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
호링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기숙사 입구에서 만난 아들은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왼손에는 노트북을 오른손에는 포장 음료를 들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며 호링이 말했다.
「오늘 밴드부 회식 있어서 공차 주문했어요」
「활동이 없는데 웬 회식이야? 1학기 축제 때 연주한 게 마지막 아니었나?」
「맞아요. 그때 공연하고 여태껏 모이질 못하다가 오늘 한 거야」
7월에 열린 행사 뒤풀이를 11월에 한다니 의아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며칠 후 호링의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밴드부 버스킹 공연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에는 교내 행사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호링이 보였다. 날짜를 보니 음료수를 받아 오던 날과 같은 주였다. 공연을 마치고 단합대회 겸 회식이 있던 거다.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호링이 밴드부 그만둔 거 아니었나?’
호링은 고등학교 첫 학기에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전공 동아리, 학년별 프로젝트, 밴드부, 체육 동아리 등 너무 많은 활동을 했다. 다음 학기에는 일을 줄이겠다면서도 무엇을 그만두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호링에게 나는 밴드부를 추천했다. 밴드 활동은 연습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 데다가 드럼 연주자가 부족해서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합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호링은 한동안 망설였지만 1학기 성적표를 앞에 두고 결단을 내린 듯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밴드부 사진을 본 것이다. 그사이에 변화가 있긴 했다. 호링이는 2학기 중간고사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래서 공부에 집중하려고 내려놓았던 밴드 활동을 다시 하게 된 것인지, 버스킹이라 긴 연습 없이 즉흥 합주처럼 무대에 섰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애초에 나에게는 중단한다고 말해놓고 밴드 탈퇴를 보류했을 가능성도 있다.
‘호링아, 너 밴드 다시 해? 학교 홈페이지에 사진 있던데.’라고 말할까, 모른 척하고 넘어갈까, 답을 찾지 못하고 금요일을 맞았다. 마침 하교하는 호링의 짐 속에 드럼 스틱이 삐죽 나와 있었다. 지난 학기에 밴드부 용품이 낡았다며 집에 있던 걸 가져갔는데 다시 챙겨 온 것이다. ‘스틱 챙겨 왔네?’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았지만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호링이 먼저 말해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기숙사에 사는 호링은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를 자신이 정해야 한다. 학교생활을 매번 나와 상의할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된다. 아들은 지난 학기에 원하는 활동에 다 참여하고 불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었다면, 2학기에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잘 배분하여 성적 관리에 진전이 있었다. 첫 학기는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느라 좌충우돌했다고, 삶에서 꼭 알아야 할 균형 찾기를 배운 거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말 동안 밴드부 근황이 묻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부모가 자녀에게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도록 기다리는 일은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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