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히 심심했었나.
공모전을 뒤적뒤적거리다가 마감이 며칠 남지 않은 글짓기 대회를 발견했다. 들어보지 않은 작은 문예지였다. 등단의 감투보다 상금 몇십만 원에 혹해 예전에 써놓은 수필 몇 개를 조금 수정해 원고를 보냈다.
신기하게도, 발표일은 원고 접수 마감일 다음 날이었다. 투고하는 사람이 적은 곳인가 보다 했다. 그리고, 발표날 날아온 톡.
-등단과 관련하여 잠시 통화 가능하신지요?
예전에 몇 군데 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는데 이런 발표는 또 처음이네. 보통 발표 몇 시간 전 미리 문자로 '축하드립니다. xx 대회에서 xx 상 수상하셨습니다.' 식으로 연락이 오거나 홈페이지 발표 이후 연락 오던데 이런 애매한 접근은 뭐람. 극 내향 인간인 나는 통화 싫은데.
톡을 받아보고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한 시간여 지난 후 전화를 걸었다.
매너톤 장착한 저음의 자칭 시인이 전화를 받았다. 모모 씨가 수필 분야 당선예정인데 상반기 등단식이 있고 하반기 등단식이 있고...... 상반기는 늦었으니 하반기 등산식에 참석하시고...... 등단식 장소는 어디인데...... 등단하려면 글이 올라간 문예지 최소 30권을 사야 하는데 한 권에 만원이고...... 심사하시는 교수님은 어떤 분이신데...... 원고 심사평을 써주시는 게 20만 원이고......
어디까지 가나, 도대체 '등단'을 얼마 주고 사라는 건지 "네네" 하면서 끝까지 들어보았다. 지금까지 나온 게 50만 원인데. 자칭 시인 아저씨는 한참을 자기 할 말을 떠들더니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뜸을 들였다.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럼 등단을 하지 않으면 당선은 취소되는 거지요?"
"네, 등단이 의미가 있으니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럼 당선 취소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설득 한 마디 없이 너무나 쉽게 수긍하는 소리에 일면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한 번 더 설득 안 해??? 이 전화를 끊으면 다음 사람에게 당선되었다고 연락을 하고 또 '등단 장사'를 하겠구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매달 문예지를 발행하고 수십 명의 '등단작가'를 배출한다.
등단이 뭘까. 수도 없이 존재하는 작은 문예지들은 누가 보는 걸까. 서로 누구 작가님, 누구 시인님 불러주며 자신들끼리 돈 모아 책을 내고 자기들끼리 돌려 보고 지인한테 한 부씩 나눠주며 글쟁이 노릇 시작하는 게 등단인 걸까. 알맹이 없는 껍질뿐인 글을 쓰고 자신에게 취하는 게 작가인 걸까.
나는 미사여구가 많은 글을 경계한다. 먼저 읽기 불편하고 그다음 재미가 없다. 가식 쩔게 느껴진다. 내가 일기처럼 쓰는 글도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울림이 있는 글도 쓰고 싶다. 내가 대회에 투고하는 글들은 일기보다 좀 더 보편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글이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돌려보는 문예지, 그것을 통한 등단은 아무 의미 없다.
등단은 필요 없고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인기 글이 차라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