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고 Apr 21. 2024

어려운 일과 힘든 일

   호링이는 앱 개발을 하는 교내 전공 동아리의 리더를 맡고 있다. 최근 학교 근황을 이야기할 때면 팀원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의 지도를 받다가, 2학년이 되니 책임이 늘고 마무리 기간이 다가와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는 듯하다. 호링이 말로는 동아리 구성원이 어려움을 겪으면 A를 찾고, 힘든 일이 있으면 자신을 찾는다고 하였다. 어려움과 힘듦의 차이가 궁금해진 나는 호링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들이 작업하다가 기술적으로 해결이 안 되거나, 기간이 밀리거나, 인력이 부족하거나 그런 문제가 생기면 A한테 가요. 프로젝트 매니저니까. 힘든 일은 주로 인간관계죠. 무슨 사정이 있거나, 과제하다가 다른 사람 때문에 마음이 힘들거나 하면 내가 들어줄 수 있다고 얘기하는 편이에요」

「동아리원들이 겪는 일은 어려운 일이 많아 힘든 일이 많아?」

「대부분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거는 해결이 가능해요. 조금 더 시간을 쓰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A가 그런 부분을 잘 도와줘요. 자기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어도 같이 찾아보면서 해결하더라고요」

「프로젝트 매니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구나. 그럼 힘든 일은? 만일 어떤 사람이 힘든 일이 있다고 찾아오면 너는 어떻게 대해줘?」

「일단은 공감해 주는 ‘척’을 하죠. 사실 공감은 잘 안 돼요. 근데 전 잘 들어줄 수 있거든요. 힘들어하는 사람이 ‘저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말해서 상처받았어요’라고 나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하다 보면 혹시 상대의 의도가 꼭 그런 뜻이 아니었나?라고, 다시 생각하기도 하더라고요. 얘기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지. 상대의 입장이 되어본다고 할까? 조금 더 이해하고 나면 그 사람이 엄청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마음 상한 게 어느 정도 풀리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이지만 또래 간 협업이 많은 교육환경이라 그런지 호링이의 사회생활이 상상한 것보다 복잡하게 들렸다. 

「보니까 사람들이 저를 찾아올 때는 이미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가 돼서 오더라고요. 자기는 이 동아리에서 별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동아리를 바꿔야겠다고 단정 짓고 와요. 그러면 저는 바꿀 때 바꾸더라도 그 사람이 우리 동아리에 필요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얘기해 줘요. 한 친구는 프로그래밍에 관여한 바는 적었지만, 교내에서 우리 동아리를 알리는 데 이바지했거든요. 그런 노력이 있었으니까 좋은 사람들이 우리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하고 그런 거거든. 고충을 말하러 찾아온 걸 계기로,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동안 네가 중요한 임무를 해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꽤 진지한 대화가 오갔네. 동아리 리더가 회사로 치면 인사담당자도 하는 거네?」

「그런가? 그 사람이 없다고 프로젝트를 못 하냐? 그런 건 아닌데요. 큰 틀에서 보면 필요한 사람이고, 또 지금까지 같이 했는데 하차하는 걸 다시 생각해 보라고 동아리 부장으로서 그 사람을 잡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호링이는 주말마다 집에 와서 한 주는 프로그래밍 때문에 바쁘다, 한 주는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이견 조율하느라고 바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게 그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호링이가 예시로 든 어려움과 힘듦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갔다. 호링이의 설명을 들으며 열 명 남짓한 청소년 동아리의 다이내믹이 어른의 세계와 닮아서 놀라면서도, 아들이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인생 공부를 하는 것이 값지다고 생각했다.     


Photo Credit: https://www.pexels.com/ko-kr/photo/1181271/

작가의 이전글 일요일은 푹 자야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