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과 대사를 앞지르는 헌사
드디어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이 개봉했다. 짝수 번째 작품보다 홀수 번째 작품이 더 좋다고 하는 007시리즈의 25번째 시리즈이기도 한 <노 타임 투 다이>는 제목만큼이나 야심을 드러내며 예고를 해왔고, 코로나로 인해 1년이나 개봉이 미뤄진 탓에 많은 이들의 기대를 받은 블록버스터 중 하나였으리라. 그리고 캐스팅 역시 기대를 배가시켰다.
이 작품에서 언급할 수 있는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우선 다섯 번이나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에 대한 헌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가 이 작품의 핵심 중 하나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대사나 연출에 있어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23번째 007시리즈인 <스카이 폴>의 돋보이는 연출은 바로 ‘추락’이었고, 이는 <노 타임 투 다이>에도 등장한다. 영화의 초반 액션, 갑자기 나타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피하려는 본드는 다리에 묶인 줄을 잡고 밑으로 떨어지는데, 이 모습은 <스카이 폴>의 초반에 총을 맞고 추락하는 그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번엔 추락하는 대신 착지하며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토바이 질주 장면에서는 되려 벽이나 계단을 타고 상승하며 대조되는 이미지를 통해 연출을 부각한다. 이는 연구실에서 폭발과 함께 떨어지는 이들이 자석에 의해 추락하지 않는 모습, 어린 매들린이 호수에서 올라오거나 본드가 바다에서 올라오는 모습 등을 통해서도 반복되는데, 결국 이번 007은 ‘하강과 상승’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연출을 통해 다니엘 크레이그의 퇴장과 앞으로의 007시리즈에 대한 포부를 보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언급한 <스카이 폴>에서는 ‘007 시리즈’의 현 상황을 영국이라는 국가의 위기로 표현하며 작품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노 타임 투 다이>는 ‘추락’ 또는 ‘하강’을 ‘상승’과 ‘회복’을 위한 조건으로 보여주려는 의도를 드러내며 흥미를 이끌어낸다. 이와 함께 제목인 ‘No Time To Die’를 상기해보면 이 작품의 끝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게 죽음은 맞지만 동시에 또 다른 ‘007 시리즈’를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는 포부로도 들린다는 것이다. 또한 ‘마틸다’의 존재와 본드가 읊조리는 ‘가족’이라는 단어 역시 ‘죽음’이 아닌 ‘삶’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고, 그가 마지막에 마주하는 것이 자국인 영국의 미사일이라는 사실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헌사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리즈의 내용이나 액션이 진부해 보이거나 지루한 것은 사실이다. 본드의 옛 연인인 베스퍼와 지금의 연인인 메들린을 통해 보여주는 본드의 로맨스는 제임스 본드의 액션 이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흥미로울지는 몰라도 색다른 로맨스로는 보이지 않고 그저 본드와 메들린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가족으로 이어지는 감상적인 마무리를 위한 선택으로만 작동한다. 물론 이는 악당인 ‘사핀’의 복수가 본드에게로 이어지며 단순히 ‘가족을 잃은 고통’이 아닌, ‘살아있음에도 가족에게 다가갈 수 없는 고통’으로 가중됨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그럼에도 사핀의 공격이나 최후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은 채 감상적으로 전락하며, 이를 표현하는 본드와 사핀의 대화는 큰 매력 없는 대사로만 이루어져 해당 작품의 런닝타임을 재고하게 된다.(게다가 이들의 대화에서 볼 수 있는 일본식 미술 세팅은 돌출적이다.)
또한 캐릭터 역시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계속해서 자신만의 매력을 쌓고 있는 배우인 ‘아나 디 아르마스’가 연기한 팔로마, 또 다른 007인 ‘노미’등의 캐릭터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시퀀스의 재미나 제임스 본드가 가진 ‘007’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것으로만 이어져 작품 전체가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인상을 받기 쉽다. 게다가 중요한 인물인 매들린 역시 내용 진행을 위해 총을 몇 발 쏠 뿐, 주도적인 인물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언급했듯 <노 타임 투 다이>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제임스 본드의 마무리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한 흔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그는 메들린에게 ‘급하게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지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작별(죽음)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는 영화의 선택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어찌 되었듯 ‘액션 블록버스터’이기에 그에 걸맞는, 충분히 밀도 높은 장면들이 필요하다. 장르적인 재미보다 작품 외적인 것과 관련된 요소들이 더 먼저 생각나는 액션 영화로 남을 듯한 <노 타임 투 다이>의 마무리가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또 다른 영화들의 제 리뷰를 보실 수 있는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ussm2020/222491248965
https://blog.naver.com/ussm2020/222497749058
https://blog.naver.com/ussm2020/222509457850
https://blog.naver.com/ussm2020/222514413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