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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끌라라 Jun 07. 2023

경단녀 아줌마, 알바 시작하다.

사회와 단절되어 사는 게 나의 꿈이었는데.

십여 년을 살던 곳을 떠나 작년, 이곳으로 이사 왔다. 극내향형인 나는 혼밥도 잘하고 혼자 영화 보기도 좋아하고 뭐든 혼자 잘하는 외로움 안 타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한 곳에서 십 년을 넘게 사니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와중에도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나눠야 하는 동네 사람 모두가 아는 내가 되어버렸다. 특이한 점은 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사람들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은 나를 잘 기억해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다. 나는 얼결에 반갑게 "네, 안녕하세요.^^" 하고 마주 인사를 하고, 그 사람이 스쳐 지나가면 그때부터 어디서 본 사람인지 계속 고민을 하게 된다. 동네 문화센터 서예반에서 만난 할머니, 아이 학원 앞에서 봤던 아이친구 엄마, 심지어는 치과에서 마스크 쓴 모습만 봤던 치과 선생님까지!! 간신히 기억해 낸 모습들은 그러했고 끝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얼렁뚱땅 넘어간 기억이 더 많다.


아무 지인도 없는 곳으로 이사 왔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나는 매일매일 조금씩 나의 활동반경을 넓혀가며 이 골목 저 골목을 탐방하고 주변 식당들, 카페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나의 입맛에 맞는 곳을 조용히, 하지만 활발하게 찾아갔다. 누구도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지 않았고 단지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이웃에게 인사성 좋게 인사해 주는 이웃분들만 있을 뿐이었다.


6개월이 지나니 어느 정도 동네 탐방이 끝나고 여유가 생겼다. 몇만 원씩 오른 아이들 학원비와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두어 달 동안 알바자리를 탐색했다. 대중교통이 안 좋은 곳이기 때문에 첫 번째 조건은 집 앞일 것, 두 번째는 아이들 학원이 마무리되는 6시 전에 끝날 것. 드디어, 알맞은 자리가 났는데 영어학원이었다. 오후 4시간,  월-목까지. 대학교 때부터 영어과외를 했고, 짧지만 영어학원에서 가르치기도 했고, 두 아이 모두 내가 영어를 가르치는 중이었기에 용기를 내어 지원했다. 금요일에 쉰다는 것이 컸다. 결과는 덜컥 합격이었다.


시간과 조건 모두 괜찮았으나, 문제는 집 바로 앞 학원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 위치를 숨기고 싶었으나 내 핸드폰에 덜렁덜렁 달려있는 입주민 키를 보이는 순간 아이들에게 들켰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서 우리 반 아이들 두 명을 만났다. 아이 할머니와 인사하며, 할머니가 감사합니다 하고 연신 인사를 하시기에 나도 덩달아 꾸벅꾸벅 인사를 하였다. 마트에서는 옆반 아이를 만났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 중 우리 아들 학교 같은 반 친구도 있다.  아이는 우리 옆동에 살고 또 한 아이는 우리 앞앞동에 산다. 이 동네 학원은 여기밖에 없는 거니?


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날아가고, 이전 동네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돼버렸다. 더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다.


그림자처럼 다니고 싶었는데

내가 가는 곳마다 나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느낌이다.


이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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