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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 Nov 07. 2024

쉽고 안전한 군대는 없다지만

아들이 근무하는 섬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 며칠 뒤로 다가왔는데, 과연 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일정에 변경을 줄만한 소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준호는 외국군 수탁 교육 통역 자원 선발에 지원했다. 곧 결과 발표가 있을 예정인데 만일 발탁되면 다음 날 포항으로 이동한다고 했다. 아들이 연평도에 없다면 굳이 지금 갈 필요가 없기에 방문을 연기하기로 했다. 

면박을 떠나기 이틀 전, 전화를 받았다.

“엄마, 배표 취소 안 해도 돼요. 나 떨어졌어.”

“벌써 결과가 나왔어?” 

“어, 행정관님께 연락이 왔대. 다른 사람 선발했다고. 뽑힌 사람은 포항에 있는 병사래요. 통역을 제공할 지역도 포항이니까 연평도에 있는 사람을 거기까지 오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낫겠지요.”

“맞네. 그나저나 인터뷰 준비하느라 애썼는데 섭섭하겠네. 면접은 어땠어?”

“잘 봤어요. 제가 미국에서 살던 곳의 주소를 말해보라는 질문도 있었어요. 또, 해외에서 온 병사들을 안내할 겸 주말에 부대 밖에 갈 수도 있는데,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괜찮겠냐고 묻더라고요. 출제 의도를 아니까, 흔쾌히 하겠다고 했지요. 떨어졌지만 지원 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도 경험이니까요.” 

새로운 임무에 도전하고 시험에 응시하고 결과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아들이 대견해 보였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아들은 포항에서 기초 훈련을 받은 후 경산에서 추가로 운전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끝날 무렵, 연평도 수송병 중 한 명은 높은 사람의 차를 운전할 것이라는 소식이 퍼졌다. 교육 성적으로 병사들의 운전 실력을 판가름한 뒤, 선발 담당자가 키, 관상, 말투 등을 살펴보았다는 거다. 심 아들이 뽑히길 바랐다. ‘높은 사람이 타는 차를 운전하면 트럭을 몰지 않아도 되니 안전할 것이다, 냉난방이 잘 될 테니 편할 것이다, 상사를 대하는 예절을 익힐 테니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병사들이 시비 걸 일없으니 인간관계가 부대끼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 볼수록 수송병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임무 같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데 마침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도 비슷한 의견을 말했다.

“어머, 뽑히면 좋겠다. 얘가 마스크 되지, 말투 차분하지, 태도 훌륭하지, 키도 적당하지. 내가 다른 후보를 보진 못했어도 뭐로 보나 우리 손자가 딱 맞지. 만약 안 되면 그건 너무 어려서 그런 걸 거야. 아무래도 운전병은 나이가 많고 운전 경력이 오래된 사람을 원하거든.”

후에 다른 사람으로 결정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정작 당사자는 높으신 분의 운전 업무를 하며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입대 동기들과 같이 근무할 수 있는 지금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육지에 가게 되지 않은 덕분에 일정대로 면박을 떠난 날, 숙소에서 첫 식사를 하며 준호가 말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영어를 잘하는지 궁금하긴 하더라. 부대 상관이 알아봤는데, 뽑힌 사람이 저보다 면접을 잘 봤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실력자가 어디 숨어 있었대?” 

“그러게. 해병대에 대단한 인재가 들어왔나 봐. 근데 포항에 가지 않았으니 지금 면박 나와서 내가 좋아하는 낙지 젓갈에 김 싸서 먹고 있잖아. 이건 이거대로 좋아요.”      


처음 연평도 배치 소식을 들었을 때  최전방 섬에 간다는 말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맡게 된 준호에게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아들의 군 생활이 중반을 넘어선 지금은 예전만큼 염려하지 않는다. 실패를 금방 털어내는 아들의 긍정적인 태도 앞에서 이왕이면 편하고 안전한 일을 하기를 바라며 ‘높으신 분의 운전병이 되었으면, 육지에서 근무했으면’ 하고 시시때때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Photo Credit: https://pixabay.com/illustrations/blur-bokeh-blurred-blue-white-3785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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