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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야 Feb 04. 2021

드라마 <허쉬> 13, 14화 리뷰

당연한 집중, 그래서 아쉬운 집중.

이제 작품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시 말해 해당 작품의 설정과 맞물려 장르적인 재미로 총공격을 할 차례인 것이다. 즉, 지금마저도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해당 작품의 상황에서는 정말 큰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허쉬>의 14화는 그 기대를 잘 충족시켜 준 것으로 보인다. 반면 13화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니라, 작품의 마무리 단계임에도 그 힘이 크지 않다. 전자의 경우로 본다면 주 2회차라는 드라마의 특성상, ‘3화’보다는 ‘4화’가, ‘9화’ 보다는 ‘10화’가 더 장르적인 힘을 보여주고, 시청자로 하여금 한 주를 더 기다릴 수 있게 만들 여지를 남길 필요가 있으며, 그게 작품에 대한 관심도를 더 높이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언급한 것처럼, 13화보다 14화의 밀도가 더 높았던 것은 맞지만, 13화의 흥미가 이전 회차들이 것들과 비슷하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 이상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회차가 유기적으로 작품의 정체성을 띠면서도 독립적인 매력을 갖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 때문에 14화의 재미가 커진 것은 다행이지만, 이전 회차들의 가치가 동시에 하락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제목으로 표현되는 음식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사건이나 감정의 중심이 되는 것은 이젠 포기의 단계에 접어든 듯하고, 13화에서 이지수와 한준혁이 짜장면을 먹는 장소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좋아했던 음식이 뭐였을까를 두고,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도 알기 어렵다’는 인간관계에 대한 언급만 조금 흥미로웠을 뿐, 사건과 소동의 진행과 감정 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해장국도 마찬가지이다.)


출처 - JTBC

또한 ‘No Gain, No Pain’ 집회 현장에 나간 이지수 주변의 인물들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온 축축한 감정을 또 다시 상기시키고, <허쉬>의 초반부터 논란 아닌 논란을 형성한 배우들의 연기의 문제가 어디서부터 촉발되는지 다시 한 번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언급한 것처럼 14화는 분명 기대했던 재미를 충분히 보여주었고, 연출과 그 안의 편집에 많은 힘을 쏟은 게 드러나며 흥미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집회 현장으로 간 이지수


‘예술, 특히 대중적인 영상 예술은 대체적으로 자본 없이는 굴러가기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드라마 속 PPL이 돌출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며 몰입을 방해하더라도 시청자는 그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라는 말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 그것을 유연하게, 또는 작품의 매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승화하는 것도 각본과 해당 작품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언급할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작품 자체의 몰입도를 상당히 높여 PPL의 등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이 언급은 이지수의 ‘핸드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3화에서 ‘No Gain, No Pain’ 집회에서도 이지수는 핸드폰으로 메모한다. 여기서 메모는 단순히 메모가 아니다. <허쉬>의 캐릭터들이 계속해서 (대사로만) 설득하듯, 문제의 요점을 정확히 판단하는 그녀의 능력까지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 계속해서 등장하는 핸드폰의 PPL은 그 자체만으로도 몰입을 방해하지만, 집회 속 ‘자영업자’ 단체와 ‘No Gain, No Pain’ 양측 모두 피해자이고 중요한 것은 ‘상생’이라 생각하는 기자가 오직 그녀 하나뿐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물론 PPL과 인물의 특성을 동시해 해결한다는 합리적인 선택으로 (각본 또는 연출이)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신문사 이야기라는 것 때문인지 노골적으로 문자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 일차원적인 방식으로 보일 뿐이다. 덕분에 ‘능력 있는’ 이지수라는 캐릭터에 대한 설득은 계속해서 힘을 잃어간다.

출처 - JTBC


집회 현장에서 보이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지수는 현장에서 피켓을 든 한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매일한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안다고 답한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주변 카메라는 전부 그녀를 향한다. 그리고 집회는 중단된다. 이 진행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권리를 외치던 이들이 직접 얼굴을 드러내면서까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그 결과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단체일 수 있다는 의심을 언론을 통해 인식시켜 스스로 힘을 잃게 만드는 게 ‘매일한국’과 이 작품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진행이 너무 안일해 보인다.


