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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LEEW Jul 10. 2024

나는 오늘 퇴사를 결심했다

어느덧 9년 차 마케터의 오늘 하루


나는 마케터다.

정확하게는 한 기업의 마케팅팀 팀장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퇴사를 결심했다.


벌써 9년째 마케팅을 하고 있다. 전공을 하면서도 마케팅은 죽어도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은 참 우습다. 처음 시작은 먹고살기 위해서 였고, 그러다 어느날은 한낱 자존심 때문 이기도 했다. 지난 시간이 눈물 나게 힘겨웠던 이유는 매 순간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는지, 행복했지만 동시에 늘 불행했다.


마케터라는 직업은 나를 지독하게 불안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늘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매 순간 목이 말라야 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전투적으로 보낸 시간들로 아름다운 일상은 내 것이 아니었다. 친구와의 약속은 늘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고, 그래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친구라고는 업무가 끝나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마케터 혹은 어떤 광고인이 적어놓은 글들 뿐이었다. 그 들의 일상 속 이야기에 빠져 시간을 보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땐, 현실 속에 내 마음을, 내 고민의 깊이를, 매 순간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세상은 늘 사방에 목이 마른 사람들뿐이었다.


대표님은 늘 광고주의 돈에 목이 말랐고, 광고주 역시 늘 고객의 돈에 목이 말랐다. 상사는 늘 아이디어에 목이 말랐고, 후배들 역시 인정에 목이 타들어 갔다. 이곳은 이런 곳이었다. 모두가 갈증에 몸부림을 치는 곳.


직업을 내려놓아야 행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이 직업은 나라는 존재의 절반 이상이었다. 막상 내려놓기에는 그동안의 시간을 전부 잃는 것이었다. 그럴 자신은 없었다. 아니, 사실 결국엔 이 직업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다. 답이 있지만 찾지 못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이유였다.


마케터 로서의 마지막 직장이라고 다짐하고 입사했던 회사. 

대행사 가 아닌 나의 브랜드.

이 곳이라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벤처기업 이자 스타트업이다.

그리고 이 이름표를 7년째 달고 있는 초 장수 스타트업 기업이다. 나는 이 기업의 이름이 좋았고 기업의 취지가 좋았고 기업이 뿜어내는 생각이 좋았고 그리고 이곳에서 똘똘뭉쳐 회사의 이름을 사랑하는 직원들이 좋았다. 마케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 매력적인 회사가 또 있을까

결국 그 이름을 빛나게 하겠다는 내 목표는 뜨거웠다. 이 직업에 지쳤고 진절머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지막 브랜드로 걸어볼 만한 동기부여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도 찾지 못하면 그냥 이 직업에서 행복은 없는 단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이곳에 입사를 하며 결심한 것은 이곳이 내 마케터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라는 것이었고,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결국 내 마케터 인생을 내려놓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나는 오늘 퇴사를 결심했다모든 게 지쳤고 모든 의미가 라졌다.


나는 오늘부터 보내는 나의 하루들을 기록할 것이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일 지 모르는 마케터로서의 기록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시작이 되길 바라며,


오늘은 2020년 6월 15일 늦은 새벽, 이 곳에서 딱 16번째 월급을 받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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