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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밤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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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밤 Aug 05. 2021

나도 강아지는 처음이라

밤비는 1인 가구로 오게 되어 낮 동안에는 내내 집에 혼자 있다. 그런 밤비에게 미안함과 부채 의식이 있어 퇴근하고 나면 산책하러 나가기 바빴다. 내 저녁도 빨리, 대충 먹고 나가야 할 것만 같았다. (덕분에 밤비 오고 한두 달은 살이 빠졌다.) 1일 1산책은 밤비를 데려오기 전부터 다짐했던 일이기도 했다.      


기생충도 없겠다, 신나게 산책만 나가면 됐다. 그런데 함께 걷는 밤비가 이상하다. 몇 걸음 안 가서 자꾸 내 앞을 가로막는 거다. 한두 걸음 걸으면 내 앞을 가로막아 서서 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하느라 스텝이 꼬이고 줄이 꼬였다.      


“너 왜 그래? 앞을 보고 걸어야지.”     


멀뚱히 날 보는 밤비를 보며 한마디 보탰다.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되레 앞발로 내 다리에 매달리기도 했다. 과거, 엄마와 이모네 강아지를 산책시켜본 적은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밤비의 행동이 더 아리송했다.      


한 며칠 그렇게 불편한 산책을 하고 안 되겠다 싶던 나는 검색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산책할 때 가로막는 강아지, 산책 가로막는, 강아지 산책 이상해요 등의 다양한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봤는데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강아지 카페에 글을 남겨봤다. 댓글이 달리길 기다렸는데 무플이 지속됐다. 다들 왜인지 모르는 건가... 싶었는데 그때 댓글이 하나 달렸다.     


‘강아지가 어린가요? 산책하는 게 무섭거나 걷는 게 힘들어서 안아달라고 그러는 걸 수도 있어요.’     


 댓글을 보고 순간 , 하고 놀랐다. 생각해보니 2, 3개월  어린 강아지들은 산책을 나갈  먼저 안고 나가라는 조언을  적이 있었다. 그리고 5, 10 시간을 차근차근 늘려나가야 산책을 즐기게 된다고 했다.      


나는 밤비 나이가 4~6개월 정도로 추정하고 있어 새끼강아지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산책하면 당연히 좋아서 꼬리를 흔들며 다닐 줄 알았다. 10분을 걷든, 30분을 걷든 알아서 잘 다닐 줄 알았던 거다.      


사실 밤비는 산책을 한 번도 안 해봤을 수도 있고, 산책이 두려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저 산책하는 나에 취해 밤비의 두려움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날 나는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며 밤비에게 사과했다.     


“산책이 무서웠어? 그런 거면 미안해. 내일은 천천히 나가보자.”     


다음 날, 산책길에 나선 나는 내심 비장한 마음이었다. 오늘은 10분만 후루룩 돌다 오자! 하는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웬일로 잘 걷는가, 싶더니 역시나 내 앞길을 가로막으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때 밤비를 안아주었다. 내려달라고 발버둥 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만히 안겨있었다. 걷는 게 힘들었던 걸까? 무서웠던 걸까? 정확히 밤비 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편하게 있으면 그걸로 됐다 싶었다.      


걷기가 힘들구나. 날 안아라, 언니야


이후로 산책하면서 밤비가 나를 가로막거나, 나에게 매달리면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점점 밤비 스스로 걷는 시간이 늘어갔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밤비에게 산책에 대한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먼저 안으려고 하면 피하기 바쁘다. 혹자는 산책하다가 너무 자주 안아주면 스스로 걷지 않는다고 하던데, 지금은 30분이든 1시간이든 스스로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닌다.      


이렇듯 어떤 생명체와 함께 지낸다는 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그런 시간 말이다.      


나는 강아지가 처음이고, 밤비는 나라는 주인이 처음이니까 둘이 천천히 잘살아보자고...!


걷기 힘든데 우리 씽씽이 타고 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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