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김훈 작가의 소설 '흑산'을 읽고있다. 소설은 조선 말기, 천주교 박해를 그리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품 속 이야기와는 별도로 놀라워하고 하고 있다. 인류가 긴 세월동안 그렇게 수없이 전쟁, 박해, 살육 등 의도적인 죽임을 통해 '말살'에의 의도를 시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은 결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일본이 조선을 엾애버리고 싶었는데도 우리는 건재(?) 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그렇고 현대에도 그와같은 전쟁은 일어났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씨를 말리겠다'하는 그악한 저주도 결코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사례는 없지 않을까. 국가의 형태나 언어가 소멸되는 경우는 있어도 '씨'가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 '씨'가 이어져 내려간다는 것이!
소설속에서는 태어남 자체가 비참함을 안고 시작하는 민초의 생애들이 있다. 나는 궁금해졌다. 내가 오늘날 있기까지 거슬러거슬러 올라가 나의 조상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나는 양반의 후예일까 '상놈'의 후에일까 하는 호기심을 넘는 그 무엇이다. 나의 존재는 어디선가 뚝 떨어져 그냥 2024년대, 초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꼬박 꼬박 한 세대 한 세대 이어져 오다가 나에게까지 온 것이라는 새삼스러운 경이가 느껴졌다.
인간은 총 한 방, 한 칼의 휘둘림으로 스러지는 약한 육체를 가졌는데도 수없는 의도적이거나 자연적인 해에도 어떻게 전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소설에서는 우리에게는 '정약용'이 대표로 유명한 정씨 집안 형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 나에게 꽃힌 대목이 있다. 그들 형제 중 첫째인 정약현이 자기집에 소속되어 있던 노비를 딸 사위가 독립할 때 딸려보내면서 하는 말이 그렇다.
"육손이는 제 부모가 낳은 자식일세. 그걸 잊지 말게."
인간에 관한 관념중 참 훌륭한 근본이 아닐까. 인간뿐 아니라 제 부모에 의해 낳아지지 않은 새끼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극히 당연해보이고 평범해 보이는 이 명제가 진정 유효하다면 이 세상에 그토록 수없이 일어나는 생명 경시, 혐오, 착취, 각종 폭행 사건, 갑질 등으로 어지럽지 않을터인데.
이 탁하고 어지러운 세상, 우리 모두 근본으로 돌아갔으면. 우선 나자신부터.
나는 내 부모가 낳은 자식이다!
저 사람 또한 저사람의 부모가 낳은 자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