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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Jan 15. 2024

그때를 생각해 보니

나의 어른이

어른과 어린이의 합성어로 '어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스무 살 전공선택도 직장도 결혼도 출산도 모든 과정에 나의 어른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해서는 시부모님까지 부모라는 이름으로 나의 어른이는 더욱더 보호를 받으며 틀 안에서 꽁꽁 싸인채 자라나는 중이었다.

마흔쯔음 결의를 다지며, 그 보호라는 틀을 깨부수고 '나'로 독립해 살겠다고 생각했던 게 마흔 사춘기라 스스로 명명하던 그 때다.

많이 늦은 감이 있다 느껴다.


성실하고 말 잘 듣고 학교 다닐 때부터 한 반에 60명인 라테(나때) 시절로 말하자면 60명 중에 아마 일 년 동안 한 번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아이들 중에 한 명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쩌다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 하면 박수받기 위해 이름이 거론되는 아이.

늘 거론되었다면 공부를 잘해서 이름을 알렸겠지만 어쩌다 1등, 그리고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세우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힘들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선생님의 눈을 피하는 그런 아이였다.

너무 웃긴 건 어쩌다 1등도 못해서 공부로 존재감이 드러낼 수 없다 싶으면 자진 각종지원을 하기도 했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선도부장 할 사람~"하는데 갑작스레 손들고 "제가 하겠습니다!" 외치는 바람에 아이들이 "오~네가 웬일이야~""야~" 놀라는 눈치였다.

얌전이 모범생, 멍 때리기 좋아하는 조용한 나.

생각해 보니 초등, 중등을 지나며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조금씩 내 안의 내가 나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굳이 선도부장을 지원한 것도 나름 특별한 이유가 있었.

후배들의 반을 돌아다니며 노는 아이들의 복장이나 헤어 단속을 하고, 매일 아침 등굣길 교문 앞에서 교무부장님과 함께 매의 눈으로 규율에 어긋나는 아이들을 잡아내는 활동이 뭔가 권한을 행사하며 통제하려는 행위자체가 대개 멋있게 느껴졌다.

분명 나는 관종끼가 잠재되어 있는, 그 어떤 것으로든 조용히 관종이고 싶었던 아이러니한 나였던 것 같다.


크게 나대지는 못하지만 눈에는 띄고 싶은 관종은 사회에 나오니 이쁨 받는 초년생이 되었다.

성실함과 책임감은 기본에, 회식이 있으면 선도부장 지원할 때처럼 자진 손을 들고나가서 분위기를 주도!!! 했다면 내가 아니었겠지... 조용한 관종은 등 떠밀려 나갈 기회가 오면 기다렸다는 듯 나가 마이크를 쥐고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앉아서 일하던, "너 어제! 야!" 직원들의 반응에 "아... 제가 어제는 좀... 하" 착하고 성실한 말단 직원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분위기에서 어떻게 하면 상사에게 이쁨 받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쓰는데, 자꾸 우리 첫째와 둘째를 돌아가며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자꾸 이런 아이들을 이해해보려 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반성하며 놀라며 멈칫거리며 글을 써 내려가게 된다)


사회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하게 되면서 주말이면 서울구경 다니는 게 즐거웠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즐거웠고, 내가 번 돈으로 쇼핑하고 맛있는 거 사 먹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늘 즐겁기만 하면 사회초년생에게 직장은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았겠지만, 직장상사의 하루하루 기분에 따라 내 기분까지 좌지우지되는 '나'라는 사람은 돌이켜 보니 '화합'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 상사의 기분에 적응하기 위해 나를 맞추는 그런 사람이었다.

"직장은 본래 다 그런 거야"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냐"

.

.

.

"아니! 지가 뭔데!"

"미친 거 아니야?!"

.

.

.

이렇게 말을 하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이 무기였던, 전공을 살려 들어가는 것 자체가 힘든 전공이고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었기에 나를 누르고 달다들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고 해서 그래서 다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는데,

누군가 그때의 나에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줬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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