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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awer Apr 04. 2020

오늘의 20대가 읽은 1920년 세 여성의 이야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고


출처: 창비 인스타 @changbi_insta


여성 중심 가족의 새로운 모습이 2020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벅찬 울림을 전해줄 것입니다.


여성 서사, 항상 기대하는 이야기 소재 중 하나인지라 서평단 모집을 신청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 속에서 ‘여성 중심 가족의 새로운 모습’은 2020년을 살고 있는 나로선 찾을 수 없었다.


여성의 이야기에서 ‘엄마’라는 단어는 빠질 수 없는 것일까? 처음에 책을 받고 떠올린 생각이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 = 엄마’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온 것일까. 한국과 하와이, 그 장소가 어디이든 그때가 언제든 간에 여성이 요구받는 이미지는 일관되어왔다.


바로, 엄마.

이 부분에서 작가님과 출판사에서 바랐던 ‘여성 중심의 새로운 모습’이라는 기대감을 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금이 |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창비 | 2020



내는 조선이 원수다. 힘없는 나라 때민에 남편도 잃고 자식도 잃은 기라. 포와는 조선이 아이니까네 지킬 나라도 없을 거 아이가. 거 가서는 오로지 느그  생각만 하면서 신랑캉 얼라  놓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그라. 그기 오직 내 소원이다.



여성 중심 가족의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2020년 지금 현재에도 존재하는 여성의 엄청난 희생으로 유지되어 굴러가는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역할이 더 많은 그런 삶 말이다.


이 책을 2020년의 내가 아닌 오히려 1920년의 내가 읽는다면 분명 대단한 여성 서사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오빠, 남동생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글보다는 바느질을 먼저 배우던 시절, 버들이는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홍주는 시집간 지 두 달 만에 남편을 죽였다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원래 골골거리던 남자였는데 ‘왜 내가 죄인 노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겄다’며 그 당시 봐오던 과부와는 전혀 다른 당차고 씩씩한 모습을 보였다.


1917년 어진 말의 소녀들은 누구보다 용감하게 먼 타국 하와이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나는 1년의 해외 어학연수만 가려해도 유학원을 끼고 책, 인터넷을 모두 뒤져 내가 살 곳, 교통, 학교 등등 꼼꼼히 확인했다. 그러고도 설렘 반 불안함 반에 비행기를 타러 가는 전날 밤에 뒤척이다 잠에 들었었다.


100년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더 나은 삶,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버들이는 조선에서 멀고 먼 하와이로 떠난다. 하지만 글을 배우고 싶어 하며 배움을 열망했던 어진 마을의 버들이는, 거친 타지 속에서 가정을 지키고 생존하느라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홍주 말이 맞았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불안해하는 마음이 나쁜 일을 불러올 수 있다. 버들은 더 강하고 의연해지자고 마음을 북돋웠다. 태완이 소식을 보내오면 당당하게, 잘 지낸다는 답장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지독한 가부장제라는 굴레 속에서도 버들, 홍주, 송화의 가정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들 스스로가 일구고 만든 그들의 삶이었다는 점이다. 30살이 넘게 차이 나던 남편, 거의 할아버지 뻘의 사진 신랑과의 결혼, 가정폭력, 독립운동으로 만삭의 아내를 두고 떠난 남편 등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버들, 홍주, 송화 세 명의 여성들이 서로를 기대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왔다. 치열했던 삶의 현장에서 여성들끼리 서로 보듬으며 결국 돈을 벌어 밥을 빌어먹고 먹이고, 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키우며 살아낸 진정한 현실 영웅인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힘이 되어주고 삶의 버팀목이 되었다. 세 가장이 그들의 가정을 연대하며 살아온 모습은 지금의 나에게도 벅찬 모습이었다. 혼자였다면 버들, 홍주, 송화 모두 버티지 못하지 않았을까.





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책 제목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엄마가 아닌 정말 용감한 여성들이라 적겠다. ‘엄마’라는 타이틀로 그들의 열심, 억척, 노력과 용기를 반감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라고 불리는 순간 그 모든 고생과 고난들을 이겨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곤 하니까.


 여성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을수록 책이 더 많이 팔릴수록 여성 작가님들의 글이 많아질 것이라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엄청난 몰입감과 장면이 그려지는 듯한 작가님의 필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종이 위 글자들은 누가 틀어놓은 것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조선에서의 버들이와 홍주가 이불을 둘러 덮고 키득대던 모습부터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도착해 사진으로만 보았던 남편들을 마주했을 때, 몇십 년이 지나 성년이 된 아이들과의 모습까지 말이다. 언제 책을 이만큼이나 읽었지? 하며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에 400쪽을 그 자리에서 읽었다.




엄마는 가난해서 팔려 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엄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몸을 불사 지르며 생을 살아내던 세 사람의 생(生)의 영화였다.





우리는 비를 피하지 않았다. 하와이에 산다면 이런 비쯤 아무렇지 않게 맞아야 한다.



책의 후반부, 진하게 이해되고 공감되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울컥 화가 치미는 부분도 등장하고 이해가 되었다가도 또 답답해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


하와이 바다의 파도가 부서질 것을 모르고 해안가의 파도로 오지 않듯, 그 세 명의 여성들은 몇 번이고 파도로 그들의 인생을 살았다. 그들의 파도가 나에게 감동이자 울림이었다. 이야기가 기대하던 방향으로 흘러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울림까지, 혹시 요즘 책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본 지 오래되어 한 번에 읽히는 소설을 찾고 있었다면 한 번쯤 이 책을 찾아보자.


앞으로 나오는 여성 서사의 이야기엔 엄마의 모습보다는 진짜 사람,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이 보이길 기대해본다.



#알로하나의엄마들 #창비사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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