <허쉬>의 음식 중 ‘장어’와 ‘고기’는 분명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최경우가 국장실에서 내려놓는 커피가 흥미롭다. 커피 받침은 언론인의 보도 자유를 억압하는 일종의 프레임일 것이고, 이때 이것은 국장의 존재로 대변된다. 그리고 최경우는 커피잔을 그 프레임에 맞지 않게 잔을 놓는다. 이후 국장과의 대화 끝에서 잔을 완전히 받침의 밖에 위치시키며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물론 카메라의 시선과 함께 적잖이 노골적인 장면인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한준혁이 걷은 커튼을 통해 고수도 사건이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고, ‘No Gain, No Pain’을 마무리 짓는 단계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통해서 진행되는 것은 분명 언론의 악의가 얼마나 치밀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히 흥미로운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번 회차에서 ‘김밥’은 그리 감정을 호소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그러나 잠깐 이지수의 집에서만 출현할 뿐 존재감 자체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음식 제목의 가치가 다시 한 번 회의적으로 느껴진다.) 또한 지난 5, 6화 리뷰에서 언급했듯, 최경우과 국장의 관계가 드러나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기에 그리 장르적인 재미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회차에서처럼 또 다른 에피소드가 기능적으로 활용될지에 대한 우려는 더 높아졌다.
(HUSH의 마지막 ‘H’가 ‘Han-Kook’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