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진 Jun 27. 2024

호주의 수도쯤 모르기로소니

며칠 전 운전중 라디오를 들었다.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이었는데 전화로 연결된 청취자와 퀴즈를 내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다. 형식도 정서도 아날로그 그대로였다. 한 중년쯤으로 들리는 목소리의 남성이 연결되고 첫 문제가 나갔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가 어디냐는 다분히 초등스러운 수준의 질문. 


나는 재빨리 혼자 내뱉었다. 멜버른이잖아 멜버른. 그리고 빠르게 재차 확신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시드니를 호주의 수도로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니라고. 그건 캐나다의 경우와 마찬가지일거라고. 지구상의 상당수가 캐나다의 수도를 토론토라고 알고있지만 사실은 오타와인 것과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하며 답을 기다렸다. 그 청취자는 답했다.뉴질랜드. 와 와 왓???? 진짜 저렇게 답한거 맞나 싶을 정도였는데, 진행자가 그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줬다. 그러자 그는 이번엔 이렇게 답을 내놨다. 덴마크. 


와,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그의 최종 학력이 궁금했다. 적어도 다른 이름을 댄다해도 도시의 카테고리에서 나오기는 해야할 것 아니냐 말이다. 적어도 나라이름은 그것들끼리 도시 이름은 그것들끼리는 묶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요즘 초등학생 꼬맹이들은 손에 핸드폰 쥐고 뭐하고 노는지 모르겠는데, 나 어렸을 땐 그런 놀이도 했던 것 같다. 번갈아 나라이름 대기, 혹은 도시 이름 대기.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밑천이 바닥나서 제때 이어가지 못하는 쪽이 지는 놀이. 그러니 초등학생도 그러지는 않겠다. 


너무너무 충격적이고 놀라워서 집에와서 애들에게까지 한참을 늘어놨다. 그러다가 스스로 뭔 호들갑이냐 싶어 머쓱해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안다는게 뭐지? 고작 이름 아는게 뭐란 말인가. 그거 '아는' 거 맞나? 나도 몰랐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가 시드니나 멜버른이 아니라 캔버라인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치자.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건가. 뉴질랜드나 덴마크라는 이름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수도에 갖다 붙이지 않는 정도라고 치자. 그것이 뉴질랜드와 덴마크를 아는 것인가. 그 사람과 나의 차이가 뭐 대단한가. 아니 차이가 있기라도 한가. 


우리가 흔하게 인용하곤 하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세익스피어, 햄릿이란 이름만 달랑 아는 것, 그것이 전부인가. 누군가 '니체'하면 '신은 죽었다'를 바로 연결지을 수 있을 정도이지만 나를 포함 많은 사람들은 거기서 끝이지 않나. 그래서 뭐? 


어려서부터 흔하게 접해왔던 '아는게 힘'이란 명제가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아는 것은 무엇이든 미덕일까. 그 명제는 여전히 유효해서 이 시대엔 얉고 넓은 지식이 각광받는 것일까. 앎이 경험과 만나 삶 속에 무르익고 경험은 성찰과 만나 새로운 앎의 길을 열어 인간으로서 성숙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알음알음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덧붙임. 글을 쓰고 나서 한겨레 신문에서 김훈 작가와 서면 인터뷰한 내용을 읽게 되었다. 


"'안다'는 것은 책 읽고나서 하는 말이 아니다. 

'안다'는 삶을 통과해 나온 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쓰기 어려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은 온통 '이것' 타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