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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안 Nov 21. 2019

팀장님, 그만두겠습니다. 영국 가서 취업하려구요.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나의 말해 못내 불편한 표정이 팀장님의 얼굴을 잠시 스쳤지만, 이내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회의실로 함께 향했다. 그날 그 순간이 9년이 더 지난 지금 까지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팀장님의 왠지 그날 따라 자연스럽지 않던 표정, 나의 긴장된 발걸음 그리고 복도를 울리는 발자욱 소리.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영국에 가서 취업하려구요."


나의 퇴사 사유였다. 나는 외국에 살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해외 여행 조차 관심 없었다. 유학 간 친구도 없었고, 대학 시절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친구들을 보고 나도 가고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내 자신을 외국이라는 대상과 격리 시키며 살았던 것 같다. 아마도 사치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외항사에서 스튜어디스로 근무하던 누나가 있었음에도, 일주일에 한번씩 걸려오는 누나의 전화를 받고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나는 한국 외의 나라에 관심이 없었다.


20대의 나는 상당히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내가 내키는대로 하기보다는 내가 정해놓은 목표에 맞는 삶을 사는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항상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향해 하나 둘 실천해 나가고, 작은 성취를 이루고, 또다른 목표를 세우는 것.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의 효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항상 현실적인 목표를 잡았기에 남들과 비교하여 대단한 성과를 낸적도,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달성한 기억도 없다. 적당한 대학을 진학하고, 적당한 회사에 입사하여 적당한 사람과 적당한 집에서 적당한 생활수준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 평범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 이것이 내가 상상하던 나의 삶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휴학하고 선배의 벤처 회사를 다닌 것, 대학 4년차에 갑자기 대학원을 진학한 것도 내가 대단한 꿈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 아닌, 평범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가기 위한 길이었을 뿐이다. 평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고교시절의 꿈이었던 대학 밴드 보컬에도 도전해보지 않은 나였다.


그런 내가 퇴사를, 그것도 해외에 취업해 보겠다며 퇴사를 했다니 내 주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황당한 사건이었다. 해외 여행도 한번 해보지 않았던 내가, 취업할 곳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해외에 나가서 개발자로 취업하겠다고 하니 다들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응원과 격려보다는 우려섞인 목소리와 만류가 대부분의 피드백이었다. 조금은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오랫동안 알고지낸 선배, 후배, 동료들의 우려섞인 목소리는 나의 결정이 흔들기에 충분했다.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어머니는 나의 황당한 결정에, 안그래도 마음이 여리신데 걱정으로 하루하루 보내셨을 것이다.


나의 이런 결정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덨던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해외에 나가기로 결정하게 된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물으셨고, 아버지의 반응이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계속 듣고만 계셨다. 그리고 어떠한 부정적인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나서야 격려와 응원을 해주셨다.


"그래 니가 결정한것 소신있게 밀고 나가라.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 해라."


내가 아버지였다면 나의 아들에게 저렇게 해 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별 훈계나 꾸지람을 하시지 않은 것 그 자체만으로 마음이 놓여서, 그 말 속에 꾹꾹 눌러담으셨을 말씀들은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걱정과 잔소리를 꾹꾹 누르셨을까.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취업도 되지않은 상태에서 멀정하게 다니고 있던 회사를 퇴사하고 무작정 영국으로 가겠다는 나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 준 사람은, 해외에 유학하고 온 친구도, 늘 자유롭고 멋져 보이던 우리 누나도, 항상 따듯하고 자상하신 우리 어머니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엄하고 고지식하고 나를 어린애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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