집회 참가자 중 한 사람인 그녀가 우는 이유는 ‘매일한국’에서 언론사로서 이상적이지 못한 일을 한 뒤 바로 해고를 당하는 등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기 때문으로 감정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지수와 ‘매일한국’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힘없이 울어버리는 것은 그들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려는 작품의 의도로서는 이해하지만, 단순하게 그것이 대중의(또는 시청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모습으로 한정해버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무기력해져 목소리도 낼 수 없어 눈물 흘리는 순간은, 그 직전까지의 노력이 더 이상 앞에 있는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이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꼈을 때 비로소 연민뿐 아니라 어떤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취업이라는 것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힘든 벽을 겪은 익명의 집회 참여자들이 어떤 노력을 하며 갈등을 겪었는지 조금이라도 설명하지 않고 그대로 울려버리는 것은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1화부터 보아온, 집회에 참여한 해당 배우들의 얼굴은 보편적인 삶을 대표하면서도 13회차라는 시간을 지나며 캐릭터가 형성되었기에, 그러한 기능적인 퇴장 역시 작품의 안일한 태도로 읽힌다.)

출처 - JTBC

이후 이지수가 발견한 그녀 엄마의 모습 역시 비슷한 맥락을 통해 얘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른 척하지.”, “그래 엄마가 잘못했어.” 등의 대사는 딸을 마주한 뒤 자식이 느낄 것 같은 창피함에 대한 일방적인 사과겠지만, 모자를 포함한 엄마의 모습과 그 행동은 자신의 선택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 역시 함께 드러낸다. 그러나 힘없는 서민의 모습이 늘 확신 없는 모습이어야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기서 필요한 것은 차라리 (당연히 그렇게 진행할 일은 없겠지만,) 엄마를 발견하고 그것이 오해로 이어져 더 크게 뭐라고 하는 이지수에게 자신의 행동이 떳떳하다고 말하는 당신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게 좀 더 성숙하고 흥미로울 수 있는 선택이리라. 결국 해당 회차 속 집회는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서민들의 집단 지성과 의지를 고려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약자의 행동을 연민의 감정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늘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락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찌라시와 언론


흔히 오르내리는 찌라시는 이 작품에서도 그렇듯,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다. 요점은 언론사 또는 관련 인물들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인데, <허쉬>에서는 정치권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며 해당 요소의 활용 방법이 적잖이 흥미로워 보인다. 오수연이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찌라시로부터, 윤상규의 손을 거치며 기정 사실화 되고, 그녀의 죽음이 한준혁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있다는 소문으로까지 불어나며 자연스럽게 갈등을 조장하는 동시에 근거 없는 소문이 얼마나 큰 힘을 갖게 될 수 있는지를 설득한다.

출처 - JTBC

좀 더 흥미로워 보이는 것은 그것에 대한 반응이다. 윤상규의 경우, 한준혁이라는 눈엣가시를 없애겠다는 목적으로 그런 소문으로 와전시킨 것이겠지만, 이는 ‘메일 한국’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비열하지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악역이라는 설정이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리라.) 이에 한준혁을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며, 정치권으로 다가서려는 사장과 ‘매일한국’이라는 언론사를 더욱 책임감 있는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결국 언론사 역시 사업체라는 사실과, ‘언론’이라는 도구로 이들이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소식들은 중요한 진실을 가린 채 공개되는 사실일 뿐이라는 것을 설득한다. 이와 함께 ‘경쟁 언론사의 흠은 자기들한테 이익이 되지 않냐’는 이지수의 질문에 ‘자기들도 똑같이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대답을 통해, 단순하지 않은 언론 시장의 현실을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얼토당토 않는 찌라시로까지 불이 번진 이유가 있다면, 이지수가 오수연의 죽음에 대해 더 알아보지 않고 그저 한준혁의 말만 듣고 비밀로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13화 속 찌라시를 활용한 진행 과정은 흥미로울지 몰라도, 동시에 그 기반이 부실해 답답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각본과 연출 그리고 연기


분명 <허쉬>라는 작품의 캐스팅을 처음 마주했을 때 시청자들이 가졌던 기대 중 하나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의 연기는 논란 아닌 논란이 될 정도로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했다는 게 현재까지 이어진 평가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스크린과 브라운관의 연기는 그 기반 자체가 달라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의견처럼 드라마라는 제작 환경상 긴 대기시간과 상대적으로 집중하기 힘든 촬영 방식 때문에 그런 결과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그러나 <허쉬> 속에서도 눈에 띄는 좋은 연기는 분명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가 매회 빛을 발하는 드라마도 수없이 보아왔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물론 이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출처 - JTBC

