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고 Nov 03. 2023

새는 바가지 고치기

호링이가 배구부 뒷정리를 잘 못 해서 꾸중 들었다고 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체육관 이용 금지, 억울함보다 다른 말이 남았다. ‘불을 안 꺼서’였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예견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의 엄마였다.

「호링이는 다 좋은데 불을 안 꺼. 할머니가 너희 집에 하룻밤 자면서 화장실 불 켜져 있는 것을 여러 번 봤어. 에너지 절약이 얼마나 중요한 습관인데. 밖에서도 이러면 사람들이 가정교육 제대로 못 받았다고 흉본다」

호링은 전원 끄기를 잊을 때가 많았다. 늦은 밤, 방 불을 환하게 켜고 잠든 것은 애교로 치더라도, 화장실 전등 안 끄기, 저녁 먹으러 거실에 나오면서 방에 선풍기를 틀어 놓기가 다반사였다. 당사자가 집에 있을 때는 “호링, 불!”하고 큐 사인을 주면 “아, 맞다!”라며 실행에 옮긴다. 호링이가 외출했을 때는 낭비 현장을 발견한 사람이 끄는데, 상황이 종료된 모습을 봐서인지 호링이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기숙사로 떠나기 전에 에너지 절약이 몸에 배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하다가 호링이의 습관 중 마음에 걸리는 게 떠올랐다. 호링이는 차 문을 세게 닫는다. 일요일 저녁 학교 기숙사에 도착하면 “저 갈게요” 하며 내린다. 책가방을 메고, 왼손에는 노트북을 든 채로 문을 힘껏 닫아서 차에 있던 사람들이 움찔 놀란다.

「호링, 살살 닫아줘. 문짝 떨어져」

「엇, 미안. 자꾸 까먹어」

하고는 트렁크에서 짐을 꺼낸 후 또 꽝! 닫는다.

어미 게가 아기 게한테 “옆으로 걷지 말고 앞으로 걸어야지” 한다는데, 내가 실천하지 못하는 문살짝을 호링이가 배웠다는 게 씁쓸하다. 나는 어릴 때 달리던 승용차 문이 열려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때문에 차에 타면 꼭 문을 잠그고 차에서 내릴 때는 꽉 닫았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냈는데, 어느 날 시아버지를 모시고 운전하다가 문 쾅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의 하차를 도우려고 서둘러서 차에서 내렸다. 운전석 문을 닫고 반 바퀴 돌아 뒷좌석 문을 열었는데, 시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차 문을 살살 닫아야지. 그렇게 세게 닫으면 차가 고장 나. 요즘 차는 다 잘 만들어서 세게 닫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그때는 민망했는데, 지나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나아졌지만, 지금도 살살 닫는 축은 아니다.

요즘은 움직임 감지 센서가 많이 보급되어 전기 설비를 바꾸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자동차는 버튼을 누르면 트렁크가 내려오는 기능이 있어 문을 쾅 닫을 일이 없다. 기술을 사용할 때 하더라도 호링이가 ‘지구가 더 뜨겁지 않게 나부터 절약해야지’라는 주인의식을 가지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으니 차 문을 살살 닫아야지’라는 배려심을 가지면 좋겠다. 기숙사에 사는 호링은 집보다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집에 있을 때 바가지가 새지 않게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하고 안타까워하다가, 이제 다른 사람이 바가지를 메꿔줄 수 있음을 떠올렸다. 학교에는 학생이 잘못했을 때 꾸지람하는 선생님과 부장 때문에 배구 못 하게 되었다고 푸념하는 친구가 있다. 자의든 타의든 호링이가 나쁜 습관을 고쳐가고 좋은 습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학창 시절을 보냈으면 좋겠다. 한번 바가지가 샜다고 계속 그러란 법은 없다.  


Photo Credit:  https://www.pexels.com/ko-kr/photo/8419167/ 

작가의 이전글 우울해서 빵 샀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