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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summersea May 06. 2022

대학원생에게 커피란?

없어서는 안 될 존재.

  누구나 처음이라는 순간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첫 커피는 가을 찬 바람이 살짝 불던 어느 날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보다 4살 많은 언니와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찬 바람과 상반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처음 마셨을 때 나는 이 쓰고 맛없는 걸 언니가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한껏 찌푸린 나의 표정과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언니는 소리 내며 웃으며 따뜻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언제부터 그 쓴 아메리카노가 맛있어졌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분명 고등학교 때까지 커피 우유만 고집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아메리카노가 들어있는 잔은 늘 주변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처음 마신 커피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라서 그런지 나는 따뜻한 날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고집한다. 얼어 죽어도 아이스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수 있으나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한여름 실내 어디든 에어컨 바람이 너무 강해 조금만 자리에 앉아 있어도 쌀쌀해지고 결국 추워진다. 그때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면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맴돌아 쌀쌀한 기운은 없어지고 포근한 기운이 주변을 맴돌게 된다.      


  아침을 깨워주는 건 알람이 아니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알람 소리에 깬다. 하지만 연구실에 도착한 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온종일 몽롱하다. 집중도 안 되고, 눈꺼풀도 무겁고, 가끔은 머리도 띵~하게 아프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깨어나는 시각은 커피를 마실 때이다. 커피콩이 갈리는 소리 둔탁한 기계 소리와 그 소리와 상반되게 퍼지는 은은한 커피 향이 이제 일해야지~ 집 아니야~ 정신 차려~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나의 정신적 알림들이 다양해졌다. 아메리카노 한잔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요즘은 한 골목에도 카페가 과장을 많이 보태 한 집 건너 한집이다. 그래서 그런가 어느 순간부터 단순하게 주문했던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에 추가 질문이 생겼다. 고소한 맛을 갖는 원두와 신맛을 갖는 원두 중 선택하게 됐다. 또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카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드립 커피만을 전문적으로 내리는 카페도 생겨났다. 단순한 줄 알았던 아메리카노 한잔이 이렇게 복잡해졌지만 다양한 정신적 알람들이 생겼다는 것에 설레기도 하는 요즘이다.      


  대화를 열어주는 커피 한 잔. 나에게 커피는 아침을 깨워주는 존재임이 확실하지만, 대화를 열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평소 연구실 안에서는 연구에 관한 질문 이외에 다른 주제에 관해 말하는 시간이 적다. 게다가 나는 점심을 따로 먹기에 연구 이외의 딴 대화하는 시간을 생각해보면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 머신 앞에 있을 때이다. 그때 시시콜콜 연구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몇 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연구실 분위기가 잠깐 환기되는 느낌이 좋다. 그리고 가끔 연구실 내에서 말하기 힘든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커피 한 잔 마시러 갈까?”라는 말로 당장 해결책은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커피 한잔이 참 고맙다.      


  처음은 쓰고 맛없는 커피 한 잔이었지만 어느새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커피 한 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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