이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는 순간 중 하나가 있다면, 이번 14화에서 최경우가 선배 기자들 앞에서 그간 국장의 ‘프락치’인 것을 밝히며 사죄하는 모습 직후, 출입증을 목에 걸고 일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외치는 이지수의 대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으로 시작한 그녀의 외침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토해내려는 것으로서 기자의 사명감과 동료들과의 돈독함을 더 높이려는 각본의 의도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로지 감정만 앞서는 돌출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있어서, ‘윤아’라는 배우의 출신이 연기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이지수의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경력 때문에 그녀의 연기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을 <허쉬>의 초반부터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언급한 장면을 보면 이지수라는 캐릭터의 행동은 너무 갑작스럽고 배우 자체가 몰입하기 힘들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다시 말해, 그간 논란의 순간들이 배우 자체의 연기가 문제인 순간도 있을지 모르지만, 언급한 순간처럼 각본 속 캐릭터의 행동이 너무 갑작스러워 몰입 자체가 힘들어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아닌 게 아니라 황정민뿐 아니라 양윤경을 연기한 배우 유선의 연기 역시 이 작품에서 어색한 순간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각본만이 문제인가. 드라마의 특성상 각본의 힘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배우의 연기에 대한 책임을 연출도 절대 피해갈 수 없다. 각본을 검토하고 각본과 배우를 이어줘야 하는 것이 연출의 몫 중 하나일 텐데, 배우들의 어색한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케이’를 외치거나, 단순히 배우의 역량으로 판단하고 넘겨버리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이리라. 이를 제외하고도 연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쓸 공간이 필요하기에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다시 말하지만 이때 ‘드라마라 시간이 없다’라는 것은 기민하지 못한 연출에 대한 변명이자 핑계이다. 반례가 되는 한국 드라마는 정말 많다.)


14화 속 연출


언급했던 것처럼 14화는 (몇몇 돌출된 순간이 있었지만,)그간 회차들 중에 가장 몰입도가 높고,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회차인 것은 확실하며, 이는 회차의 시작부터 드러난다. 아침 바다를 보고 온 한준혁과 이지수는 각자 다른 곳에서 오전의 부재(不在)에 대한 취조를 받는다. 이때 두 공간은 계속해서 편집을 통해 교차되며, 두 사람이 어떻게 이 순간을 모면하는지를 지루하지 않게 보여준다. 사실 이런 장르적인 작품에서 ‘설득’이라는 것은 대사를 통해 이성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는 것도 맞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너무 설명적인 논조가 강해 지루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장면 자체의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이나 편집을 통해 그런 설득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시간을 아예 차단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이다. ‘괜히 외부에 다른 소리를 할까봐 직접 데리고 있었다’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변명일지 몰라도, 해당 장면을 보는 순간만큼은 그런 의문을 잠시 내려놓게 만들었다.(물론 한편으론 너무 호흡이 빨라 이해 자체가 힘들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처 - JTBC

또한 회차의 마지막 순간에서 이지수와 국장이 마주보고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과 한준혁이 사장실에서 비밀이 담긴 USB를 훔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 역시 장르적인 재미를 십분 활용한다. 만약 이지수와 국장이 식장에서 언쟁하는 순간만을 독립적으로 보여준다면, 국장이 한준혁과의 과거를 언급하며 그녀로부터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 자체는 흥미롭지만 그 이후의 대화는 감정에 상당히 의지하는 순간이 되어 밀도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준혁이 지갑을 놓고 왔다며 다시 사장실로 올라가는 장면과 더불어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의 긴장감 역시 계속해서 유지되며, 장면의 교차 그 자체 덕분에 사장실에 있는 한준혁의 모습 역시 긴장감이 커진다. 그리고 마침내 금고가 열린다. 예상했던 것처럼 한준혁은 들키지 않고, 퍼즐 조각에 대한 오해 역시 그렇게 큰 장치는 아니었지만, 사장실을 나가기 전 갑자기 돌아가는 그림은 그 자체로도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며, 마지막 주인 다음 회차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며 마무리한다.




이번 두 회차에 대한 기억은 14화 덕분에 석연찮은 점들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14화에서 금고의 존재를 바로 보여주는 사장의 행동이나, 의도적으로 양윤경의 무리가 술 마시고 있는 곳으로 한준혁을 이끌고 가는 행동은 악역의 입체성을 드러내며 그 긴장감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아쉬움은 더 커졌다. 해당 회차들 자체 때문이 아니라, 초반에 언급했던 것처럼 비교되는 이전 회차들 때문이다. 덕분에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얼굴들을 보게 되는 기회가 왔을 때 막연하게 차오르는 기대를 이제는 조금씩 억누를 수 있을 것 같다.(<허쉬>의 후속작인 <괴물>이나, 몇 주 후 시작할 JTBC 드라마 <시지프스>에 대한 기대 역시 조금 줄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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