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A의 전화를 받았다.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던 그녀가 고등학교 동창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많은 사람이 활동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쉽게 피로를 느끼기에 ‘너도 초대해 줄까?’라고 물어보면 거절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A가 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의 모교는 매년 개교기념일 행사에 몇몇 졸업생에게 상장을 수여한다. 최근 동창회장 B가 자랑스러운 동문상 후보 명단을 학교에 넘겨야 하니 적절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한데 A가 나를 추천했다면서 회장한테서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나를 추천했다고? 왜? 나 상 받기 싫은데」
「너를 추천하자마자 대화창에 지지하는 댓글이 쭉 달렸어. 다들 좋은 의견이라고 하던걸. 너 박사학위도 있고, 책도 냈고, 많은 일을 했잖아」
「아, 몰라, 난 안돼. 나보다도 네가 받지, 그러니?」
「난 몇 년 전에 받았지. 그 해에 C랑 D도 같이 받았어」
「그랬구나. 암튼 난 노 땡큐야. 난 상 받는 거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동문에게 주는 상이라는데, 내가 무슨 소속이나 타이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좀 곤란하다, 친구야」
「어휴 야, 그러지 말고 한번 생각해 봐. 웬만한 사람은 다 받았단 말이야. 이제 받을 사람이 없나 봐」
줄 사람이 없어서 나한테까지 순번이 왔단 말인가 싶어서 웃음이 났지만, 꾹 참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회장이 애쓰는 걸 생각하면 수락하는 게 도움이 될 텐데, 그러질 못해서 미안하다. 그 상은 사회적 지위와 명망 있는 사람이 받는 거잖아. 10대 후배에게 자극과 영감을 주라고 만든 상인데, 내가 그런 역할은 안 되는 것 같아」
친구와 통화를 마치고 ‘너는 너의 어떤 점이 자랑스럽니?’하고 물어보았다. 이만하면 참 잘했다고 스스로 인정해 줄 부분이 있을 터였다. 지금까지 경험한 여러 직업과 역할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내가 해본 일(?) 가운데 가장 힘들고 보람 있는 임무는 엄마 되기였다. 내 인생의 최대 업적은 두 자녀가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 우리 부부와 자녀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점이다.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현모양처라는 표현은 구시대적이라고 일갈하던 내가 이런 고백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개교기념일 행사에 참석 중인 나를 상상해 보았다. 사회를 맡은 선생님이 연단에 오른 선배를 소개하며 자녀를 잘 키우고 화목한 가정을 꾸렸기에 상장을 수여한다고 하면 ‘도대체 왜, 그런 일로 상을 받는단 말인가?’ 하고 귀를 의심했을 거다. 나는 엄마 역할보다 사회적 직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녀였다가 그런 생각을 고수하는 청년이 되었고, 후에 엄마가 되어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했다. 파트타임 직장인으로 생활한 적은 있지만, 파트타임 엄마인 적은 없다. 한번 엄마가 된 이상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계기로 40대 중반의 내 삶을 들여다본다. 업무적 성과가 주는 만족도 컸지만 좋은 가족 관계가 주는 만족이 더 크다는 게 놀라웠다. 이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좀 일찍 알았다면 덜 아등바등 살았을까? 엄마로 사는 것은 나와 다른 인격체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존중하며 인간의 가능성을 믿게 만드는 멋진 경험이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자 성장 동력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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