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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라라 Apr 17. 2023

사춘기 육아일기

사춘기 아이의 친구.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 하지만 어려운 그것.

 초6 남자아이. 아들은 아직은 또래보다 작지만 넉넉한 뱃통에 푸짐한 엉덩이를 내보이며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올해야 겨우 허락해 준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있다.

"재밌어?"

물어보니 아이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요, 혼자 하니 재미없어요."

같이 게임을 하기로 하고 기다리던 절친이 일이 생겨 몇 시간째 게임에 접속을 하지 못했고, 아들은 핸드폰이 잠기는 밤 9시가 가까워오자 초조해 가며 혼자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미없으면 그만해."

다그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만하려고 했어요." 하면서 종료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울먹울먹거린다.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던 아들이다.


 6개월 전쯤 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아들은 절친을 떠나야만 했다. 가능한 한 오래 붙어 다니며, 떨어져 있어도 갓 만난 연인이 그러하듯 전화하고 톡 하고 일상을 공유하던 친구를 떠나야만 했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었다. 자차로 한 시간, 대중교통이 안 좋아 대중교통으로는 두 시간 반 남짓 걸리는 곳이다. 친구를 보고 싶어 해서 차로 태워 한 번, 같이 대중교통으로 두어 번 다녀왔다. 이윽고 혼자 대중교통을 타며 두 시간 반 거리를 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좋아하는 속옷과 양말, 겉옷을 며칠 전부터 챙겨놓았다. 필요한 옷이 빨래통에 있으면 빨리 세탁기를 돌리라 성화였다. 이 무슨 지극정성인지. 보고 있자면 기가 찼지만 그래, 또래 친구가 최고인 시기이니까, 애써 이해해 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쌍방이 아니라 일방통행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우리 부부의 눈에는 아들만 매번 그 먼 거리를 혼자 다니는 게 고까웠다. 짝사랑 같은 이 모습을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친구도 이쪽으로 놀러 오라고 해.', '중간쯤에서 만나자고 해봐.' 그러나 그쪽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건 충분히 이해 가는 결과였다.


그날은 아들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엄마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전에 비가 온다 해서 다른 날로 미룰까 몇 번을 고민했는데 마침 비는 적게 내리고 그치고, 오후에 황사가 심하다고 했는데 미세먼지 '나쁨' 정도로 멈췄다. 황금 같은 주말,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혼자 우유에 시리얼을 타 먹고 외출준비를 마치고서는 수시로 날씨를 보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9시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쯤 집에 돌아왔다.

다른 때는 친구를 만나러 가면 둘이서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며 놀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동네 다른 친구들과 모르는 형들이 껴서 같이 축구를 했단다. 실력차이가 월등해 아들은 재미없었다고 했다. 친구랑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고 싶었는데 친구가 게임용 폰을 잃어버려서 게임을 못했다고 했다. 원래 더 늦게까지 놀다 오려했는데 친구의 엄마가 일이 생겨 아이를 부르는 바람에 2시 30분까지밖에 못 놀았다고 했다.


종일 서운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갔을 아들. 커다란 설렘을 가득 안고 며칠 전부터 신나 있던 아들인데 친구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았음을, 아들은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에 몇 시간 동안 친구와 같이 게임하기를 기다리다가 혼자 게임을 하는 동안, 전과는 달리 재미없음을 느꼈고 종일 쌓인 서러움이 폭발한 것이다. 6학년 덩치 큰 남자아이가 엉엉 우는 동안 나는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들. 안쓰럽지만 스스로 이겨내야할 성장통이다.


"멀어지라는 게 아니야. 지금처럼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고, 평생 친구로 지낼 수도 있어. 하지만 걔도 거기서 친구가 있는 거고 너도 여기서 같이 놀고 마음도 나눌 친구가 필요해. 반 친구들에서 마음 맞는 친구가 있는지 찾아봐."


"여기 친구들은 무슨 게임해?"  뭐랑, 뭐요,

"그래, 그럼 그거 허락해 줄 테니까 어떤 게임인지 알아보고 알려줘."


눈물 뚝 그친 아들, 신나서 노트북을 켰다.


참, 단순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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