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 긴가민가 하던 세월 어느덧 열 두 해
이젠 그도 나를 잊고 나도 그의 악명이 희미해져 갸는 즈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데
긴 세월에 그대로인 상처는 없는법인가
명백히 자라를 두고도 솥뚜껑 밖에는 떠올리지 못하는 아둔함이여
이상하다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하였다
아무런 까닭없이 갑자기 봇물 터지듯 초장에 제어할 틈도 없이 일은 벌어지네
눈꼴 시린 세상사를 탓해본들 무슨 소용있으며
기막히고 코막히게 얄궂게 돌아가는 요지경을 한탄해본들 대관절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광활한 우주안에 모든 현상은 원인없는 바가 없을진대
들여다보자 함 들여다보자 평온한 일상을 덮친 이 곤란지경의 뿌리는 무엇일꼬
이리 생각 저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모르겠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다만 전생의 업보런가
이런 평온을 꺠는 곤란을 겪고 또 겪노라면 알 수 없는 내 업보가 녹아내리려는가
아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내 생애 이 고통 얼마나 더 지속해야 할지 모르고 당하느니
오죽하면 앞 못보고 냄새 못맡는 형벌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모자란 생각마저 들까
아침에 잠에서 깨면 드는 생각은, 또 눈물이 앞을 가리는 하루를 살아내야 하려니
요며칠 버릇이 돼버린 나의 기인 한숨질이여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무심한 한 숨에 딸려나오듯 섬광과도 같은 찰나의 깨달음이 있었으니
아, 그것이로구나. 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반갑지 않은 손님, 그 분이 돌아오셨구나. 열 두 해 만에.
숨을 곳이 있길 하나 도망갈 곳이 있길 하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속수무책 땅을 칠 줄 알았더냐
안달복달 안절부절 전전긍긍 애걸복걸 할 줄 알았더냐
그가 없는 편안한 세상 살면서 나름 내공을 길렀으니 인생사 고통이나 곤란쯤
의연히 받아들이련다
맞서 싸우기보다 원망하고 한탄하기 보다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도 괜찮다 여겨보련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지르텍은 유효함을 파악해 두었도다
나의 구세주같은 그 이름, 지르텍
내 그를 과감히 영접하여 반갑지 않은 손님과의 동거를 채비하리라
너무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친절한 얼굴로 견제함으로써 능수능란하게 다스리며 함께 가주리라
오랜 공백을 깨고 다시 나를 잦아온 불치의 지병, 알레르기 비염
그대는 이제 나의 적이 아님을 선포하노라. 그대는 다만 나의 일부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