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불안을 겪는 두 남녀가 만나서
우스갯소리로 아내가 친정 가면 남편은 며칠 동안 뭘 하고 놀까 고민하고 매일 술약속을 잡으며 간만에 맞는 해방감에 들떠 있는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 가는 말이고 입장 바꿔 나라도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어딘가로 며칠 여행이라도 다녀온다면 싱글벙글 자꾸 헤 벌어지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며 걱정과 위안의 말을 어렵게 찾아 건널 것이다.
그것과는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이 이야기는.
안방에 딸린 욕실엔 샤워부스가 있고 나는 샤워하러 들어가며 칫솔에 치약을 짜 부스 안에 들어가서 샤워기 물을 틀고 온수가 덥혀지기까지 양치질을 먼저 한다. 그리고 칫솔은 그대로 샤워부스 안 샴푸선반에 내려놓고 나오기가 일쑤였다. 다음 양치질을 할 때 텅 빈 내 칫솔꽂이를 보고 그제야 불 꺼진 샤워부스 안에서 주섬주섬 칫솔을 꺼내오는 경우가 잦았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칫솔 쓰고 바로바로 제자리에 좀 갖다 놔."
깔끔쟁이이고 언제나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기를 바라는 남편이기에 제자리에서 벗어난 칫솔이 눈에 거슬렸나 싶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나의 예상과 달랐다.
"내 칫솔 하나만 있으면 나 혼자 사는 것 같잖아. 마누라 어디 도망갔나 깜짝 놀라."
결혼생활 십 년이 넘는 동안 가출은 커녕 혼자 여행도 가보지 않은 마누라인데 가기는 어딜 간다고.
남편은 외롭게 컸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육 남매를 키우시며 생활고에 시달렸고 여유롭지 않은 집에서 남편은 늘 외로웠다. 형제들이 많은 집이 다복한 것은 있는 집에서나 통하는 얘기지, 살림 척박한 집에서의 많은 형제들은 고민거리만 늘 뿐이었다. 서로 힘들 때 도와주기도 하고 우애도 깊은 형제들이지만, 그것은 없는 돈과 시간 속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간신히 짜낸 마음이었고 많은 시간 이 사람은 외로웠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혼자 있는 칫솔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 남자, 아직 마음이 덜 채워졌나 보다.
나도 외롭게 컸다. 여유로운 집이었지만 부모님이 많이 싸워 한탄과 눈물을 받아먹으며 컸다. 집은 따뜻했지만 내 마음은 항상 냉기가 돌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아버지와 헤어졌을 때 나는 버림받은 듯 느꼈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항상 이 집에 내가 언제까지나 쉴 수 있는 곳일까 의심스러웠다.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져도 불현듯 나는 이 집 소속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감이 덮쳐왔다. 그런데 남편의 넘치게 주는 마음에 나의 마음은 조금씩 채워졌고 이제는 내 집에서 나는 평온하다. 그이 덕이다.
혼자 있는 칫솔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나, 남편의 마음을 더 채워줘야겠다.
이제 샤워할 때 가지고 들어간 칫솔로 양치질을 끝내고 물 뚝뚝 떨어지는 팔을 쭈욱 내밀어 칫솔 먼저 칫솔 걸이에 꽂아 놓는다. 나란히 서로를 의지하는 우리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