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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Oct 31. 2023

우울해서 빵 샀어

중간고사를 마친 돌돌이가 집에 왔다. 얼마 전 퇴원한 반려견이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돌돌이는 강아지와 격한 인사를 하고 뽀짝 뽀작 타임을 갖더니 가족들에게 유행어를 소개했다.

「나, 어제 우울해서 빵 샀어」

「잘했네」

「오, 엄마. 그 정도면 괜찮네」

「아빠, 어제 우울해서 빵 샀어요.」

「우울한데 왜 빵을 사?」

「역시, 아빠는 예상했던 대로야」

「이거 무슨 심리테스트야?」

「맞아. 어제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말했을 때 상대의 반응을 보고 MBTI 유형을 맞추는 거야」

집밥을 먹고, 방에서 뒹굴뒹굴하고, 호링이와 수다를 떨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별일 없는 일상을 보냈는데, 주말이 끝났다. 돌돌이는 대전역에서 튀김소보로를 산다고 했다. 나는 아들을 배웅하고 빵집에 들를 겸 해서 기차역으로 갔다. 차 안에서 돌돌이가 말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저는 대전에서 왔어요, 그러면 오오, 성심당! 이런다」

「그렇구나. 성심당 빵 좋아한대?」

「대부분 들어는 봤는데 먹어보지 못했더라고. 다음에 사 간다고 했어」

「그게 오늘이구나. 지난번에도 한 번 사 가지 않았어? 반응 괜찮았어?」

「어, 1학기 때. 입학하고 처음 집에 왔다가 양손에 바리바리. 친구들, 형들, 사감샘 명수를 세어보고 샀지. 여섯 개에 만원이니 가성비 좋다, 그랬는데 네 상자 골랐더니 출혈이 컸어. 수입이 없는 대학생한테 4만 원은 무리더라고」

돌돌이와 나는 빵집 앞에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로 했다. 돌돌이는 튀김소보로 두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네 친구 선물이니까 엄마가 돈 안 내줬어. 괜찮지?」

「그럼」

「이번엔 누구랑 먹을 거야?」

「하나는 룸메이트 세 명한테 줄 거고, 하나는 있다가 테니스 동아리 레슨 선생님 드리려고. 아마 선생님이 회원들이랑 같이 먹을 거야」

성심당 직원은 갓 나온 빵을 상자에 담아 뚜껑을 연 채로 주었는데, 기차 시간이 되자 뚜껑을 닫으며 돌돌이가 말했다.  

「저번에 튀소 왕창 가져갔을 때 사람들이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나 보러 성심당집 아들이냐고 그러잖아. 걔네가 성심당이 얼마나 큰 회사인지 몰라서 하는 얘기지. 내가 성심당집 아들이면 가업 잇게 경영수업받지, 학교에서 선형대수학 풀고 있겠냐 그랬어」

「말이 되네. 근데, 테니스 동아리에 사람 많을 텐데 이 정도로 될까?」

「충분해. 접때 보니까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필요는 없더라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누어 먹어」

빵값을 내줄 걸 그랬나 후회하며 물은 거였는데, 일리 있는 대답이었다.

「돌돌아, 누가 너한테 우울해서 빵 샀어, 하면 넌 뭐라고 할 거야?」

「왜 우울해? 그럴 것 같은데」

친구들과 빵 먹을 생각 때문인지 돌돌이는 미소를 띤 채 기차에 올랐고, 배웅을 마치고 감상적으로 된 나는 빵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Photo Credit: https://www.pexels.com/ko-kr/photo/25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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