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일도 업(業)이 되어 버리면 싫어지는 게 사람이라는데, 의기양양 호기롭게 회사 밖을 나올 때에는 이런 상상을 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아침을 기다렸다 즐겁게 일터를 향하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생계를유지하기위하여자신의적성과능력에따라일정한기간동안계속하여종사하는일'
직업에 대한 사전적 의미이다.
지난 스무 살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를 하고, 생계를 유지를 위한 수단을 직업으로 그렇게 잘 지내왔지만, 앞으로는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여 즐겁게 일하고 돈도 많이 벌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를 회사 밖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퇴사 후 "좋아하는 일이고 의미고 다 필요 없고 뭘 하든 내 힘으로 딱 만 원만 벌어보자"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지나게 된 반강제적인 환경적 변화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가 틀렸다.
나의 적성과 능력을 고려해야 할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에.
업무, 직장, 직업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온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은퇴나이 보장받는 공공기관에서 '퇴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여겨질 법한 달갑지 않은 주변의 시선도 두려웠기에.
모든 게 걸림돌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자발적 퇴사가 예고되어 있던 두 가지 사건 이후로 금수저로 태어난 재벌 2세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즐겁게 먹고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던 그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마흔의 사춘기'라고 명명하며 내적갈등이 시작되던 그때.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뭐지?'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까?
'내가 잘하는 일을 할까?'
매일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시점 처음 시작한 것이블로그였다.
호기심 많고 하고재비인 나에게 블로그는 빠져나올 수 없는 신세계였다.
어쩌면 무일푼으로 회사밖을 나와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블로그의 '무자본창업'이라는 키워드가 자꾸 유혹해 나를 끌어들였을지도 모른다.
정보성 블로그가 블로그로서의 의미가 있고 사람들을 모으고, 오랜 시간 공들여 정보성 글을 꾸준히 올려야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 같은데...
나는 정보글 쓰는 거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 키워드 분석하는 거 그런 거 못하고, 내 얘기하는 게 제일 편하고...
그래서 블로그에 발 담그고 1만 원, 3만 원, 5만 원 프로수강러가 되어 자꾸 결제버튼을 누르며 헛헛함을 채워나가며 인플루언서라는 단어와는 점점 멀어져 갔다.
하지만 돈 버는 방법을 한 가지만 알고 있었던 나는 그거 한 가지라도 어떻게 해보자며 또다시 그것을 하고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연재했고, 전자책으로 출간했고, 지금도 아주 가끔 누군가 크*에서 결제를 하고 내 전자책을 사주고 있다.
이렇게 나를 거스르며 전자책을 냈는데, 대단한 아웃풋이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됐다!
'나 그냥 안 할래' 몹쓸 생각의 고리가 몹쓸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블로그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크고 귀한 것을 얻었다.
'사람'
블로그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블로그 닉네임으로 연결된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
그들이 블로그 안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인연을 이어가며 알아가는 동안 나의 생각이 한 곳에 머무르지 않게 해 주었다.
블로그로 시작된 인연들과 만들어진 단톡방 안에서는 내가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 때마다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는 건지, 그러다 보면 금세 내가 고민하고 있던 일을 까먹기도 하고, 엄청 심각하게 고민하던 일을 입 밖으로 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별 일이 아닌 일로 여겨지기도 하면서 나 홀로 고민이 가벼워져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극내향적인 나에게 단톡방의 존재 자체가 힘든 일이었는데, 내가 적응해 가고 있는 게 희한했다.
스스로 변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건 아주 쉽다.
하지만 사람의 물리적 변화는 나약한 의지 따위로 힘들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자기 계발 서적이 무수히도 쏟아져 나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이 변하고 싶으면 환경을 바꾸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블로그를 시작했던 5년 전 방황을 시작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변함없는 건 식지 않는 열정이고, 변한 게 있다면 극내향인인 내가 외향인이 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다시 태어나야 가능할 것 같고,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다 구렁텅이로 빠지고 포기가 잦았던 나에게 포기대신 '문제가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추며 회복탄력성이 빨라졌다는 점이다.
이건 분명 긍정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받은 영향일 거라고 생각된다.
이전과 많이 달라진 나를 스스로도 느낀다.
한 번이 어렵지 블로그며, 사람들에게 내 얘기하는 게 편해지고 나니, 문제점이 생기면 남편에게 조차 잘 속내를 말하지 않던 내가 자꾸 조잘조잘 얘기하니 남편과의 사이도 좀 더 가까워지고, 이성적인 남편이 남의 편에서 얘기할 때면 랜선 친구들에게 조잘조잘 얘기하고, 입에 담지 못한 욕을 한 바가지 하고 싶은 날이면 '띵킹노트'에 쓰고... 그렇게 나는 이전보다 내 마음을 지켜내는 게 편안해졌다.
그렇게 틀밖으로 나오면서 좀 단단해진 건지 큰소리치는 모르는 아저씨를 보면 내가 잘했던 잘못했던 도망가기 바빴던 내가 불의에 반박하는 언성 높이는 억척 용기도 생겼다.
때로는 이런 내가 어색해 이불속으로 들어와 놀란 나를 진정시키며 '띵킹노트'를 꺼내들기도 했다.
내가 만든 이 노트의 이름이 '띵킹노트' 이지만, 잔감정이 오래가는 나에게, 생각의 정리가 필요할때, 욕한바가지 하며 울고싶을 때 여러가지 용도로 잘 쓰고 있다.
어색한 나를 대면할때면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좋아지고 있다'라며 의식적인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마흔사춘기의 시작도 블로그, 변화도 블로그, 그렇게 나는 지금처럼 쉬어가기를 반복하며 블로그에 나를 기록해가며 나로 성장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