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고 Nov 10. 2023

살림남의 조건

 

오랜만에 돌돌이를 만났는데 입술 한쪽에 물집이 있었다. 시험 기간에 면역력이 떨어져 구순포진이 생겼다고 했다.

「잘 먹어야지, 과일도 좀 사 먹고 그래」

「저, 잘 챙겨 먹어요. 기숙사에 과일 유행시킨 사람이 누군데」

「누군데?」

「지난번에 엄마 카드로 쿠팡에서 귤 한 상자 샀잖아. 룸메이트들이랑 손톱 밑이 노랗게 될 때까지 까먹었어. 3일 만에 다 먹었나 그래」

「잘했네. 귤이 까먹기 편하고 보관도 쉽지」

「그다음에 OO형 어머니가 샤인머스캣 보내주셔서 맛있게 먹었어. 돌아가면서 한 번씩 과일 사기로 했어」

「좋은 생각이네」

「OO형이 포도를 씻어서 담을 그릇이 없다고 해서 내 접시를 줬지. 우리 방에서 살림 좀 하는 사람 하면 나거든」

「네가 왜?」

「일단 나는 과도가 있잖아. 저번에 누가 감을 얻어왔는데 다들 어떻게 먹냐고 그러기에 내가 깎았지. 룸메이트들이 감탄하던걸. 과일 한 번도 깎아본 적 없는 사람도 있었어」

돌돌이 방에는 수도 시설이 없어서 공동 주방을 이용한다. 학기 초에는 직접 조리를 해 볼까 하더니, 식재료 보관이 어렵고 요리 시간이 많이 든다며 점차 하지 않게 되었다. 아들 말로는 기숙사에서 음식 만들어 먹는 사람은 대부분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은 무슨 음식을 해 먹어?」

「그게 다 달라. 내가 본 거는 세 부류인데, 자주 해 먹는 사람은 유학생들이야. 그 나라 고유 음식을 요리해. 한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종교적인 이유도 있겠고. 아무래도 사 먹으면 비싸잖아」

「그렇지」

「두 번째 경우는 나랑 같이 자전거 타는 친구인데, 과일을 갈아먹어. 얘는 구내식당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대. 그래서 냉동 과일을 사서 공용 냉장고에 쟁여두고 블렌더로 셰이크를 만들어. 같이 라이딩하고 온 날 친구가 해줘서 먹어봤는데, 괜찮더라고. 근데 과일 사야지, 블렌더 닦아야지 보통 일은 아니야. 친구가 도구 챙겨서 주방에 가는 거 보면 리스펙트」

「대단하네. 참 좋은 습관이긴 하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손쉽게 하는 거는 라면. 저번에 친구 부모님이 파김치 한 통을 보내주셔서 기숙사에 있는 사람들끼리 끓여 먹었거든. 진짜 최고였어. 파김치랑 라면이 그렇게 꿀 조합인지 몰랐어」

신입생이 된 첫 학기, 돌돌이가 챙겨간 주방용품은 머그잔, 물병, 숟갈 젓갈 한 세트, 과도, 납작한 접시, 국그릇, 미니 도마, 작은 냄비였다. 가을학기 짐을 쌀 때는 시리얼용 국그릇 하나만 가지고 간다고 하더니, 혹시 모른다며 과도와 접시는 챙기고 냄비와 도마는 두고 갔다. 돌돌이 짐을 보며 진짜 최소한으로 가져간다고 생각했는데, 네 명의 집기를 합쳐도 과일 그릇이 귀할 정도이니 기숙사 생활이 얼마나 단출할지 상상이 갔다.

먹기 편한 신선 식품에 관심이 많은 돌돌이가 최근 먹어보고 놀라워 한 채소가 있다. 스테비아 방울토마토였다.   

「오,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다음번에 이거 주문해야겠다」

나는 음식에 관심을 갖는 것이 살림의 시작이라며 돌돌이가 기숙사 살림남이 맞다고 수긍해주었다.


Photo Credit: https://www.pexels.com/ko-kr/photo/7123601/

작가의 이전글 새는 바가지 고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