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 날, 은호 학교에 갔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더니 기숙사 근처 주차장이 만석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차를 두고 아이들이 나오는 길목에 서 있었다. 책가방, 트렁크, 타폴린 가방, 에코백, 바구니 등 각종 수납 용기에 짐을 실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건물을 빠져나왔다. 부모님을 만난 아이들은 짐을 싣고 금방 학교를 떠났고, 택시를 부른 학생들은 여러 대 중 본인이 예약한 차가 맞는지 확인하고 올라탔다.
아들을 기다리는 동안 흥미로운 광경을 보았다. 바로 옆구리에 큰 봉제 인형을 끼고 나오는 학생들이었다. ‘요즘 고등학생은 애착 인형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희한하게 전부 똑같은 초대형 카카오프렌즈 캐릭터였다. 사람들이 얼추 빠져나온 것 같아서 현관 쪽을 쳐다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은호였다.
「엄마, 나 짐은 다 쌌거든. 근데 3학년 선배들이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요. 시간 좀 걸려. 다 끝나면 내려갈게.」
아들에게 차로 오라고 말하고 자리를 옮겼다. 짐을 들어주려고 숙소 앞에 있었지만, 엄마가 땡볕에서 자기를 기다리는 것보단 차에 있는 게 은호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십여 분 후에 만난 아들은 생각보다 짐이 많지 않았다. 부피가 큰 물건은 기숙사에 두고 와도 된다고 했다.
「사진 잘 찍었어?」
「네, 개학하면 선배들을 못 보는 거잖아요. 친한 선배들이랑 한 명씩 찍다 보니까 시간이 좀 걸렸어요. 먼저 같이 사진 찍자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아들이 다니는 마이스터고등학교는 3학년 2학기에 기업에서 인턴 경험을 하는 제도가 있다. 그 기간에는 학생들이 각자의 일터에 있기에 학교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은호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 체육관, 급식실, 동아리에서 마주치던 한 학년 위의 선배를 볼 기회가 사라지는 거다.
「엄마, 1학년일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조금 알겠어. 지금 3학년 선배들이 겪는 게, 내년에 내가 겪을 거잖아? 인턴십 구하고 취업하고 그러는 거, 정말 대단하고 엄청난 거야. 내년 이맘때 내가 학교를 떠난다는 게, 이상해. 그때는 나도 꼭 취업했으면 좋겠는데」
아들은 요즘 학교 분위기를 설명해 주었다. 인턴을 하다가 정식으로 입사하는 경우도 많기에 모두가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 3학년 중 약 70%가 인턴 기회를 찾았다고 하였다. 아직 정해진 데가 없어서 어깨가 축 처진 선배들 보니까 마음이 좋지 않다고도 하였다.
「근데 또 모르지. 채용 시기가 맞지 않아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더 좋은 데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또 좀 지나면 인턴십 나갔다가 생각한 거랑 달라서 학교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대. 3학년 2학기는 그야말로 이렇게 저렇게 테스트해 보는 거라네」
학교를 빠져나오는데 트렁크 위에 라이언 인형을 올리고 가는 사람을 한 명 더 발견했다.
「은호야, 저 인형 들고 가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공동구매라도 한 거야?」
「저거? 학교에서 선물 준 거야. 취업, 아니 인턴십 나가는 사람들한테. 사무실 의자에 놓고 쓰는 쿠션이래. 저거 못 받은 3학년은 아직 인턴십 못 찾은 거야. 좀 슬프지?」
조금 전까지 V자를 그리며 아들과 사진 찍던 학생들이 다음 달부터 회사에서 개발자로 근무한다니, 그게 일 년 뒤 은호 모습이라니, 벌써부터 내 마음이 울렁거린다. 아들이 그런 준비가 되었을까? 나는 아들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을까?
인형을 둘러메고 학교를 떠나는 3학년을 보면서 곧 근무지로 이사할 사람들에게 짐스러운 물건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사회 초년생에게 의자 뒤에서 버티고 있는 부드럽고 동글동글한 인형은 큰 응원이 될 것이다. 매년 제자들의 성장을 지켜본 베테랑 선생님이 고른 더없이 적절한 선물이다.
Photo Credit: Image by Zhong Peng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