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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Jul 21. 2024

너 행사부였어?

은호 학교에서 열리는 축제에 다녀왔다. 작년에는 학부모 참관이 안되는 줄 알고 가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관람한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올해는 미리 수소문하여, 오전에는 학부모들이 운영하는 음식 부스에서 봉사하고, 이어서 공연을 보기로 했다.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인 만큼 부모님도 울산, 수원, 평택, 천안, 제주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왔다. 먼 거리를 되돌아가야 하는 봉사자는 오전 활동을 마치고 귀가했고, 집이 가까운 나는 공연이 열리는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이날 은호는 밴드부 드럼 연주자로 무대를 열고, 3학년 선배와 공동 사회자로 행사 진행을 맡았다. 늘 학교 일에 적극적이고 축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가보니 연주할 때 입을 옷과 진행할 때 입을 옷을 따로 준비하는 등, 핵심 인물이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드럼을 쳤다. 어릴 때는 방과 후 공개 수업이 있어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종종 보았는데, 중학교 때는 합주 소식만 전해 듣고 볼 기회가 드물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더욱 그랬다.


 지난해 이미 형의 키를 앞질렀으니 성인의 체구를 갖추었다고 봐야 할 테고, ‘드럼 스틱 부러져서 주문했어용’이란 카톡과 함께 쿠팡 결제 이메일이 날아든 적이 몇 번 있으니 힘이 세졌음은 익히 알고 있었다. 거기다 축제 연습 영상이라며 최근에 보내준 파일이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학교 음악실에서 찍은 모습이었는데, 리듬에 맞추어 머리를 흔들며 파워풀하게 손과 발을 움직이는 사람이 은호가 맞나 싶었다. 축제에서 밴드부 공연을 관람하는 일은 아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지켜보는 일이 될 것이었다.


공연은 멋있었고, 음악도 좋았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던 아들 모습을 발견하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관람객이자 학부모였기에 즐기는데만 몰두할 수 없었던 것이다. 행사를 시작하기 직전 한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행사부원을 소집했다. 십여 명의 부원을 일렬로 세우더니 축제를 기획하느라 애쓴 학생들에게 큰 격려를 보내달라고 했다. 강당에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 사이로 앞에 서 있는 은호 얼굴이 보였다. ‘엇, 잠시만, 얘가 언제부터 행사부였지?’


 작년 말 이맘때,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며 고민하던 아들이 나에게 상담을 청했다. 고등학교 첫 학기 학업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힘들어하는 은호에게 공부가 안정될 때까지 시간 소모가 많은 밴드부 활동을 잠정 중단하라고 권유했고(그런다고 했다), 아직 하고 있진 않지만 새롭게 가입할 거라는 행사부는 시작을 말라고 했다(알았다고 했다). 이 내용은 아래의 링크에 있다.  https://brunch.co.kr/@bango/56      


오늘 보니 논의한 것과 달리 아들은 밴드부를 계속했고, 행사부에 가입한 모양이었다.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대의상으로 록 가수들이 입을 법한 센 무늬 티셔츠에 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었다. 마음에 부담을 느꼈는지 공연장에서 마주친 나에게 티셔츠 가운데를 가리키며 십자가가 거꾸로 있다고 말했다. 콕 집어서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무늬를 유심히 보았더니 조그맣게 사탄숭배자라는 단어도 있었다. 짐작해 보건대 이런 의식의 흐름이 아니었을까.

‘공연할 때 입을 옷으로 샀는데, 하필, 십자가가 거꾸로 그려져 있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좀 그렇구먼. 지금 바꿀 수도 없고 뭐 어쩌겠어? 이건 잠시 입는 옷일 뿐, 평소 나의 모습을 반영하는 건 아니야. 근데 엄마가 축제에 오면 이걸 볼텐데. 한 소리 듣기 전에 먼저 말하는 게 낫겠다.’


 다음 날 집에 온 은호는 목이 쉬어있었다. 축제 준비하느라 애썼다고 격려를 한 후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은호야 너 학교에서 밴드부, 행사부 말고 또 하는 거 있던가?」

「어, 그럼. 엄마 다 알지 않아?」

「그랬나? 뭐 뭐 하는데?」

수박을 먹고 있던 은호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배구부, 전공동아리, 학생회」

「거기서 네 역할은 구체적으로 뭐야?」

「배구부에선 주장이고, 전공동아리에서는 팀장이고, 학생회에서는 자치회장」

「다른 친구들도 다들 그 정도는 하는 거야? 아니면 네가 좀 많이 하는 편이야?」

「당연히 내가 많이 하는 편이지. 근데 할 사람이 없어.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진짜 없어」

아들의 변은 이랬다. 학교가 워낙 작고 학생들이 전공에만 관심이 있어서 학교 일을 두루두루 할 사람이 없으니 소수의 인원이 계속하게 된다. 이번 축제때도 무대에 설 사람, 기획할 사람 찾는 게 정말 귀했다. 그나마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성공적으로 잘 된거다. 본인이 일을 많이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사람들이 손뼉 치고 웃고 참여만 해줘도 너무 감사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았다.

‘자신의 몫을 먼저 챙기고 공동의 일을 챙기는 게 어떻겠니? 남들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너는 왜 이렇게까지 나서야 하니?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어떻겠니? 작년에 학업에 집중하고 싶다며 몇몇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한 후에 엄마한테 알리지 않고 계속 참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등등’      


나도 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무조건 따르면 부모보다 나아질 수 없다. 축제를 보면 은호에게는 행사부, 밴드부가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나에게 이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다시 번복한 것이었을지라도 본인에게 필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린 것은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숨기지 말고, 들킬까 봐 불안해하지 말고 적절한 때에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왜 해보고 싶은지 말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엄마, 내가 학교에서 맡은 임무가 좀 많긴 하죠? 바쁜 만큼 시간을 효율적으로 잘 쓰고, 친구들하고 활동하면서 좋은 에너지 받아서 재미있게 학교 생활 할게요.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이다.

무대에서 종횡무진하는 은호를 보며 나는 아들과 쿨하게 잘지낸다고 믿으면서 실은 아이를 기다려주기보다 엄하게 통제하는 부모였느냐라고 생각했다.          


Photo Credit: Image by Nino Souz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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