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둘째는 글을 읽을 줄 알지만, 아직도 한 번씩 동화책을 읽어주곤 한다. 글밥이 많은 책은 목이 아프니까 짧은 동화책을 같이 본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첫째도 옆에 스리슬쩍 앉아 같이 듣는다. 요즘 책을 읽어줄 때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인터렉티브' 모드다. 표지부터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처음부터 집중하지는 않는다. 책과는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한다. 그 와중에 최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어머, 얘 표정 좀 봐. 엄청 웃기다." "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건 벌레인가? 무슨 벌레지?" 등등
이 책은 화가 잔뜩 난 소피의 얼굴이 한가득 표지를 채우고 있었고, 내용도 화가 난 소피가 화를 식혀가는 내용이다.
1. 발을 쿵쿵 구르고 소리를 지르다가
2. 밖으로 뛰어나가 달리기를 하고
3. 아주 살짝 울고
4. 주위를 둘러보고 새소리를 듣고
5. 나무에 올라 멀리 바라보고
6. 행복한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우리 둘째는 화가 나면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여지없이 소피이다. 그림을 보며 "이거 누구 닮았네?" 하고 은근히 떠보니 둘째가 찔렸나 보다. 그림을 손으로 가리고 빨리 넘기려 한다. 자기의 모습을 직면하는 것은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쉽지 않다.
그림과 함께 천천히 글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그림의 두꺼운 외곽선의 색이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평화로운 언니의 외곽선은 초록이고, 소피는 노랑, 주황, 빨강 그리고 다시 노랑으로 돌아온다. 나무들은 초록이고 고양이의 외곽선은 보라색이다. 소피가 자기의 감정을 스스로 잘 달래고 풀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너희들은 화가 나면 어떻게 해?"
자기 얘기들은 안 하고 두 형제는 서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자질한다.
"얘는 소리를 질러요!"
"형은 울어요!"
"그럼, 화가 났을 때 소피처럼 해보는 건 어떨까?"
"여기는 밖에 달릴 곳이 없어요. 달리면 차랑 부딪힐 거예요."
"맞아요. 올라갈 나무도 없어요."
"그럼 화났을 때 기분이 풀어지는 너희들의 방법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은근슬쩍 힌트를 준다.
아이들 침대엔 커다란 인형이 하나씩 있다. 행복한 곰돌이, 행곰이이다.
"행곰이를 때리는 거야, 그리고 꼬옥 안아줘. 그러면 기분이 풀릴까?"
아이들은 신이 나서 인형에게 주먹질을 해댄다. 그리고 있는 힘껏 안아준다.
둘째가 유치원에서 배운 명상을 첨가한다.
"화날 때는 명상을 하는 게 좋대요."
그러고는 눈을 감고 손가락을 이상한 모양으로 들고 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화날 때는 명상이 좋지."
개구쟁이 첫째가 또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행곰이 손으로 행곰이 눈을 찔러요."
그러고는 둘이 깔깔깔 웃는다.
"그래, 마지막으로 그러면 엄청 웃음이 나오면서 기분이 좋아지겠다."
순서대로 둘이 번갈아 연습해 보았다.
화가 났을 때는,
1. 행곰이를 주먹으로 마구 때린다.
2. 행곰이를 있는 힘껏 안아준다.
3. 눈을 감고 명상을 잠시 한다. (100까지 세라고 했지만 10까지 세고 끝!)
4. 행곰이 손으로 행곰이 눈을 찌른다. (또 깔깔깔)
화가 날 때 할 행동을 연습하는 것치고는 너무 장난 가득 웃음 가득한 연습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화가 났을 때 효과적일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첫째는 자기감정을 어느 정도 다루기 시작했지만, 조금만 자기 마음에 거슬려도 씩씩대는 둘째가 잘 기억해주기를.
자기감정을 스스로 소화해 내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연습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제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성인이 되어도 인형에게 주먹질해대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자기감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화났을 때 해소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 화났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화를 내면서도 "나 화 안 났는데!!!!"를 외치는 어리석은 어른이 너무나 많다. '내 감정의 상태'를 아는 것은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건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