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사람들을 성격이 '어떤 사람' 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특질을 강하게 보이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싶다. 살아오면서 환경과 기질에 의해 개발되고 많이 발달되어 있는 특질이 강하게 드러나고 패턴화되어 비교적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면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격' 이다.
결혼할 때, 그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그 특질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바라는, 내가 원하는, 나와 맞다고 생각되어지는, 내가 편안한 그 '특질' 과 결혼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 특질은 그 사람의 전체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런 사람이다.
이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다.
이런 게 좋았는데, 사람이 많이 변했다.
모두 어떤 특정의 특질을 그 사람 자체로 오인한데서 벌어지는 푸념들이다. 그 사람은 사람일 뿐, 어떠한 특질만을 강하게 당신이 집중해서 보아온 것 뿐이다.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다
사람은 안 변한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큰 위협이 없는 한, 현재의 특질과 생활방식을 유지하려 한다. 심지어 살아가는데 큰 위협이 있다해도, 지금 살아남아 있다면 현재의 방식을 고수하기 쉽다. 왜냐하면 다른 방식은 날 죽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인 반면, 현재의 방식은 적어도 날 살아있게 하기 때문이다. 보통 기존의 방식으로 더이상 살아나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낄 때, 이대로 가다간 곧 큰 일이 생기거나 못 살 것 같아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벼랑 끝에서 사람들은 도움을 구하러 심리 상담실을 찾곤 한다. 그리고 그 중에 거의 대부분은 자기가 현재 힘든 것에 대한 증거를 충분히 찾은 후, 마음이 편해지는 지점에서 찾아오는 변화의 기로에 서서 뒤돌아 기존의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선택은 언제나 가능하다.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어떤 특질을 가진 일부분의 그를 만났다. 그리고 그 점을 사랑했다. 결혼을 결심하는 사랑은, 보통 그 여자의 내면아이와 그 남자의 내면아이의 필요에 의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소녀는 자신의 편을 갈구했다. 힘들 때 안아주고 위로해주며 토닥여주는. 공격하는 사람이 있으면 막아서서 보호해주고, 귀엽고 예쁘다 사랑해주는 그런 나의 편이. 마치 어느 날 사라져버린 그녀의 오빠가 그랬듯이.
그 소년은 무엇을 갈구했었을까? 남의 속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짐작컨대 그의 안에 여린 소년은 아마도 영화 <국제시장> 에서 마지막에 울며 아버지에게 안기던 그 모습이 아닐까 짐작해본 적이 있다. 그 장면에서 감정이 너무도 한꺼번에 밀려왔는지 눈물을 제어하지 못하며 꺼이꺼이 소리도 못내고 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아마도 그는 자신의 그 힘든 어깨를 토닥여주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어줄 그런 여자가 필요했을까. 자신의 어머니처럼. 또는 누나처럼?
애초에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말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적인 특성, 또는 특질에 대해서밖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소녀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자신에게 가슴 깊이 진실할 수 있다면, 인정해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을.
우린 서로 깊이 사랑했다기 보다는,
서로 깊이 필요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그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역정냈다.
그 사람의 그 특질이, 앞으로의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행복안에서 더이상 마음고생 하지 않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 정확히는 사랑받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편 좀 들어줘.
나의 울타리가 되어줘.
나에게 든든하면서도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줄 것 같은, 매사에 안정적이고 꾸준한, 변화가 많지 않고 항상 비슷한 모습의 그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며 난 이제 안전하다 느꼈고, 이제서야 다시 내 편이 생겼음에 감사했다. 나는 그렇게 '내 편인 그'를 사랑했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그 특질만을 사랑했던 것일지도.
그리고, 결혼은 끊임없이 새로이 발견되는 나의 특질과 상대방의 특질을 참아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한 그 특질 자체라는 환상은 필연적으로 깨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그 환상에 대한 아쉬움으로 스스로에게 상대방에게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실망이야. 니가 그런 줄 몰랐어.
이런 말을 서로에게 쏟으며 실망과 서운함과 당황함에 어쩔 줄 몰라하기를 반복하며 문득 깨닫게 된다. 이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함을. 그리고 지금 서로 사랑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것인지를 결심하는 문제만이 남아있다는 것을.
어쩌면, 사랑은 결혼 후 한참 후에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소녀의 필요를 잠시 내려놓고, 그 소년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노라고 마음먹는 그 순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